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아 아이 학교의 양호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신 아이를 집에 데려 가라`는 통보다. "아이가 열이 있을 때에는 학교에 보내서는 안된다"는 학교 규칙을 거듭 강조하는 말투가 마치 복도에서 뛰다가 걸린 학생을 나무라는 듯 힐난조였다.
문득 기자 초년병 시절이 떠오른다. 하루는 지독한 몸살에 걸려 걸음을 걷기조차 어려웠지만 결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어서라도 출근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 정신`이니까. 바깥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갔다가 마침 부장이 보는 앞에서 코피가 쏟아졌다.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등을 두드리며 기특해 하시던 부장의 표정과 격려가 아직도 생생하다.
"몸이 안좋은 사람은 출근 안해도 돼!" 요즘 미국 기업들 사이에 확산되는 풍조라고 오늘 USA투데이가 썼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노동력을 뽑아 내는, 생산성 극대화 주의의 미국 기업들이 왠 일일까? 인플루엔자(flu) 공포 때문이다. "푹 쉬라"는 보스의 명령에는 환자 직원을 `세균 덩어리`로 바라보는 시각이 녹아 있다. "병 퍼뜨리지마!"
이런 걱정을 하는 응답 기업의 62%는 병든 직원을 집으로 돌려 보낸다고 했고, 36%는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일이 없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푹 쉬며 놀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픈 직원들이 까먹는 `결근 비용`이 한 사람당 연평균 660달러라는게 응답 기업들의 계산이다. 그래서 `언스트 앤 영` 같은 회사는 집에서 일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인터넷과 노트북이 있는데 1년 365일 24시간 어디서든 일을 못하겠냐는 것이다.
다분히 미국다운 반론도 노동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툭하면 골골하는 직원과 몸 관리를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똑같은 월급을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래서인지 병으로 쉰 날만큼을 월급에서 까는 회사가 많은데, 미국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이 그런 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직원을 출근시키는 바람에 나까지 옮았다`면서 회사와 동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는 얘기도 미국 신문에서 곧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