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은 언제나 안락하지만, 지쳐 있을 때의 휴식이 진정한 쾌락을 준다. 반대로 충분한 안락 안에서는 육체적 혹사 등 자극이 쾌락의 원인이 되고, 그 뒤에 오는 평온함 또한 쾌락이 된다.
워낙 편리함에 둘러싸인 현대인은 안락의 측면에서는 거의 완전에 가깝다. 그러므로 안락의 추구로는 더 이상의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편리함을 적당히 줄이고 안락을 불완전하고 단속적인 것으로 바꾸며 어떨까? 그때 발생하는 불편으로 인한 자극을 쾌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후쿠오카 켄세이가 쓴 ‘즐거운 불편’에 나온 대목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어떤 젊은이는 빨리 돈을 벌어 일찌감치 은퇴해 유람선이나 타면서 놀고 싶다고 얘기한다. 하루라도 빨리 이런 지긋지긋한 일은 털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전원에 카페를 열고 친구들과 술이나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천국은 지루하다는 얘기가 있다. 모두 착한 사람만이 있고 매사가 순리대로만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이 사라지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되면 좋은 사람 역시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이 있어야 착한 사람도 빛이 난다. 흐린 날이 있어야 맑은 날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세상만사에 다 리듬이 있고 리듬이 필요하다. 개인의 삶도 그러하다. 멋진 삶이 되기 위해서는 리듬이 있어야 한다. 강약 중강약이 필요하다. 계속 힘든 것도 힘든 일이지만, 계속 좋은 것도 재미없다. 힘든 일과 좋은 일이 교대로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다.
배터리를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방전한 다음에 충전시켜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단계적으로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시켜야 한다. 그런 다음 적절히 회복시켜야 한다.
청춘이 좋은 것은 두려움 없이 도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애가 딸리면 돌아볼 것도 많고 걸리는 것이 많아 도전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하지만 청춘은 그것이 가능하다. 도전했다 실패할 수도 있고, 망신당할 수도 있고, 밑바닥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다시 도전하면 그 뿐이다.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막상 떨어져보면 의외로 마음이 편안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것이 묘한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나아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안정된 삶을 원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오히려 불확실에 도전하는 것이 우리 삶을 더욱 안정되게 만들 수 있다. 고만고만한 자극만으로는 별 다른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의도된 불편과 고생을 사서 해야 그만큼 내성도 생기고 강해진다. 에너지 탱크가 커진다. 지식도 풍부해진다. 불편의 효용성을 알게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불편함을 즐길 수 있고 그만큼 삶은 풍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