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의 월가 키워드)Exile

  • 등록 2004-05-27 오후 1:28:11

    수정 2004-05-27 오후 1:28:11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뱅크원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과 시티그룹의 샌포드 웨일(Sanford I. Weill) 이야기를 `Mentor`라는 제목으로 지난 1월29일 기사화한 후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기사의 출전이 어디냐"는 물음이었다. 월가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비교적 자세하게 알려져 있는 모양이지만, 기사를 쓸 당시에는 보고 베낄만한 책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실린 과거 기사를 검색해서 조각조각 이야기를 맞춰나갔다. 얼마전 맨해튼 팬스테이션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마침 시간 여유가 있어서 역구내 서점에 들어갔다. 신간 코너에 `Tearing Down the Walls`라는 책이 있었다. 부제는 "How Sandy Weill Fought His Way to the Top of the Financail World and Then Mearly Lost It All" 이었다. 단번에 "그 독자가 원하던 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저자는 모니카 랭글리라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다. 샌디 웨일 회장이 어떻게 자신의 금융제국을 건설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투쟁`을 벌였으며, 우정과 배신의 드라마를 만들어갔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Mentor`가 다룬 제이미와 샌디 이야기는 둘 사이가 갈라지고, 복수를 꿈꾸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이미 다이먼이 기사의 중심이다. 언젠가는 샌디의 입장에서 뒷얘기를 찾아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샌포드 웨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추방(exile)`이었다.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 샌디는 폴란드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영업으로 그럭저럭 집안을 잘 꾸려나갔다. 샌디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코넬 대학에 입학했다. 샌디의 꿈은 대학 졸업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회사를 이어받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집안에 큰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젊은 여비서와 눈이 맞아 어머니를 버린 것이다. 회사도 몰래 팔아버렸다. 샌디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배신`을 경험했다. 샌디는 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결혼하기로 약속한 약혼녀가 있었다. 아버지의 배신으로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샌디는 `가족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샌디는 어찌어찌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호구지책을 마련해야했다. 그가 문을 두드린 곳이 다름 아닌 월스트리트였다. 1950년대 월가는 황금도시 앨도라도였지만, 샌디처럼 금융을 전혀 모르는 젊은이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유태인 딱지까지 붙은 샌디는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했다. 샌디가 월가에서 맡은 첫번째 임무는 증권수도였다. 주식과 채권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대금을 받아오는 것으로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았다. 샌디는 회사의 브로커들이 엄청난 월급을 받아가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했다. 그 다음 샌디는 후선부서(back office)에 배치됐다. 브로커나 트레이더들은 계좌를 어떻게 관리하고, 결제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다. 샌디는 묵묵히 백 오피스 업무를 배워나갔다. 마침내 샌디는 보스의 허락을 받아 브로커 시험을 치룬다. 브로커 자격을 얻는 샌디는 직장을 옮겨서 자신만의 고객을 관리하게 된다. 브로커 샌디는 적극적으로 고객을 찾아나설 위인이 못됐다. 브루클린 친구들과 아내 조안의 도움으로 몇몇 계좌를 관리하며 브로커 경력을 쌓아갔다. 그럭저럭 월가에서 5년을 버틴 샌디는 1960년 유태인 동료들과 함께 작은 회사를 만든다. 그들의 이름을 따서 `카터, 벌린드, 포토마 앤 웨일`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1960년대 월가는 이른바 `Go-Go` 시대였다. 대형 블루칩들은 영원히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브로커 영업도 단순해서 돈 많은 전주들과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IBM이나 AT&T같은 주식을 사라고 권하는 게 전부였다. 샌디는 그때까지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책상머리를 지키며 기업들의 회계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샌디의 회사도 증시 활황 덕을 보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고객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서 백 오피스를 확장할 필요가 생겼다. 동료들은 샌디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샌디는 꼼꼼하게 백 오피스 시스템을 구축했다. 회사가 지금보다 몇배 더 커질 것을 대비했다. 백 오피스 경험이 풍부한 수줍은 브로커 샌디의 시대가 곧 도래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구조조정 전문가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Go-Go 시대의 거품이 무너지자 월가는 빙하기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수십년 전통의 브로커 회사들도 하나 둘 문을 닫을 처지가 됐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회원사들의 부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시절이 험악해지면 사건 사고도 많아진다. 백 오피스 관리를 엉성하게 한 회사들이 잇따라 사고를 치면서 월가 전체의 신뢰도가 위태롭게 됐다. NYSE는 부실 브로커 회사를 조용히 인수해줄 `청소회사`를 찾고 있었다. 그때 NYSE의 주목을 받은 것이 바로 샌디의 회사였다. 당시 샌디의 회사는 동업자들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CBWL로 불렸다. 최초 회사를 만든 동료 중 일부가 회사를 떠나고 새로운 파트너들을 받아들이면서 CBWL이 됐다. 이 중에는 나중에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이 되는 아서 레빗도 포함돼 있다. 파트너가 모두 유태인이고, 규모도 보잘 것 없는 CBWL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월가의 대형 브로커리지 회사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CBWL을 비하해서 `Corned Beef With Lettuce`라고 놀렸다. 이런 CBWL이 `문제 회사들`을 하나 둘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려나갔다. 그 핵심에 샌디가 있었다. 영업전선에서는 뒤로 한발 물러서 있었지만, 후방에서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은 샌디밖에 없었다. CBWL이 다른 회사들을 인수할 때마다 샌디의 역할이 커졌고 마침내 그는 동료 파트너들을 제치고 CEO가 된다. 샌디는 `무식한 사장`의 전형이었다. 대식가인 샌디는 고상한 예술을 즐기기보다는 좋은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시거광이기도 했다. 업무 시간 내내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았다. 샌디는 업무에 있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한번은 회사에 불이 났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샌디는 회사에 불이 난 것을 보고 급히 달려갔다. 빌딩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직원을 붙잡고 샌디는 "채권, 주식예탁증서, 수표는 어떻게 했어"라고 외쳤다. 그 직원은 "사장님, 그걸 어떻게 챙겨 나오겠어요. 피신하기도 급한데"라고 말했다. 샌디는 "이런 망할 놈. 당장 뛰어들어가지 못해. 우리 사무실이 있는 층에는 아직 불이 안붙었잖아"라고 윽박질렀다. 샌디는 비용절감에는 귀신이었다. 하루는 비용관리부서를 순시하다가 우편발송 비용이 너무 많은 것을 지적했다. 직원은 "회사가 합병되면서 증권분석자료를 발송하는 고객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해명했다. 샌디는 고객명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샌디는 "이런 XX새끼!(You fucking idiot!). 같은 사람에게 중복해서 자료를 보내고 있잖아. 도대체 몇명이나 중복돼 있는거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합병, 비용절감, 다시 합병, 다시 비용절감"을 반복하며 회사 규모를 키워나간 샌디는 1979년 마침내 롭로즈라는 유수의 증권사를 인수, 자신의 첫번째 왕국 시어슨을 완성한다. 시어슨은 1980년 월가의 상징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 106층으로 본사를 이전한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샌디는 저층을 원했지만 106층에서 시어슨 최후의 경쟁자인 메릴린치 사옥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말에 주저없이 계약서에 서명한다. ◇수평적 결합에서 수직적 결합으로 샌디가 시어슨 왕국을 만드는데 일등 참모는 피터 코헨이었다. 샌디가 제이미를 얻기 전까지 코헨은 샌디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사 규모를 키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코헨은 샌디의 오른팔이었다. 샌디는 코헨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했다. 코헨은 자신이 시어슨에서 중책을 맡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샌디는 이를 무시했다. 실망한 코헨은 잠시 샌디를 떠나기도 했다. 샌디는 시어슨 왕국을 완성하는데 코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시어슨을 그에게 넘겨준다는 암묵이 있었다. 1980년대 월가는 새로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월가는 우량 증권사가 부실 증권사를 인수하는 `수평적 결합`에 주력했다. 증권사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마지막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쟁의 양상을 하루 아침에 바꿔놓은 대사건이 벌어졌다. 1981년 3월 20일 프루덴셜보험은 바체할시증권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보험과 증권, 각기 다른 영역을 결합하는 수직적 합병이 일어난 것이다. 샌디는 프루덴셜의 막강한 보험 세일즈 조직이 증권사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샌디는 그 즉시 합병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프루덴셜에 의표를 찔린 것은 샌디만이 아니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짐 로빈슨 회장도 위기를 직감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시어슨은 이전에도 교감을 한 적이 있다. 경쟁사인 메릴린치가 CMA(Cash Management Account)라는 신상품으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시어슨은 이에 대항하는 FMA(Financail Management Account)를 내놨다. 샌디는 이 상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FMA 고객에게 카드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했다. 그 파트너로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선택했던 것이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도 시어슨이 확보하고 있는 고급 고객 명단이 은근히 탐이 났다. 양사가 이 문제를 놓고 논의를 벌이는 사이 프루덴셜이 바체를 인수한 것이다. 샌디와 로빈슨은 두 회사의 합병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생명으로했다. 반면 시어슨은 증권사 특유의 방만한 기운이 넘쳤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샌디의 저돌적인 성격도 마음에 걸렸다. 그가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삼키지 않을까 우려했다. 시어슨은 25억달러 짜리 회사였지만,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200억달러의 회사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샌디를 받아들였을 때 그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지가 숙제였다. 양사의 합병이 급속도로 진척되던 어느날 샌디와 코헨은 같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샌디는 차에서 내리면서 한마디 불쑥 던졌다. "코헨 자네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합병을 하더라도 이사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게 알고 있어." 코헨은 충격을 받았다. 샌디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코헨은 샌디의 집으로 달려갔다. 코헨은 샌디에세 해명을 요구했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우리에게 이사 자리 2개를 준다고 했어. 한 자리는 내 친구 변호사를 앉히려고 한다.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합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헨은 샌디와의 결별을 직감했다. 두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가 이제부터는 분명히 달라졌다. ◇추방 그리고 새로운 동반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이사회는 시어슨과의 합병을 논의하기 위해 하루 종일 회의를 열었다. 로빈슨과 세부적인 부분에서 합의를 마친 샌디는 불안했다. 마침내 로빈슨이 찾아왔다. 그는 "이사회가 합병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샌디를 이사진에 받아들일 수 없다. 대신 그의 대리인으로 코헨과 다른 한명을 이사진에 포함시키겠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집행 이사회 의장직을 맡게 된다"고 말했다. 샌디는 "그렇다면 투자자들에게 매년 보내는 레터에 로빈슨 회장과 공동으로 서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로비슨과 자신이 동격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로빈슨은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시어슨이 합병했다. 시어슨 주주들은 당시 주가의 3배에 달하는 프리미엄을 받았다. 샌디 자신도 백만장자가 됐다. 샌디는 그러나 미국 최대의 금융왕국 중 하나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더 큰 일을 해보고 싶어했다.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조직 문화을 이해하지 못했다. 샌디는 여행자수표 부문의 실적이 좋지 않은 이유 들어보려고 담당 이사를 찾았다. 마침 그는 외부 출장 중이었다. 샌디는 출장을 중지하고 즉시 달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 이사는 "현재 테스크포스 팀이 그 문제를 연구하고 있고, 곧 프리젠테이션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복귀 명령을 거부했다. 샌디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이것이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로빈슨은 샌디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샌디는 회사의 약점을 정확하게 골라냈고, 그 해법도 기가막히게 제시했다. 로빈슨은 이런 샌디를 더욱 견제해야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로빈슨은 샌디의 오른팔 코헨을 불렀다. 다음 이사회에서 사장을 선출해야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물었다. 코헨은 "당연히 샌디가 사장이 돼야한다"고 답했다. 로빈슨은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당시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최고급 고객을 위해 유럽에 있는 은행을 하나 인수하려고 했다. 그 인수 프로젝트에 샌디와 코헨이 참여했다. 코헨은 "샌디가 사장이 되지 않으면 이번 유럽 은행 합병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로빈슨은 코헨이 합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며 흡족해 했다. 이사회가 열렸다. 로빈슨은 공개적으로 코헨을 칭찬했다. 로빈슨은 "코헨은 우리 회사의 보배"라고 말했다. 샌디는 놀랐다. 로빈슨은 곧이어 샌디를 사장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로빈슨은 샌디에게 증권 부분(시어슨)에서 손을 떼라고 권고했다. 샌디는 자신의 근거지를 내주는 것이 불안했지만, 로빈슨의 뜻대로 시어슨 CEO로 코헨을 임명하고 자신은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사장직에 전념했다. 샌디가 사장으로 승진할 즈음 제이미가 찾아왔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제이미는 골드만, JP모건 등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제이미는 아버지의 상사였던 샌디에게 어느 곳이 좋은지 자문을 얻으려 했다. 샌디는 제이미에게 자신의 비서로 일해 줄 것을 부탁했고, 제이미는 이를 받아들였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사장` 샌디는 마침내 정상에 선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함정이었다. 샌디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샌디는 할 일없이 대낮부터 포도주에 취해, 빈둥거리기만했다. 샌디에게 오랜만에 일거리가 생겼다.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IDS라는 금융자문사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샌디는 정열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로빈슨은 코헨을 따로 불러서 IDS 실사를 객관적으로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IDS는 인수가격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실사를 허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샌디는 IDS가 원하는대로 인수가격을 먼저 결정하고, 실사단을 보내기로 했다. 실사단에 포함된 코헨이 인수가격이 정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샌디, 인수가격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샌디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코헨은 "그럼 실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는 본사로 돌아갔다. IDS 인수는 무산됐다. 코헨은 샌디를 도와주지 않았다. 샌디는 코헨이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내에서 샌디의 위치가 더욱 불안정해졌다. 샌디에게 마지막 기회가 왔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관리하는 연금 펀드 하나가 큰 부실로 골치거리가 됐다. 샌디는 그 펀드를 자신이 개인적으로 인수하고 싶다고 했다. 샌디는 로빈슨에게 그 펀드를 받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로빈슨은 못이기는 척 이사회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샌디의 마지막 요청도 거부했다. 샌디는 구조조정의 대가다. 만약 펀드를 회사 내부자인 샌디에게 팔고, 샌디가 이를 정상화시키면 이사진이 소송에 직면할 수도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랬지만, 샌디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샌디는 이사회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들었다. 1985년 6월 25일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조용히 물러난다. 그를 따라 나온 직원은 비서였던 제이미 다이먼이 유일했다. ◇충성심에 대한 집착 샌디는 아버지로부터의 배신, 오른팔 코헨으로부터의 배신 때문에 `충성심`을 부하의 제일 덕목으로 생각하게 됐다. 샌디와 유배 길에 오른 제이미 다이먼은 `사실상의 아들`이었지만, 제이미에게도 무한 충성심을 요구했다. 샌디가 재기에 성공하고, 시티그룹과의 합병을 거쳐, 존 리드 회장과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샌디는 제이미 다이먼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이미 추방된 경험이 있다. 그는 투쟁에서 밀려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제이미 다이먼은 샌디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췄고, 벌써부터 후계자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샌디는 제이미가 자신의 친딸 제시카 비블리오윅을 내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샌디는 부인과 자식들을 끔찍히 위했다.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아픈 기억에 대한 반작용때문이다. 샌디는 두번 다시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친아들이나 다름없는 제이미를 제거했다. 월스트리트는 비정한 거리다. 1985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추방당한 샌디는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첫날 샌디는 자신에게 위로 전화를 건 사람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누가 자신의 진정한 친구이고, 누가 자신의 적인지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였다. `복수심`은 월가를 움직이는 또 다른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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