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1년)2002년 9월의 뉴욕ㆍ뉴요커

  • 등록 2002-09-10 오후 12:57:50

    수정 2002-09-10 오후 12:57:50

[뉴욕=edaily 공동락특파원] 9.11테러가 일어난 지 1년이 흘렀다. 21세기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9.11은 미국사회와 미국인들의 생활상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뉴요커들에게 9.11 테러는 단순한 충격 이상이었다.

테러 발발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테러 복구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시민들을 독려했다. 테러 이후 1년 뉴요커들은 과연 일상으로 돌아왔는가.

9.11테러가 가져온 변화중 무엇보다 큰 물리적인 변화는 월드트레이드센터(WTC) 건물이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다.

과거 센트럴파크 남쪽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맨하튼 남단의 WTC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은 세계 최고의 야경을 자랑하는 뉴욕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한쪽이 사라지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무너진 WTC는 관광지로서의 성격도 180도로 바꿔놨다. WTC는 과거 자본주의의 심장으로 세계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는 장소였으나 이제 국립묘지와 같은 숙연함과 테러의 참상을 일깨우는 교훈적인 장소로 탈바꿈했다.

이곳을 방문한 한 관광객은 "과거에도 WTC를 방문했는데 그때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고 당혹스럽다"며 "그 거대한 건물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현장에 와 있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공장소면 어디든 소지품 검사 행렬
테러 이후 뉴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안 검색의 강화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경찰이나 보안요원들이 배치되고 어김없이 가방을 비롯한 소지품 검사가 이뤄지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난 8월 24일 양키즈 스타디움. 뉴욕양키즈와 텍사스레인저스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미국인들에게 야구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들과 함께 즐기는 또 다른 생활의 공간이다. 곳곳에서 양키즈 로고가 새겨진 모자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경기장 주변에선 언제나 흰모자에 무전기를 들고 주변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눈에 띤다. 소지품을 검사하는 경기장 안전요원들이다. 이들은 관람객들의 짐을 하나하나 검사하고 심지어 핸드폰을 작동해 보기도 했다. 또 모자를 쓴 사람들에게는 모자를 한 번 들어보게 하고 검사가 끝나면 소지품을 내용물이 잘 보이는 투명한 비닐 봉지에 옮겨 담게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서관, 박물관 등의 실내장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출입구 앞에 벌써 소지품을 검사하기 위한 행렬이 어김없이 줄지어 있고 손전등을 이용한 짐수색도 이뤄진다.

God Bless America!!
보안 검색의 강화가 생활상의 변화라고 한다면 보다 강력해진 "애국주의"는 미국민들의 정서적인 변화다. 단적인 예가 미국민들이 성조기에 대한 애착이다. 이같은 정서는 지금도 이어져 가정집이나 공공건물, 자동차 등에 게양돼 있는 성조기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애국심 고양 현상은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경기 둔화로 다시 하락세를 걷고 있지만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테러 직후 한때 90%까지 올라갔다.

군대 모집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부터 지원자가 줄어 모집인원의 절반도 못채우던 국방부는 상반기에 이미 올해 모병 목표치를 달성했다.

맨하턴 지하철 환승역. 거리의 악사들에게도 "God Bless America"라는 곡은 이제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환승역 사이로 울러퍼지는 색소폰의 진한 선율은 이제 뉴욕을 나타내는 또다른 상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민들이 손꼽는 정서상의 변화는 삶의 자세가 이전보다 훨씬 진지해졌다는 점이다. 테러가 처음 터졌을 때 격앙됐던 감정이 차츰 안정되면서 이제는 자신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 것이다.

WTC 사고현장에서 만난 중년 남성 토마스 디아래고네즈는 "9.11은 미국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Turning Point)"이라며 "앞으로 미국 역사의 구분이 9.11테러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아래고내즈는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으며 뉴욕에 출장을 위해 방문했는데 공항에 도착해서 곧바로 WTC 현장으로 달려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곳을 먼저 방문해야한다는 의무감으로 택시를 타고 무작정 달려왔다며 막상 현장을 접하고 보니 가족과 이웃의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라덴의 진짜 목표는 미국 경제(?)
9.11테러 이전에도 미국의 경제상황은 썩좋은 편이 아니었다. 연준리는 2001년 1월부터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 9.11테러가 일어나기 직전의 8월 FOMC까지 모두 7차례나 금리를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연준리의 기준금리는 1.75%로 40년래 최저금리가 유지되고 있지만 상황은 별로 개선된 것이 없다. 물론 완만한 경제성장을 테러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이를 기점으로 경기가 더욱 악화됐다는 점은 지표상으로도 분명해 드러난다.

민간경제 연구기관인 컨퍼런스보드에 따르면 8월 소비자신뢰지수는 87.6을 기록했다. 이는 테러직후 조사된 지난해 10월의 85.5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다. 올해 초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로 각종 지표들이 반짝 호조를 보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테러 전후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지난 9월 7일 최고의 전통을 자랑한다는 맨해턴 34가의 메이시 백화점. 그중에서도 가장 경기에 민감하다는 여성의류 매장. 가을을 앞둔 신상품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지만 고객들의 발걸음은 뜸했고 가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이월 상품을 할인해서 판매하는 특별 매장 몇군데에 불과했다.

의류매장 한켠에 향수 코너에 근무하는 점원은 "몇가지 전략적인 저가판매 제품에만 수요가 몰리고 있다"며 "올해는 크리스마스 할인시즌을 좀 더 일찍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러가 경제에 미친 영향중 보험사와 항공사들을 빼놓을 수 없다. 보험사들의 손실은 400억~5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항공사들은 아직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이중 일부는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경제의 움직임은 단기간에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따라서 9.11 테러가 미 경제에 미친 영향은 두고두고 평가돼야 한다.

하지만 9.11 테러로 인해 미 경기회복의 사이클이 둔화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빈 라덴이 쓰러 뜨린 것은 월드트레이더센터라는 미국의 자존심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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