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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4일 메리츠캐피탈이 기업신용 AA등급으로 200억원 규모로 발행한 3년 만기 캐피탈채가 채안펀드의 여전채 매입 ‘첫 타자’가 되면서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발행 금리는 민간채권평가회사 평균 고시금리(민평금리) 대비 6bp%(1bp=0.01%포인트) 높은 연 1.809%로 결정됐죠.
두 번째 타자는 약 2주 뒤 현대캐피탈이 낙점됐습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24일 기업신용 AA등급으로 900억원의 2년 만기 캐피탈채를 발행했습니다. 발행 금리는 민평 4사 금리보다 4bp 높은 연 1.763%로, 이 중 500억원을 현대캐피탈이 자력으로 조달하고 나머지 400억원은 채안펀드에서 지원받는 형식이죠. 현대캐피탈은 이번 발행분을 전액 상환 용도로 쓴다는 방침입니다.
흥행이 부진한 원인으로 애초에 채안펀드에 대한 ‘역할기대’부터 서로 엇갈렸기 때문이라는 점이 꼽힙니다. 여전업계는 코로나 여파에 따른 유동성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정책 자금적 성격으로 ‘낮은 금리(비싼 채권 가격)’로 적극 매입해주는 지원을 기대했지만, 정부는 시장에서 채권 발행이 어렵다면 약간의 ‘패널티’를 적용해 시장평가보다 조금 ‘높은 금리(싼 채권 가격)’로 매입해주겠다는 입장인 것이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대형 카드사 등 우량사들은 시장에서 1~2년 만기 등 단기물 중심의 여전채 발행과 해외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이 비교적 안정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조금 아쉽긴해도 굳이 비싼 금리로 조달 비용만 올리면서까지 채안펀드 매입에 당장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당초 개별사 민평금리로 매입하겠다는 방침과 달리 시행을 앞두고 갑자기 일방적으로 입찰(비딩) 방식으로 변경한 점 역시 ‘거북함’으로 작용하고 있는데요, 입찰 참여 시 매입 낙찰을 위해 희망 금리를 서로 높게 부르는(채권 가격을 낮춰 파는) 경쟁 과열로 업계 여전채 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해버릴 수 있어서죠. 민평금리보다 채안펀드가 높은 금리로 계속 매입하다보면, 국내 여전사들에 대한 채권시장 평가가 낮아지게 되고 결국 조달 비용 상승 등 가격 왜곡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입니다.
또 금융위원회가 채안펀드는 기업신용 AA-등급 이상 ‘우량사’만 매입하겠다고 내걸은 ‘조건’ 역시 걸림돌입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낮아 채권 발행이 어려운 A+등급 이하 중소형 캐피탈사들은 채안펀드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죠. 정작 돈이 급한 쪽에서 금리를 조금 더 쳐서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기대를 한몸에 모으며 등판한 ‘불펜투수’ 채안펀드. 하지만 제대로 시구조차 못하고 있는 여전채 매입. 정부의 ‘생색내기’라고 해야 할까요, 서로가 원하는 역할이 다른 ‘온도차’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왕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했으면, 신용등급과 비딩 등 허들을 두기보다 자금 상황이 어려운 곳 중심으로 심사를 통해 적정 가격으로 지원·분배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