(프리즘)섹스, 장관 그리고 국민연금

  • 등록 2004-06-04 오전 10:41:13

    수정 2004-06-04 오전 10:41:13

[edaily 박동석기자] 대리기사 민씨(49세). 불과 몇 년 전까지 만해도 그는 잘 나가는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대기업에 통신 중계기 부품을 납입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으나 나날이 커가는 회사를 위안삼아 지칠 줄 모르고 일만 죽도록 했다. 그 덕에 식구(종업원)만 100명이 넘는 대가족이 될 정도로 회사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러나 그도 외환위기의 파편을 피하기 어려웠다. 납품하던 대기업의 주문이 끊기면서 회사 사정은 급속하게 나빠졌다. 처음에는 여기 저기 빚을 내 식구들 월급도 주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결국 허사였다. 그는 결국 수십억원대의 빚만 떠안은 채 부도를 내고 서민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사업의 꿈을 접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는 와신상담하기 위해 중장비학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사다리차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민씨는 학원을 끝내자 사다리차를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돈을 벌어 빚도 갚고 쓰러진 회사를 반드시 세우겠다는 결심 때문이다. 하루종일 사다리차를 몰고나면 몸은 파김치가 되기 일쑤지만 그의 일은 밤에도 계속된다. 밤에는 대리기사다. 잠자는 시간이라야 고작 하루에 서너시간밖에 안된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에게 ‘왜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느냐’고 걱정하지만 그에겐 달리 선택의 길이 없다. 빚도 갚아야 하고 생계도 꾸려야 한다. 아내에겐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휴일도 없는 그에게 성생활은 꿈 같은 얘기다. 집에 들어오면 그대로 쓰러져 잠자기에 바쁘다. 며칠 전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책을 하나 냈다. ‘행복한 부부 만들기’라는 책이다. 김 장관은 이 책에서 ‘성생활은 원만한 부부관계의 촉매’라고 했다. ‘성행위의 다양한 체위, 다양한 느낌’ ‘이렇게 하면 성생활이 즐겁다’ ‘3분과 13분의 차이’등의 소제목을 보면 성지침서 같기도 하다. 김 장관은 또 행복한 부부를 만들기 위해 딱 한 가지를 꼽는다면 "절대 부부싸움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권고했다. 김 장관이 이 책을 낸 이유는 엄마로서 들려주고 싶은 얘기였기 때문이란다.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더욱이 국민 보건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다. 참 철도 없다. 온 나라가 국민연금 문제로 혼란에 휩싸여 있는 판에 연금 및 복지정책 주무 장관이 왠 성(性)타령인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국민들이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빚을 내면서 까지 연금을 낼 여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저항이다. 게다가 한쪽에서는 연금을 주식에 투자한다고 하고, 얼마 안 가 고갈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국민들은 고단하고 불안하다. 성생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국민들이 지금 정작 필요한 것은 성생활 만족을 위해 체위를 배우는 일이 아니다. 일자리이고 장사가 좀 더 잘 돼 지갑이 좀 두둑해 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김 장관의 가르침대로 부부싸움도 절대 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나 살기가 힘들어지면 싸움을 피해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외환위기 후 이혼커플이 급증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성난 네티즌들은 김 장관을 몰아세우고 있다. 국민들은 생활고,연금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주무 장관이 한가롭게 성 가이드 책을 내놓고, 해당 부처는 어떻게 그 책을 홍보할 수 있느냐는 불만이다. 네티즌들의 지적대로 김 장관이 책 내는 정성의 절반 만큼이라도, 현안 정책도 그렇게 풀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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