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석의 환율定石)印尼발 외환위기 `기우`일까

  • 등록 2005-09-13 오후 1:52:30

    수정 2005-09-13 오후 1:52:30

[이데일리 오정석 칼럼니스트] 지난달말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움직임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달러/루피아 환율은 올들어 서서히 상승폭을 늘리며 4월 9700루피아를 기록한 뒤 6월까지 9500루피아선으로 물러났으나 7월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재개했다. 중순무렵 9800루피아를 넘어섰고 지난달 22일 1만루피아를 돌파했다. 

달러/루피아 환율이 1만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5월 9000루피라로 올라선지 1년 3개월여만이고 2002년 3월 이후 3년 5개월만에 처음이다.

지난달말 10775루피아를 정점으로 달러/루피아 환율은 최근까지 10000루피아 부근에서 다소 안정세를 회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제외환시장에서는 루피아화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계속 보내고 있다.

◇ 8월 아시아를 긴장시킨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8월말 인도네시아 루피아 환율 움직임이 일순간 아시아 지역을 긴장시켰다. 바로 97년 이 지역을 휩쓴 전대미문의 외환위기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루피아화는 97년 당시에도 우연의 일치인지 7월 중순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 이후 8월 말을 기점으로 급락세를 나타내면서 인도네시아에 외환위기를 불러왔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급락세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가보조금의 지급 급증에서 출발하였다. 물론 유가보조금 지급이 늘어난 것은 국제유가의 끝모르는 상승 행진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가 현 수준에서 안정된다고 해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 유가보조금으로 140조루피아(약 143억달러)를 지급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재정부담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IMF는 97년 외환위기 직후 인도네시아 정부에 이러한 보조금 지급을 줄일 것을 권고했으나 문제가 불거진 최근까지도 유가보조금 지급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이것이 다시 화를 부른 셈이다.

루피아화 급락세에 대처하여 인도네시아 정부는 단기금리를 세 차례에 걸쳐 인상했고 외환시장 직접 개입을 선언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전개하여 다행스럽게도 루피아화는 8월말 이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유가보조금 축소 또는 폐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 루피아화 폭락이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사실 유가보조금 지급은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이들 국가에서의 유가 안정과 소비증대에 어느 정도 기여해 왔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면서 아시아 諸 국가들은 유가보조금 지급을 축소 또는 재검토하는 단계에 있지만 이것이 정치 경제적 문제이다 보니 섣불리 결정을 못하고 있다. 보조금 축소 또는 폐지가 자국내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고 소비위축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국내 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큰 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한 시점에서 보조금을 축소한다는 것은 집권세력에게 있어서 거의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수 있어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 97년같은 위기 확대 가능성 희박

그다지 주목 받는 경제권이 아닌 인도네시아에서의 일련의 사태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97년 외환위기라는 안 좋은 추억 때문이다. 97년 7월 태국에서 시작하여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거쳐 한국을 급습한 외환위기는 한 국가에서 발생한 위기에 인접한 주변 국가들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염효과(contagion effect)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최근의 루피아화 폭락은 97년과 동일한 경로를 통해 외환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에 시장에는 아연 긴장감이 감돈 것이다.

일단 97년과 같은 사태가 재발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가 큰 폭으로 하락하기는 했지만 외환위기라 칭할 정도의 폭락세를 보인 것은 아직 아니고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주변 국가들의 방어능력이 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었다는 것이 그 근거로 언급된다.

97년 경험에 따른 학습효과도 이제는 가만히 당하고 있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듯 싶고, 아시아 국가들의 펀더멘탈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국제투기세력들에게 아직 공격의 빌미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낮춰 준다.

특히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이 2067억달러(8월말 현재)에 달하고 있고 그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금융시장 개혁 및 경제 체질 개선을 어느 정도 완료하였기 때문에 아시아 그 어느 나라 보다도 위기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

여러가지 주변 여건을 살펴봤을 때 한국, 나아가서 아시아 지역에 외환위기의 광풍이 다시 휘몰아 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97년과 같은 외환유동성 문제도 전혀 없으며 기업들의 재무적 안정성 제고로 대기업들의 부도 가능성도 제로(0%)에 가깝고 자본유입세가 갑자기 역전될 이유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외환위기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쑥스럽기까지 하다. 괜히 불안 심리를 조장하는 것 같아서 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망설여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데, 그것은 바로 외환위기의 역사와 속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97년이 처음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이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이미 1880년대부터 외환위기를 포함한 금융위기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주기적으로 뒤흔들었고, 70년 1월부터 2002년 2월까지 20개 국가(선진국 포함)에서 발생한 외환위기 횟수가 무려 96회에 달한다는 연구보고서도 있을 정도로 경제학계에 있어서 외환위기는 결코 낯선 용어가 아니다.

또한 외환위기는 펀더멘탈이 악화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펀더멘탈과 상관없이 찾아오기도 하며 경제구조가 유사한 인접국가의 위기가 전이되기도 하는 등 그 발생 원인이 다양하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는 등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질 않아 예측이 어렵고 그 피해는 우리가 경험했듯이 상상을 초월한다.

일반적으로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가에서만 발생하는 줄 알았던 외환위기가 92년 EMS 외환위기를 통해 선진국들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고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위기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었던 아시아 국가들도 97년에 위기에 직접 노출됨에 따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외환위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확인된 바 이러한 사실들을 상기한다면 과연 우리가 외환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을 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8년 이라는 시간 동안 위기가 재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외환위기가 2~3년의 기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라틴아메리카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위기 관리능력이 우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배럴당 70달러선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도 60달러대 초반으로 안정세를 되찾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체력도 양호하므로 외환위기는 당면 현안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앞서 지적하였듯이 외환위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때로는 별다른 징후 없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외환위기가 발발한 지 8년이 지난 지금 이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다시 한 번 살펴 보고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은 결코 시간낭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위기를 야기할 만한 임박한 위협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8월말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움직임은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고 그것이 다시 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서서히 막을 내려가는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over-lending cycle의 종언과 자본유입이 갑자기 중단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선적인 관심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를 포함한 금융위기는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연구되어 왔고 많은 진전이 있었다. 학계에서는, 60~70년대 라틴 아메리카 외환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1세대 모형`과 90년대 초 EMS 외환위기를 계기로 제시된 `2세대 모형`, 그리고 94년 멕시코 환율불안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로 전염된 데킬라 위기(Tequila crisis)와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설명해 주는 `3세대 모형` 등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예측능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기는 하지만 계량분석을 이용한 외환위기 예측모델도 상당수 나와 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이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KB선물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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