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에)우리는 그들을 스파이라 부른다

  • 등록 2005-08-12 오후 4:14:28

    수정 2005-08-12 오후 8:53:04

[이데일리 문주용 경제부장] 손관승 MBC기자는 역저 `우리는 그들을 스파이라 부른다`에서 스파이를 창녀와 함께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스파이세계의 속설을 소개했다.

스파이史의 가장 오랜 얘기의 배경은 호머의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트로이전쟁이다. 트로이가 그리스 연합군이 선물한 `목마`를 불태우려는 순간 오딧세우스가 미리 침투시켰던 스파이 `시논`이 등장한다. 고정간첩이다.

그는 트로이인들에게 "트로이군의 수중에 들어가면 트로이군이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자가 말했다"고 속였다. 트로이인들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스파이의 세치 혀에 놀아나 나라를 잃었다.

성서에도 스파이 활동이 자주 기록되어 있다. `여호수아 12 정찰대`가 대표적이다. 애굽에서 탈출한 모세가 여호수아 12 정찰대에게 가나안 땅이 정착하기에 적당한지를 미리 가서 알아보라고 명령한다. 여호수아 등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하지만, 또다른 정찰요원은 `용맹한 가나안인들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땅`이라고 보고한다. 이 때문에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40년을 헤맨다.

이런 `스파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전세계에 120만명이상이 된다고 한다.

이들이 만드는 `파일`은 언제나 큰 폭발력을 일으킨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미 FBI(연방수사국)의 전설적 인물, 에드거 후버의 파일이다. 후버는 존 F 케네디등 거물정치인들, 경제인, 심지어 연예인들까지 뒤를 밟고 대통령 들을 위협하며 오랜동안 FBI국장 자리를 지켰다. 그가 갑자기 죽자 대통령 등이 파일 확보에 혈안이 됐다. 하지만 죽고난 뒤 파일의 위력은 살아있을 때의 위협에 비해 대단치 않았다.

스파이인지, 공작원인지 이들의 과거 불법적 행동때문에 우리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국민들의 반응은 공권력에 의한 비밀 보호가 침해당한데 대해 `불쾌하고 놀랍다`며 공분하는 반면, 일부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들은 파일이 있다는 사실에 구린듯 움찔하는 모습이다. 파일 처리를 놓고 특별법, 특검법이 제출되고 시민단체 등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통일 독일도 동독 정보기관의 파일 처리에 곤욕을 치렀다.

동독이 과거 주민들을 감시하며 만든 자료외에도 서독에 파견한 스파이들이 만든 서독 정치인등의 자료가 200만개 이상이 됐다. 유명한 비밀경찰기구 `슈타지`가 만든 파일이다. 이 파일 처리를 위해 동독의 목사이자 민주주의 운동가인 요하임 가욱을 책임자로 한 `가욱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가욱위원회는 법에 따라 슈타지 보고서를 베를린의 문서보관소로 옮겨 지금도 철저한 검증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주 목적이 자료 검증과 역사적 재평가다.

서독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파일보다 더 골치아프게 했던 것은 슈타지가 동독 주민을 감시하면서 만든 파일이다. 주변 동료가 자신을 밀고한 사례가 너무 흔해 이것이 공개될 경우 가히 핵폭탄이 될 만했다. 이중에는 비밀경찰의 음모가 숨어있고 거짓정보도 있었기에 공개보다는 정확히 가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가욱위원회는 개인에 관한 자료를 열람하고자 할 경우는 "개인의 복권과 보상문제, 국회의 동의를 받아서 국회의원이 그 문서를 심사하고자 할 때, 공공기관 근무자를 계속 채용 또는 해고시키고자 하는 경우, 동독 비밀경찰의 위법사항을 처벌하고자 할 경우"로 제한했다.

어쨌든 불법적인 방법으로 얻은 자료를 이용해 개인의 비리를 처벌해선 안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입법화는 실패했다.)

처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통일독일은 서독을 위해 일한 첩보행위는 처벌하지 않기로 했고, 동독을 위한 첩보행위는 단지 정보수집에만 국한된 것은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동독을 위해 일한 서독인중 자수한 사람은 3년이하의 금고형이면 사면에 포함시켰다. 동독주민을 억압한 비밀경찰등은 처벌됐다.

현재 우리 상황은 독일의 정보기관 통합상황, 처리과정과 무척 다를 수 있다. 독일은 서독, 동독 양 적대체제의 통합이었고, 우리는 권위주의체제에서 민주주의주체로 옮겨가는 체제 전환이다. 그렇지만 국민이 겪어야 했던 직접적 통증은 덜하지 않다.

생각해 볼 대목은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 `내재적 접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내재적 접근`은 송두율 교수가 북한의 상황을 내면적으로 이해한 후에 그 바탕하에 단죄인지, 평가인지를 해야한다는 논리다. 동독 주민이 주민억압과 감시망하에서 이웃을 밀고한 일은 당시로선 어쩔 수 없었다고 인정해주는 논리이기도 하다.

권위주의 체제의 삶과 행동에 대해 `내재적 접근`으로 다가간다면, `X 파일`은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 불법 도·감청을 상상도 하지 못하던 자리에서 나쁜 양심을 품고, 비리를 저질렀다고 처벌할 수 있을까. 도·감청 하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당연히 하지 않았을 일인데.

역사는 삼성 이건희회장의 말을 전하는 이학수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대화를 굳이 기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사실(事實)로 남겨질 뿐 역사의 장에 사실(史實)로 기록할만큼 가치를 두진 않을 것이다. 가욱위원회와 같은 특별위원회가 역사적 평가를 하면 된다.

이로인해 피해를 입었기에 보상이 필요하다면 방법은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쫓아 국정원과 검찰에 `X 파일` 공개를 법원에 청구하는 식으로 그때의 일을 알려할 수는 있다. 독일도 이런 방식을 택했다.

둘째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 도감청이 우리 정보기관의 역할 축소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린 400년전 임진왜란에서 정보기능의 잘못으로 나라를 잃을 뻔했다.

지금도 서울에는 지구상 최고로 많은 정보원들이 몰려있다. 일본은 내각정보조사부가 총리직할로 승격되고, 중국의 국가안전부, 북한의 노동당 3호청사 등 한반도 주변국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증대될수록 정보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국정원 폐지론`은 무책임한게 아닌가.

대신 국정원이 내국민을 감시하는 기관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과 적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의 수탈로부터 지켜주는 국민보호기관으로 변신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고통치자나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확고히 해야한다.

어쩌면 노동의 분업이 생길 때(유물론적으로 보면 잉여가 생길때부터) 인류의 스파이 활동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 침팬치보다 큰 뇌를 가진, 여자보다 1.5배 덩치가 큰 남자가 자신의 잉여를 은닉하고, 남의 잉여를 수탈하기 위해 정보전을 벌였을지 모른다. 스파이는 없어지지 않았고 다만 안보였을 뿐이다.

섣부르게 접근하면 개인과 국가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어두운 스파이史의 생생한 교훈이다. 현명한 선례를 만들지 못하면 장차 통일이라는 체제 통합때에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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