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돈다발 둘러싼 미스테리, 미스테리···

1년 넘게 묵힌 현금 어디서 나왔나
돈 보내는 과정서도 실수 연발
  • 등록 2007-11-20 오후 1:51:43

    수정 2007-11-20 오후 1:51:43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삼성이 이용철 전 청와대 비서관(변호사)에게도 500만원의 현금다발을 보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삼성전자는 '회사가 그런 지시를 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사건을 폭로한 이용철 변호사는 전일에 이어 20일에도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어서 파문이 계속 확산될 조짐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삼성이 보냈다면 저런 실수를 했을까 싶은 대목도 눈에 띄고 삼성 임원이 개인적으로 돈을 보냈다면 말이 안되는 정황들도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 2002년 이전에 묶어둔 돈다발 2004년에 발송?

이 전 비서관에게 전달됐다는 돈다발에 '서울은행 B①분당지점'이라는 띠지(현금을 100장씩 묶을 때 쓰는 종이)가 붙어있는 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점이다.

2002년말 서울은행과 하나은행이 합병되면서 서울은행이라는 명칭이 사라졌으므로 적어도 2002년말 이전에 만들어진 돈다발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전 비서관에게 이 돈이 전달된 시점은 2004년 1월이다. 돈을 보낸 주체가 이경훈 변호사(당시 삼성전자 상무)개인이든 삼성그룹이든 간에 적어도 1년 이상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던 현금다발이라는 점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합병하면 구 은행 띠지 같은건 모두 폐기처분한다"며 "(1년 넘게)갖고 있다가 2004년 1월에 또 썼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삼성전자의 해명대로 이경훈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돈일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수백만원의 현금을 1년씩 묵혀두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삼성그룹이 보낸 돈이라는 이 전 비서관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서울은행 분당 지점이 2002년초 분당 삼성플라자로 사옥을 옮긴 삼성물산에서 매우 가깝다는 점을 들어 삼성물산에서 조성한 비자금이 그룹 구조본을 거쳐 삼성전자로 흘러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왜 현금을 퀵서비스로?

이 전 비서관이 내놓은 증거자료 중에는 돈다발을 보낸 발송서류가 있다. '발송의뢰서'라는 이 문서는 물품을 보낸 이경훈 상무의 소속과 직위, 물품을 받을 이용철 전 비서관의 주소와 연락처가 표기되어 있다.

일반적인 퀵서비스 의뢰서에는 받는 사람의 주소와 연락처만 기재되지만 이 서류는 삼성전자에서 임직원들의 배송물품을 일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별도로 제작한 문서로 보인다. 보낸 사람의 소속과 직위가 함께 기록되어 누가 언제 보내서 언제 도착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했다. 삼성전자의 로고가 함께 인쇄되어 있는 것이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보낸 날짜와 받은 날짜가 모두 1월 16일로 되어 있어서 하루만에 도착한 퀵서비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당 문서가 삼성전자에서 사용하던 배송의뢰서 양식인지 여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500만원이나 되는 현금을 왜 퀵서비스로 보냈느냐는 점이다. 배송 과정에서의 분실우려도 없지 않지만 무엇보다 민감한 내용물을 '툭 던지듯이' 보내는 정황이 로비 방식으로 적절하지 않아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웬만한 친분관계가 아니라면 만나서 직접 전달하기에도 겸연쩍고 어색한 내용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전 비서관도 월간지 크기로 포장된 현금다발 상자를 열어보고 불쾌했었다고 증언했다. '삼성이 간이 부은 모양'이라는 이 전 비서관의 표현 속에는 현직 청와대 비서관에게 현금다발을 보낸 것 자체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명절선물로 포장해서 배송업체를 통해 보낸 방식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뉘앙스가 녹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 '이용철(5)' 포스트잇 쪽지도 안떼고..

삼성의 전방위 로비의 정황증거로 제시된 '이용철(5)'라고 쓰인 포스트잇도 어리숙한 일처리의 단면이다. 이를 두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용철 비서관 외에도 여러명에게 돈다발이 보내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쪽지는 '이용철에게 500만원을 보내는 상자'라는 의미로, 여러명에게 돈을 보내면서 돈상자들이 뒤섞이거나 금액이 혼동되지 않도록 업무편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쪽지라는 것. 결국 이용철 전 비서관 말고도 여러사람이 이런 현금다발을 받았다는 정황이며, 5라고 따로 쓴 걸로 봐서 보내진 금액도 500만원이 아니라 다양했을 것이라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런 비밀스런 암호(?)가 담긴 포스트잇을 제대로 떼지 않고 보낸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실수라는 점이다. 이런 부분 역시 돈을 보낸 쪽에는 불리한 정황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급하게 한꺼번에 보냈으면 이렇게 '바쁘게 일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았겠느냐는 해석이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들은 삼성의 해명대로 이 전 비서관이 개인적으로 보낸 돈이라고 가정한다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명절 때 회사에서 자기 명의로 선물을 보내려고 그러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을 만큼 상대방의 신분과 주변상황을 배려했던 신중함과는 어울리지 않은 전달방식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폭로한 이용철 전 비서관은 이에 대해 "이경훈 변호사도 의례적인 선물일 것으로 알고 명의를 제공한 것이었고 현금을 선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매우 죄송하다고 여러 차례 사과를 했다"고 말했다.

◇ 삼성그룹 구조본 침묵..삼성전자만 해명

이 전 비서관에게 돈을 보냈다는 이경훈 변호사가 당시 삼성전자(005930) 소속이었다는 점에서 삼성 측의 해명과 반박은 삼성전자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삼성그룹의 대외 로비와 관련된, 그동안 꾸준히 삼성 구조본을 향해 제기됐던 의혹이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가 해명을 담당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19일 이용철 전 비서관의 폭로 직후 "이경훈 변호사가 2004년 퇴직해 회사를 떠난 상태이며, 퇴직전 삼성전자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룹의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이 아닌 삼성전자 차원에서 사실관계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어 19일 저녁무렵 "법무, 인사 등 관련부서에 확인한 결과 회사에서 그런 지시를 한 적 없으며 이경훈 변호사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삼성은 구조본에서 로비 대상을 선정한 뒤 고교 동기나 선후배 관계 친분이 있는 지인 등 거부감이 적은 인사를 동원해 로비 대상과 접촉해왔다. 이런 관행을 감안하면 이경훈 상무가 회사의 지시를 받았더라도 삼성전자가 아닌 구조본의 직접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경훈 상무 명의로 돈다발을 보낸 주체가 삼성전자가 아니라 구조본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반박과 부인은 핀트가 어긋난 측면이 있다.

삼성그룹의 주장대로 김용철 변호사와 이용철 전 비서관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경훈 상무에게 돈다발을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해명은 삼성그룹 구조본에서 나와야 하는 게 맞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은 없으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다.


▶ 관련기사 ◀
☞이용철 변호사 "삼성 내부자 폭로보고 용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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