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총리 한달‥`분위기 잡기` 일단 성공

성장률·인사발언 오락가락 여전
`칼`이 아닌 `신뢰`로 접근해야
  • 등록 2004-03-09 오전 11:23:30

    수정 2004-03-09 오전 11:23:30

[edaily 김병수 김춘동기자] 이헌재 부총리가 10일로 취임 한 달째를 맞는다. 이 부총리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거침없는 언변을 앞세워 시장과 관가는 물론 국회와 언론에 대해서도 일단 `분위기 잡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삼고초려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성장률이나 인사 관련 발언들이 오락가락하면서 시장과 일반 국민들에게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다. 다분히 전략적이고 의도된 언변으로 풀이되지만 취임기간이 한 달도 안된 점을 감안하면 부총리 스스로가 경제수장으로서 말의 무게를 크게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장률·인사 발언 보름만에 오락가락 "이런 상태로 끌고 가면 5%성장도 어렵다"(2.18 국회)→"5%발언은 이대로 가면 안되고, 5%로는 모자란다는 얘기는 정책적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2.20 정례브리핑)→"현 정책대로 효과가 나타나고 원자재가격이 통제범위에 있다면 올해 6%성장도 가능하다"(3.3 외신기자간담회). 이헌재 부총리의 경제성장률 전망은 외부여건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보름여만에 1%포인트를 오르내렸다. 만약 경제연구기관의 전망이었다면 낙제점에 해당하는 점수다. 또한 그 기법도 전임 장관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정책당국자로서 `정책적 의지 또는 목표`는 당연하겠지만, 이를 근거로 `숫자 놀음` 인상을 보이는 행태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성장률 전망은 현재 여건 하에서 정책적 의지를 포함해 있는 그대로의 수치를 밝히는 것이 타당했다는 지적이다. 성장률 전망이 치적의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권 인사는 원칙에 따라 한다. 은행은 나름대로의 지배구조와 이에 따른 행장·집행간부 추천 절차가 있다"(2.20 정례브리핑)→"추천위원회가 급조돼 단기간에 비밀리에 사람을 찾다 보니 제한된 정보로 CEO를 선임할 수 밖에 없다. 추천위가 모든 것을 다 하는 형식이 되면서 실질적인 인사권자는 마치 그림자처럼 애매모호해지고 있다"(3.4 정례브리핑) 인사원칙 역시 보름여만에 정면으로 뒤집혔다. 이 부총리는 실효성을 이유로 앞으로는 실질적인 인사권자의 개입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은행장 추천위원회는 이 부총리 자신이 활성화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부총리는 자신이 `인연`을 중시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취임사를 통해 `이제부터 공적인 업무에 의한 새로운 관계를 맺어갈 것`이라고 천명했으나 결과로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전략적이고 의도된 발언..원칙이 문제 이헌재 부총리의 이러한 발언들은 다분히 전략적이고, 의도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 부총리는 "성장률이 이대로 가면 5%도 안 된다, 5%는 넘는다, 정책대로면 6%도 가능하다는 말은 모두 같은 의미이며, 성장률 발언은 선택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국회냐 외국 기자들 앞이냐에 따라 달리 구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인사문제도 마찬가지. 이 부총리는 애초 추천위 결정에 따르겠다는 원칙을 밝혔었다. 반면 실제로 추천절차가 진행되고 또 청와대와의 갈등설이 불거진 이후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면서 태도가 돌변했다. 우리금융회장과 기업은행장 인사절차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압박용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이 부총리는 "재경부 간부들은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평이 있다. 온갖 사람들이 은행장을 해보겠다고 너도나도 나서 모럴헤저드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며 전형적인 낙하산인사 옹호발언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LG카드 사장 선임과 관련해서는 이 부총리가 여러 정책을 마련하고 수행하면서 채권단을 함께 가야할 `파트너`로 생각하는 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부총리는 이후 산업은행의 요청을 받아 박해춘 사장을 설득했다며 해명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LG카드 문제를 풀어가는 주체로서의 채권단과 채권단 대표로서 산업은행의 지위에 대한 고려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니까 재경부장관 마음대로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문제이나 `시장은 어린애 놀이터가 아니다`며 자유와 책임을 강조한 이 부총리의 취임 발언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LG카드 문제는 이제 우리(채권단) 손을 떠나 재경부에서 할 것이다`는 푸념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확고한 원칙이 담보되지 않은 전략적 발언은 혼선 내지는 단순한 말장난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이 부총리는 스스로가 가장 강조했던 경제수장으로서 말의 비중을 스스로 크게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시장친화적 개입`이라는 용어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용어에 대해 당사자인 정책당국자들의 해석은 간명하다. 사전에 나온대로 접미사 적(的)은 일부 한자어 명사 뒤에 붙어 `그 명사의 상태로 된`·`그런 성질을 띤`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공무원들은 `개입은 소리없이 하라`는 것 아니겠냐고 해석한다. 좋게 표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내용적으로는 `쓸데없이 딴소리 나오지 않게 하라`는 것이고, 그 것이 `시장친화적 개입`이라는 셈이다. 형식적이지만 이미 민간으로 이양된 금융기관장 인사권도 그 자체로 개선방안을 모색해야지 관으로 다시 가져오겠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금융권의 목소리가 높다. ◇이 부총리, 한국의 그린스펀이 될 수 있을까 이헌재 부총리는 취임 이후 경제수장의 모델로서 미국 연준위 그린스펀 의장을 자주 언급했다. `칼은 차고 있을 때가 제일 멋있다. 일단 꺼내면 누굴 베던가 내가 죽어야 한다`며 시장에서 경제당국의 위상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래서 "정정당당하게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부총리의 말은 시장자율을 더 강조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LG카드 사태와 금융기관장 인사문제에서 당장 드러나 듯 시장의 여건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시장의 개방과 자율이 확대되면서 관치의 수단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보다 전문적이고 세련된 `이헌재식 관치`를 새롭게 선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헌재 부총리는 지난달 20일 "한 달쯤 지나면 기본적인 경제정책 방향을 뚜렷하게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과연 이 부총리가 신용불량자 등 우리 경제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제시할 지 주목된다. 또한 자신이 경제수장의 모델로서 제시한, 칼을 빼지 않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한국의 그린스펀이 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이 부총리는 취임 한달동안 특유의 카리스마로 `분위기 잡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카리스마가 그의 박식과 언변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가 한국의 그린스펀이 되는 길은 `칼`을 차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일단 꺼내면 누군가 베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나 거기엔 `명분`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린스펀이 힘이 있는 것은 바로 정치권 등 외부영역이 아닌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며, 이 신뢰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배어나오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현재의 분위기가 이헌재식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뢰`에 의해서 조성된 것인지 되짚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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