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환의 크레딧스토리)신용평가사를 위한 변명

  • 등록 2005-02-03 오후 1:43:24

    수정 2005-02-03 오후 1:43:24

[edaily] 최근 신용평가사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감독당국이 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가 하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연구소에서도 관련 보고서를 내고 있다. 신용평가가 잘 돼야 회사채 시장도 살고 회사채 시장이 살아야 기업의 돈줄이 열린다는 면에서 환영할만 한 일이다. 지난 2일 임경묵 KDI 박사는 "채권시장에서의 신용평가기능 개선을 위한 정책방향"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전체적으로 신용평가와 관련한 미국과 우리 시장의 현안들을 탁월한 시각으로 잘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를 거쳐 줄곧 회사채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현장의 시각에서 보면 아쉬운 부분도 몇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 왜 하필 지금인가 연구보고서에 대한 검토에 앞서 이러한 연구가 하필 이 시기에 진행된 배경을 먼저 생각해보자. 관례로 보아 아마도 금융정책당국의 요청이 있었을 것이다. 최근 여러 금융정책기관의 신용평가에 대한 관심이 전에 없이 크다. 신용평가에 대한 관심은 사실 회사채시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뿌리는 혁신주도형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이슈에 닿아있다. 시대적 정책과제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전하는 언론의 논조는 대체로 신용평가에 대한 불신으로 모아지고 있다. 흡사 지난번 카드위기가 모두 신용평가의 뒷북치기에 기인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일단 명쾌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눈을 들어 좁게는 우리 회사채시장, 크게는 금융시장 전체의 시스템을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과제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또 어떤 방향으로 풀어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강조하듯이 신용평가는 회사채시장의 허브(hub)다. 하지만 신용평가사의 위치는 회사채시장의 변방이다. 신용평가의 문제는 단순히 평가사만의 것이 아니라, 회사채시장 나아가 기업자금 조달구조의 질곡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시장의 참여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가 신용평가에 대해 숙의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신용평가사에게만 돌을 던질 것인가 임 박사가 신용카드와 관련한 신용평가의 평가 실패 과정을 정리한 부분은 속이 다 후련할 정도로 명쾌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유념해야 한다. 그러한 실패가 단지 신용평가사의 이해관계나 부주의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점이다. 당시 신용평가사의 수입에서 카드사(ABS 포함)의 비중이 매우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신용평가사가 그들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신용평가사의 직무수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제대로 자료를 받아내지 못하는 신용평가의 낮은 위상과 유동성리스크에 대한 인식부족 때문이었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인 모두 신용평가의 책임이 적지 않다. 신용평가는 항상 보다 충실한 정보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환경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각되는 리스크 요인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시장이 함께 해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신용평가의 자존심과 자신감은 시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안정적인 물적기반을 갖추도록 해주어야 한다. 든든한 물적기반이 있어야 소신도 있다는 유항산 유항심(有恒産 有恒心)은 맹자님 말씀이다. 임 박사의 신용평가사에 대한 꾸지람은 이 부분과 관련하여 다소의 지나침이 있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평가사 분석업무 담당자의 보수가 영업실적에 연동”은 엄연히 사실이 아니다. 일괄적인 성과급을 그렇게 표현했다면 과장된 것이다. 또한 부대업무나 주요주주의 영향력도 문제의 소지는 있지만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대주주의 후광을 활용하는 것은 다른 평가사도 마찬가지다. 결국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시장에서는 경영실적에 대한 평가사 경영진의 부담이 등급덤핑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더 우려한다. 하지만 무디스와 같은 탁월한 이익구조는 누구도 수긍하지 않는다. 신용평가는 국가예산으로 움직이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수익기반과 관련해서는 어쨌든 설왕설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문제는 다독거리면서 서서히 고쳐가는 것이 또 다른 큰 문제를 만들지 않는 방법이다. ◇ 신용평가를 바꾸려면 임 박사는 과거 투신협회 주도의 `신용평가사에 대한 평가`를 재개하자고 주장한다. 원론에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형식에 치우친 과거실적 계량분석과 투신 펀드매니저 대상의 인기투표에 의한 단순 서열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평가는 충분한 설명력과 미래지향성을 가져야 한다. 연기금, 보험, 은행, 투신, 증권 등 회사채 유관기관 일반의 참여와 평가사의 개선노력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1월 7일자 칼럼에서 피력했듯이 각계의 등급이용자 몇 사람이 모여서 `최악의 신용등급(worst ratings)`을 선정 발표하는 것이 차라리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신용평가의 이러저러한 이슈를 미국의 상황에 견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본질의 차이는 알고 있어야 한다. 미국의 신용평가 규제 움직임은 다분히 시장(금융자본)과 신용평가의 과도한 유착을 견제하려는 의지를 안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신용평가는 아직 시장과 그렇게 긴밀한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소원해서 문제다. 우리나라의 신용평가는 80년대 후반에 정책의지에 의해 도입되었지만 오랫동안 그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2000년의 채권시가평가 도입이다. 비로소 신용등급이 시장의 가격형성에 긴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회사채시장에는 크레딧 애널리스트라는 새로운 직종이 형성되었다. 시장과 신용평가의 접근은 회사채시장의 부진과 극히 제한적인 인력교류로 인해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지만 어쨌든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시장의 크레딧 애널리스트도 꾸준히 늘고 있고, 상호간의 이해도 크게 증진됐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어설픈 것이 현실이다. 좀처럼 내려 놓지 못하는 미망도 적지않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대로 문제를 짚고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 동안은 당국의 정책(또는 규제)이 그 역할을 해왔지만 아무래도 논리의 체계와 설명력은 미흡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연구는 상당한 기여가 예상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런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번 연구는 일과성으로 그치지 않고 더욱 심화됨으로써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끄는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윤영환/굿모닝신한증권 기업분석부 연구위원/Credit analy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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