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덕 칼럼]희생양만 만들어선 안전한 나라 못 만든다

잇단 대형사고로 국민 불안감 팽배
‘희생양 만들기’ 미봉책이 재발 불씨
사고원인 분석에 따른 시스템정비와
일벌백계 병행이 안전한나라 가는 길
  • 등록 2018-02-02 오전 9:21:22

    수정 2018-02-02 오전 9:22:36

[남궁 덕 콘텐츠전략실장] 새해 벽두부터 발생한 대형 사고로 민심이 흉흉하다. 세월호 사고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온 게 불과 4년 전인데 제천에서 밀양에서 대형사고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도 잇단 안전사고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왜 대형사고는 잇따르고, 아까운 희생자가 나오는 것일까. 사고의 주범은 누구일까. 적폐청산깃발을 올린 문재인 정부에 대형사고는 무슨 의미일까.

대형 참사 뒤엔 인재(人災)가 있고, 인재 뒤엔 악습(惡習)이 있다. 이런 악습의 고리를 끊으면 안전한 나라로 가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다’는 불만이 들끓을 때면 정부는 책임자를 문책하고 엄벌하는 것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해갔다. 일벌백계하는 게 아니라 희생양 만들기로 물타기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억울한 사람만 있고, 외양간을 고치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 배경이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못한 탓이라며 ‘내탓의 커밍아웃’이 잇따라야 하는데 현실은 다르다.

이번 밀양 세종병원 참사도 그전의 대형사고와 닮은꼴이다. 부실한 ‘셀프점검’도 비슷하다. 40명의 사망자를 낸 이번 참사에 원인에 대해 경찰은 병원 측이 평소 소방안전·환자 관리 등에 소홀히 한 것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화재 당시 1층에서 발생한 연기가 상부로 이동한 경로로 요양병원 연결통로, 엘리베이터 통로, 중앙계단, 배관공동구 등 4곳을 지목했다. 이 가운데 요양병원 연결통로는 불법 증축된 사실이 확인됐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사망 501명·부상 937명)는 설계도면 변경 등 안전불감증이 원인이었다. 1999년 씨랜드 화재사고(사망 23명),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사망 40명·부상 9명)도 불법 구조(용도) 변경 등이 많은 사상자를 낸 원인이었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사망 304명)는 화물 과적, 선박 증축 및 내부 구조변경 등이 사고 원인으로 밝혀졌고, 선장·선원의 무책임과 해경의 초동조치 미흡, 정부의 재난대응 능력 부재 등이 맞물린 대형 인재(人災)로 기록됐다.

대부분의 대형 참사는 허술한 제도나 법의 사각지대에서 정부의 무능과 민간의 밑바닥 수준 안전 불감증이 맞물리면서 반복되곤 했다. 정치권은 ‘네탓 공방’으로 참사를 정치쟁점화 하는 데만 혈안인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회는 연이은 사고이후인 지난 달 30일 그동안 정쟁이 떠밀려 뒤전에 있던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비롯한 3건의 소방안전 관련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소방관련 법안의 국회통과로 소방대원의 화재진압이 종전보다 용이해질 것이다.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곳에 주차하거나 진입을 가로막을 때 과태료를 물리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이번 입법으로 사후약방문이 마무리된 건 아니다. 이번 3개 법안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 사후점검(AS)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관련법안이 엉뚱한 규제사슬로만 만들어진 게 아닌지 챙겨봐야 한다. 지킬 수 없는 법이라면 그건 희생양 만들기 위한 졸속 법안일 수 있다. 매뉴얼이 없거나 매뉴얼이 있어도 그대로 하지 않는 게 문제로 지적돼온 터다. 정부는 차제에 ‘AS 행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예컨대 신축 건물에만 신경을 쓸게 아니라 노후 건물에 대해 지속적으로 행정력을 동원해 점검해야 한다.

국민의식 개혁도 병행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나는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온 뒤땅이 굳어진다. 내일이 아니고 남의 일, 남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때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없다.

퇴계 이황의 자취가 남아있는 경북 안동 청량산엔 ‘정미극고(精微極高) 명도중용(明道中庸)’(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밝은 길을 가야하고, 치우쳐선 안 된다.) 이라고 쓰여진 시비가 있다. 안타까운 참사가 잇따르는 요즘 새겨볼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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