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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렸다. 신작이 많지 않은 뮤지컬 시장에 `조로`는 모처럼 그럴듯한 대작이었다. 게다가 `지킬 앤 하이드`의 조승우가 돌아온다지 않는가.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린 판은 서곡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적잖이 부족해보였다.
뮤지컬 `조로`는 칠레 출신 극작가 이사벨 아얀데의 동명소설을 무대로 옮겼다. 19세기 초 미국 캘리포니아를 지배하던 스페인 귀족마을이 배경. 자신의 아버지를 감금하고 마을을 장악한 채 주민들을 착취하는 옛 친구 라몬에 저항하는 영웅 디에고의 모험담이 줄기다. 2008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했다. 국내선 처음이다. 1760석을 갖춰 국내 최대 뮤지컬 전용관이 된 블루스퀘어 개관작으로 선정돼 더욱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우는 검객의 드라마에 지나치게 열중했다. 덕분에 노래가 귀한 뮤지컬이 됐다.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해 3시간10분에 달하는 극은 늘어지는 드라마가 다 채운 듯한 느낌이다. 정말 인간적인 조로를 보이려 했나. 하지만 실제 부딪히는 칼끝에 불꽃이 이는 한판 승부 뒤 가뿐 호흡을 내쉬는 조로를 `인간적`이라고만 해도 되는지도 의문이다.
작품을 살리는 요소는 다른 데 있었다. 앙상블이다. 이들은 때론 자유로운 집시로 때론 착취당하는 주민으로 등장해 최대치의 감동을 끌어냈다. 스페인 색 물씬 풍기는 플라멩코는 자유로움에 깃든 외로움을 감추지 않았고, 심장박동소리에 맞춘 탭댄스는 식민지 독재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한마디로 앙상블의 승리였다. 차라리 주연보다 빛났다는 얘기다.
허공에서 훌쩍 뛰어내리고 한 가닥 밧줄에 매달려 칼을 휘두르는 연기에도 배우들은 몸을 아끼지 않았다. 와이어 장치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단촐한 무대 위 연기가 그저 안쓰러워 보일 따름이다. 어쨌든 반응은 갈릴 수밖에 없게 됐다. 어디에 눈을 두느냐에 따라서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내년 1월15일까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