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증권가의 흑묘백묘論

  • 등록 2007-08-28 오후 5:30:00

    수정 2007-08-29 오전 8:45:25

[이데일리 박호식기자]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되면서 증권사들의 행동 반경이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은 자기자본투자(PI)의 일환으로 기업들의 M&A 자금을 빌려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증권사 나름의 재테크이고 수익도 적지않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평가만 나오는게 아니라합니다. 증권부 박호식기자가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상장사들의 M&A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구원투수로 나서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M&A는 하고 싶은데 돈이 없는 상장사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거죠.

최근 K증권사는 한 코스닥업체가 비상장사를 인수하는데 필요한 자금 210억원을 빌려주고 이자와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해당업체가 신규사업 진출을 위해 다른 업체를 인수키로 했는데, 피인수기업 주주들의 주식을 인수하고 대신 유상증자 신주를 주는 주식스왑이 이뤄졌습니다. 현금주고 M&A를 할 여력이 안돼 동원된 방법입니다. 주식스왑은 `증자자금 납입-납입된 자금으로 상대편 주주들에게 주식인수 대금 지급-대금을 받은 상대편 주주들이 증자자금 납입`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결국 증자자금이 건너갔다가 다시 그대로 넘어오게 되고, 이 과정이 끝나면 주식만 서로 맞교환됩니다. 이 절차는 하루에(동시에) 이뤄집니다.

문제는 동원될 자금이 일단 어디선가는 나와줘야 하는데 양쪽 모두 자금이 없을때 증권사가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겁니다. 증권사는 하루짜리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와 수수료를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장사는 무보증사모사채를 발행하고 이를 증권사가 매입, `단순 대출`이 아닌 `채권투자`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증권사는 대출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하루짜리 자금제공도 있고, 몇개월짜리도 있습니다. 주식스왑이 아니라 현금으로 주식을 매입하는 M&A가 이뤄질 경우, 업체가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해서 무보증채권을 상환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방법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H증권은 코스닥 D사가 다른 업체 지분을 인수할때 같이 참여한 뒤 1개월 후 보유한 지분을 D사에 매각하고 매매차익과 M&A중개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사례마다 다르겠지만, 자금을 제공하고 받는 이자와 수수료를 합치면 대략 연 30~40% 수익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증권사라고 하면 주식위탁 등 `중개업무`를 주로 하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돈 빌려주는` 모습이 그리 익숙치가 않습니다. 실제로 증권사들이 M&A 과정에서 자금을 제공하고 수익을 낸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합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금융기관간 장벽을 허무는 자본시장통합법 도입에 맞춰 증권사들이 IB(투자은행)역량 강화 또는 PI(자기자본투자) 확대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과거엔 기업간 M&A에서 팔자측과 사자측을 연결해주는 단순 중개를 했다면, 이제는 증권사들의 자체자금을 통한 투자를 병행해 수익을 다각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개 수수료 따먹기에서 벗어나 투자위험을 감수하면서 높은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입니다. 자기자본투자를 위해선 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자기자본이 충분해야 하고 이에 따라 많은 증권사들이 증자나 전환사채 등을 통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증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을 새로운 곳에 운용해 비교적 많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은 변화의 한 단면입니다.
 
그러나 비판도 많습니다. 자기자본투자는 증권사들이 분석능력을 바탕으로 기업 등에 투자해 성과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기업이나 시장분석 능력을 키워야 하고, 전문적인 인력 확보 및 양성에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M&A 과정에서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을 PI나 IB라고 하기엔 좀 낯 간지럽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사모채권 또는 지분투자라는 모양새를 갖추지만, 많은 증권사들이 자금을 빌려준 기업이나 계열사 주식 등을 담보로 잡고 있다합니다. 은행들의 담보대출과 같은 셈이지요.

`흑묘백묘(黑猫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장 돈은 벌 수 있을지언정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한 능력을 키우는 노력이라고 하기에는 좀 아쉽습니다.

또 있습니다. 증권사들이 빌려준 자금이 기업체 주주들의 머니게임에 이용될 가능성입니다. 투자자들은 그동안 돈을 빌려 M&A하면서 덩치를 불린 뒤 주가차익을 내는데만 열을 올리던 사례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물론 상장사들의 M&A를 무조건 백안시 할 일은 아닙니다. 벤처나 중소기업의 경우 일정 시점에서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또 M&A를 통해 사업포트폴리오를 짜고 좋은 기업을 만들려고 했다가 여의치가 않아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습니다.
 
이같은 점을 감안한다해도 그동안 사업성과와는 무관하게 M&A가 주가부양에 동원되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돌아간 경우가 많습니다. 올들어서도 증권사가 M&A 자금을 빌려준 업체중에 대주주 횡령 등으로 증권사나 투자자가 피해를 본 사례가 있습니다.

업계 판도를 변화시킬 자본시장통합법이 2009년부터 시행됩니다. 법이 시행된다하더라도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은행으로서 글로벌 금융기관과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중국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는 중국의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러나 지금 증권사들의 `흑묘백묘`는 거대한 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확보해야 할 `좋은 평판(Reputation)`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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