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북핵과 환율의 이율배반

  • 등록 2006-10-16 오후 5:50:22

    수정 2006-10-16 오후 5:50:22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엔/원 환율이 700원대로 떨어지자 우려의 소리가 높습니다. 수출경쟁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본에 비해 불리해 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아도 수출이 불안한 판인데, 일본과의 경쟁이 더 힘들어져서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채권외환팀 강종구 기자는 `환율하락=수출비상`이란 천편일률적인 시각에서 좀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고 하는데요. 무슨 이야기인지 한번 들어보시죠.

지금 우리는 환율에 대해 두가지 `이율배반적인`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환율이 급등할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환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걱정입니다.

환율이 급등할까봐 걱정하는 배경에는 북핵문제가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가 증폭될 경우 급격한 자본유출로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죠. S&P나 무디스 등이 "북한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 변화 없다"고 하고 북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외평채 가산금리가 별로 오르지 않는 것에 안도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반면 16일 일본 엔화대비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00엔당 700원대에 진입, 이로 인한 수출기업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닌가 봅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100엔당 1000원이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암묵적인 `황금률`로 통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엔-원 환율의 수준에서 수출기업들이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과거를 뒤돌아 보면 환율 급등보다는 환율 하락에 대한 우려가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것이 사실입니다. `환율하락=수출비상`이란 등식은 너무나도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외환위기때를 제외하면 환율 급등에 대해 걱정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게 사실이지요.

환율 하락을 걱정하는 이유는 오로지 수출 때문입니다. 달러화 대비 환율이나 엔화 대비 환율이나 그 면에서는 같습니다. 다만 엔화 대비 환율 하락에 더 걱정하는 것은 우리 기업이 수출시장에서 일본기업과 경쟁하는 제품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엔화에 비해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전세계 수출 시장이 좋을 때도 우리 수출은 상대적으로 덜 좋을 수 있고 전세계 시장이 나쁠 때는 우리 수출이 더욱 부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나 자동차, 반도체, LCD나 PDP 등 우리 수출의 대들보 품목들이 하나같이 일본기업과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엔/원 환율 하락은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환율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이냐는 생각도 듭니다. 환율 하락이 경제에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이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외화표시 가격을 그대로 두면 이익이 줄고, 외화표시 가격을 올리면 매출이 줍니다. 이익이 줄거나 매출이 줄면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맬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깊어지고 장기화되면 고용과 투자가 감소하고, 결국 내수침체를 유발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리란 법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원화는 최근 수년동안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 유로존의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등 세계 어느나라 통화보다도 강세를 보였지만 우리 수출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습니다. 물론 중국특수와 같은 호재가 있었지만 엄청난 `원고(高)현상`을 이겨낸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비록 엔/원 환율이 그때보다 더 떨어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환율 여건이 더 악화됐다고 볼 수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우선 최근 달러강세로 인해 달러/원 환율은 상승하고 있습니다. 원화가치가 절대적으로 오르던 지난해나 올해초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엔/원 환율의 700원대 진입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엔/원 환율의 하락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올들어 환율이 줄곧 하락했거나, 최근 하락속도가 크게 빨라진 것도 아닙니다.

엔/원 환율은 2000년 1월 4일을 기준으로 볼 때 5년 9개월여동안 30% 정도 하락했고, 그중 3분의 2의 낙폭이 최근 1년10개월동안 발생했습니다. 특히 올해초엔 불과 열흘동안 40원이 급락할 정도로 그 속도가 매우 빨랐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전체적으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최근 두달동안은 50원 정도 내렸는데, 6개월동안에는 10원 정도밖에 내리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죠.

엔/원 환율이 하락해서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기계 등 설비와 부품 등 원자재를 수입하는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엔화보다 원화값이 비싸지면 똑같은 기계나 부품을 전보다 싼 값에 수입해 올 수 있게 돼서 수입기업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소비자들은 좀 더 싼 값에 일본 제품을 사서 쓸 수 있게 되고, 일본 여행을 할 때도 경비가 전보다 덜 들게 됩니다. 사실 일본은 물가가 비싸서 이웃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나라잖아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하락의 주요 원인중 하나가 기업의 투자부진이라면서요? 만약 엔/원 환율 하락 때문에 수출이 크게 둔화되지 않는다면, 우리 기업들은 보다 싼 값에 설비를 사들여 올 수 있기 때문에 국내 투자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물론 섣불리 결론내리기 어렵지만 말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비판하실 겁니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살아온 나라인데, 수출기업들이 일본과 경쟁해서 판판이 지게 생겼는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말이죠.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그렇지만 이같은 비판을 그대로 수긍하려니, 웬지 우리가 겁쟁이 같기도 하고, 우리 수출은 언제까지 환율에만 매달릴 것이냐는 반발심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불과 2~3년 전까지도 우리 정부는 수출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환율(특히 엔-원 환율)이 급격하게 하락하지 않도록 관리를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하느라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됐습니다. 수출기업이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더 많은 이익을 내도록 하기 위해 온 국민이 희생을 한 것이죠.

말이야 바른 말이지 환율이 하락하면 외국제품 싸게 살 수 있어 좋고, 수출이 잘 안되면 내수시장에서 경쟁이 심해질테니 국내 기업들도 국내 판매가격을 인하할테니 소비자에게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제의 `미래`를 위해 그같은 이득을 포기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수십년간의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환율 몇십원 하락하면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야 할 만큼 우리 수출의 경쟁력이 형편이 없는 건가요? 도대체 희생을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또 한편으로는 엔/원 환율 하락에 기겁하는 것이 더 한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는 물론 국가 정세적으로 가장 민감하고 커다른 위험중 하나는 북핵문제일 겁니다. 잘 풀리면 다행이고 정말 잘 풀리길 바라지만, 최악의 경우까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최악의 사태까지 가지 않더라도 북핵문제 때문에 위기감이 증폭될 경우,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은 상당히 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자본의 급격한 해외이탈로 인한 환율 급등입니다.

다행히 아직은 그런 조짐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만, 정말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서 환율이 급등하면 주가와 집값, 기업의 자산가치 등이 모두 폭락해 마치 제2의 외환위기를 방불케 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릅니다.

이런 위험은 환율 하락이 가져오는 폐해보다 훨씬 강력하고 파괴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몸으로 경험했으니까요. 2000억달러가 넘는 엄청난 외환보유액도 사실 그 같은 위기가 다시 올 것에 대비한 것 아닙니까.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한편으로는 환율이 떨어져서 걱정이고, 또 한편으로는 환율이 오르지 않아서 다행이고 말이죠. 물론 두가지 문제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북핵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원화가 일본 엔화보다 비싼 대우를 받고 있는 것에 안도한다면, 저는 바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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