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진의 Tour & Culture)해외여행, 제대로 하면 ‘대박’도 가능

  • 등록 2009-04-03 오후 1:06:49

    수정 2009-04-03 오후 1:06:49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지난 2007년 가을, 신혼여행 때 덴마크 레고랜드와 노르웨이의 송네 피오르Sogne Fjord에서 크루즈 선을 처음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세계 최대 크루즈•오프쇼어 건조사인 STX유럽이 개최한 크루즈 선 레고 모형 디자인 대회에서 세계 각국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한국의 30대 직장인인 김규성씨가 한 말이다. 현재 모 자동차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 수상자가 만일 신혼여행을 흔히들 떠나는 제주도나 괌으로 갔다면, 혹은 파리나 스위스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북유럽을 신혼여행지로 택했어도 레고랜드에 가보지 않았다면 그의 이번 수상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 덴마크의 유람선(덴마크 관광청 제공)


“‘바로 이거다’라는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여행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사례는 비단 크루즈 선 레고 모형 디자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규성씨의 경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정계, 경제계의 화두로 떠오른 “녹색 성장” 기업인 풍력발전기 부품업체 평산 역시 신성장 동력을 찾던 중 해외여행에서 기업의 미래를 바꾸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어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무려 1조 6,000억 원 어치 주문 물량을 확보했다고 한다. 평산의 신동수 대표는 “풍력발전이 막 꽃피우려는 유럽을 보고 '바로 이거다' 하고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덴마크의 세계적인 풍력발전업체 베스타스를 방문한 것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 덴마크 풍차 사진(덴마크 관광청 제공)

“‘바로 이거다’라는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영감은 시인이나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인과 예술가들도 처음 떠오른 영감을 다듬고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해 내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때론 그 과정에서 ‘바로 이거다’싶어 떠올랐던 처음의 영감도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이거다’라는 영감이 없으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가 없다. 크루즈 선 레고 모형 디자인 대회에서 우승을 한 자랑스러운 청년이나 ‘바로 이거다’ 하고 영감을 받아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풍력발전 부품업체 사장님이나 해외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을 했을 것인가! 그럼에도 이들에게 해외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영감은 큰 자극제가 되어 고민을 시작하게 했다. 사업성 등에 대한 많은 회의를 거치면서도 영감의 위력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구체화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해외여행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결코 놀러 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호기심을 키우고 충족시키며 때론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어 돌아오는 재충전과 재도약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이들에게 해외여행이 이런 기회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열망이 있고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만 남들이 쉽게 보어 넘기는 풍경이나 건물 혹은 작은 물건들도 사업성과 관련된 ‘아이템’으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사람은 해외여행을 하면서 레스토랑 메뉴판과 사인물만 모으기도 했다. 식당을 경영하는 이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직접 수집도 하곤 했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어떤 사업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크게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어떤 사람은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테라스에서,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식탁보를 고정하는 예쁘게 디자인 된 걸쇠를 몰래 몇 개 빼서 주머니에 슬쩍 집어넣기도 했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 이젠 알아야 산다

비용도 시간도 만만치 않은 해외여행을 쉽게 떠날 수는 없다. 하지만 위의 몇 가지 사례가 일러주듯이 해외여행을 여유가 있을 때만 떠나는 여행으로 보는 것은 단견일 수도 있다. 미래를 위한 하나의 투자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인 학창시절에는 해외여행이 의무적으로 떠나야 하는 하나의 ‘교양필수과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크게 낯설지 않은 루이 캬토즈라는 브랜드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프랑스 브랜드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널리 알려진 다른 브랜드들, 가령 샤넬이나 루이 뷔통처럼 명품 반열에 올라간 브랜드는 아니지만, 이 상표와 회사를 이젠 한국인이 완전히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루이 캬토즈Louis Quatorz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베르사유 궁을 지은 태양왕 루이 14세를 말한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 잠 못 이루며 해외 진출 여부를 고민했지만 지금 때를 놓치면 기약이 없을 것 같아 도전을 결심했다”는 루이 캬토즈의 전용준 사장은 “패션은 문화상품이어서 ‘역사가 있는 이야기’를 브랜드에 담아나갈 것”이라며 “최고 경영자CEO가 어쭙잖게 관여하면 이도 저도 안 되기 때문에 철저히 현지 전문가들의 손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살롱Salon으로 불리는 프랑스 엑스포 정보들을 수집하고 유럽 여러 도시의 패션 위크를 참관하며 루이 캬토즈 사장님은 문화 예술과 명품 브랜드의 상관 관계를 잘 파악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베르사유 궁, 오늘날의 프랑스 기초를 놓은 루이 14세, 프랑스 패션과 명품 시장이 베르사유 궁에서 시작된 프랑스 식 스타일과 맺고 있는 관련성 등에 대해 나름대로 깊은 공부를 한 것이다. 그 역시 해외여행을 심심풀이로 한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 베르사유궁전 거울의 방
▲ 베르사유궁전 왕비의 침전

루이 14세가 살았던 궁전들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 옆의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에서 열린 2009년 파리 패션 위크에서 루이 캬토즈는 세 라인을 선보였는데, 그 중 하나가 ‘마담 드 몽테스판Madame de Montespan’이다. 루이 14세는 수많은 여인들을 거느렸고 사실 베르사유도 사냥과 함께 이 여인들 중 하나와 밀애를 즐기던 곳이었다. 애첩이었던 몽테스판 부인의 이미지는 명품 브랜드와 잘 어울릴 수 있다. 왜냐하면 궁의 장식과 모든 소품은 물론이고 회화 조각들은 대부분 애첩들의 의견에 따라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루이 캬토즈, 즉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을 지을 당시에는 왕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고 했을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고 후원했기 때문에 애첩들의 입지가 좁긴 했지만 그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이번에 마담 드 몽테스판이 나왔다면 다음에는 마담 드 퐁파두르 상품이 나올 것이다. 이 유명한 루이 15세의 애첩은 프랑스 로코코를 일으킨 여인으로, 프랑스 로코코를 일명 퐁파두르 양식으로 부를 정도다. 건축에서 의상까지, 그리고 조각과 회화까지 두루 영향을 끼친 이 여인은 가장 많은 초상화를 남긴 여인이다. 
 
▲ 마담드 퐁파두르의 초상
▲ 마담드 몽테스판의 초상
▲ 제2제정 시대의 단색드레스, 앵그르의 그림
▲ 나폴레옹 시대의 고전적 드레스 (황후 조세핀의 초상中)

애첩이 입은 옷은 곧 다른 귀부인들이 따라 입었다. 나폴레옹 당시는 고대 그리스 로마로 돌아간다는 신고전주의 시대여서, 황실 가족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여인들이 입었던 길게 늘어뜨린 치마를 입었다. 이어 왕정 복고 때는 다시 로코코 풍의 화려한 치마가 유행을 했고 프랑스 제 2 제정 당시에는 단색 드레스를 애호했던 으제니 황후의 영향으로 단색 드레스가 유행했다.

패션사는 옷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일반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디자이너들은 역사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으며 복고풍과 아방가르드를 혼합해서 사용한다. 여기에 이집트 풍, 비잔틴 풍, 중국 풍 등이 참고 자료로 들어오고, 밀리터리 룩, 마린 룩, 스쿨 룩, 유니섹스 룩. 빈티지 룩 등의 보다 작은 유행들이 첨가된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기회

천연 자원이라곤 거의 없는 9만 평방 킬로미터의 땅과 갈수록 노령화 되어가는 4800만의 인구 그리고 강력한 나라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여기에 삼대 째 권력 세습을 하며 민족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엽기적인’ 국가, 북한이라는 암적 존재까지 보태야 할 것이다. 인구 노령화를 제외하면 한국의 이러한 암울한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또 누구나 수긍하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해방 이후 약 60년간 각 부문에서 한국이 이룩한 발전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전혀 수사가 아닐 정도로 실로 눈물겨운 대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발 독재라는 야릇한 말까지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수긍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발전은 민주화일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는 앞으로도 문화와 의식의 영역으로까지 더욱 정교하게 발전해야만 하는 한국 최대의 명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십 수년 동안 한국의 발전은 국민 소득 2만 불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정체 상태에 있다. 사실 한국은 1970년대 중반의 오일 쇼크를 비롯해 전 세계를 강타한 여러 번의 위기에서 한 번도 비켜서지 못 한 채 직격탄을 맞곤 했다. 물론 그런 위기 때마다 흔히 한국인의 저력이라고 불리는 불가사의한 힘이 발휘되어 위기를 극복해냈다.

하지만 이젠 이 불가사의한 힘을 믿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실 한강의 기적은 저임금에 시달리며 희생당했던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는 다시 그런 시대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이 미신에서 벗어나는 길은 국가이든, 기업이든, 학교이든 사회 단체이든 창의성 있는 창조 경영 이외에 달리 길이 없다. 어느 단위의 기관이든 이제 경쟁은 국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그 가장 첫 번째 과정인 해외여행은 우리에게 기회인 것이다. 바람 쏘이러 나가는 대다수 사람들 곁에 “바로 이거다” 하며 무릎을 치고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어 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영어나 중국어 같은 외국어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언어도 중요하지만 문화 예술이 경제와 맺고 있는 현상 일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동을 할 줄 알고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감성과 감각 훈련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 파리 의상박물관의 옷걸이 컬렉션

덴마크 레고 블록에서 크루즈 선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바다에 설치된 거대한 바람개비에서 풍력 장치의 부품을 떠올리며 프랑스 베르사유 궁을 지은 왕의 애첩을 브랜드로 내세워 전 세계를 시장으로 패션 제품을 만드는 이들이 많이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은 배부를 때나 즐기는 분야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제 문화와 예술을 알아야 살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와 있다. 전자 제품도, 자동차도 아름다워야 팔린다.
 
그러나 아름다움만으로는 부족하다. 제품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품과 작품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 문화와 예술은 그리고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해외여행은 배부를 때 하는 분야가 아니며 바람 쏘이는 여행도 아니다. 바람 쏘이는 여행이 아니라, 풍력 발전부품을 만드는 기업처럼 바람을 만드는 여행이 되어야 하며, 해외여행을 떠날 때 타는 크루즈 선을 만드는 여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사진 협조 – 덴마크관광청(VisitDenmark)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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