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으로 볼 때 이러한 중국 은행의 `충만한` 유동성은 정부의 경기 부양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는 악성 자산이라는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서구권 은행들이 가질 수 없는 여유다.
그러나 대출 급증을 긍정적인 신호로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 수치가 할인어음,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을 통해 부풀려졌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통계를 믿지 못한다는 시각이다.
또 대출 증가율 외에 수출, 부동산 등 다른 주요 지표들이 여전히 부진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이 가운데 추가 금리 인하 카드는 점점 소진되고 있어, 디플레이션 우려가 지속적으로 중국 경제의 근심거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대출 급증..`허수` 가능성 제기
각국 금융 시장이 신용 경색으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대출 증가는 분명 괄목할만한 희소식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3일자 보고서에서 중국의 최근 대출 증가에 대해 "지난 3개월간 전반전인 대출 및 통화량은 의심할 여지 없이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며 "통상적으로 이는 향후 4~6개월 동안의 수요 증가를 암시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신속하게 집행함에 따라 이 기간은 더욱 단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대출 증가에 `허수`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금융 전문가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신규 대출의 절반을 훨씬 넘는 6000억위안이 할인어음이라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어음의 금리는 1.4%로 은행 3개월 기준 예금 금리인 1.71%보다 낮기 때문에, 할인어음 금리로 자금을 빌려 다시 은행금리로 예금하는 차익 거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대학교의 마이클 페티스 교수도 "대출 증가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인민은행이 은행 대출을 제한하던 지난 2007년과 지난해에 억제됐던 대출이 최근 수개월 동안의 통화정책 완화로 최근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신규` 대출 급증이라고 하기엔 모호한 구석이 있다는 설명이다.
페티스 교수에 따르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 CD로 예금한 뒤, 이 CD를 담보로 다시 대출하는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 이 경우 실제로는 대출이 하나만 일어났지만 은행의 장부에는 대출 2개와 CD 예금 1개로 기록된다. 총 대출 집계가 불어날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 다른 지표는 삐걱 삐걱
지난달 대출이 급증한 것 외에 다른 경제지표에서는 회복세 또는 뚜렷한 반등세가 목격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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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산업경기를 보여주는 핵심지표 중 하나인 전력 사용량도 감소세에 있다. 지난달 중국 전력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1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5.3%, 11월 16.6%, 12월 12.4% 등 4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역시 침체 상태에 놓여있다. 주요 70개 도시에서 1월 주택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0.9% 하락, 낙폭은 지난 2005년 8월 주택 가격이 내림세를 나타낸 이후 2번째로 컸으며, 직전월(12월)의 0.4% 보다는 두배 이상 확대됐다.
중국의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해 11월 사상 최저인 38.8까지 하락한 뒤 이후 개선되고 있지만 50을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1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5.3이었다.
대출 증가의 원동력인 공격적인 금리 인하 카드가 소진된 점도 주의해야 한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최근 중국 인민은행은 `추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다른 나라 대비 금리가 높은 편이지만, 저축률이 워낙 높기 때문에 더 이상 금리 인하 카드를 제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강 인민은행 부총재는 전일 "중국에 제로(0) 금리나 제로 금리 수준의 정책은 최적의 선택이 아니다"라며 "이같은 정책이 국내 수요를 부양할 수 있겠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저축률이 매우 높은 중국은 제로 금리 정책을 지지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8일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도 한 인터뷰에서 "중국은 통화정책 수단으로서 금리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소비자 및 생산자 물가는 크게 하락해 디플레 우려는 점증하고 있다.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1% 상승하는 데 그쳤고, 생산자물가지수(PPI)는 3.3% 하락하며 근 7년래 최저치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