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금융권 첫 `임금피크제` 교훈

금융노사 ‘임금피크제’ 합의따라 관심 집중
만 55세 직군전환·54세 임금피크·55% 임금조정
  • 등록 2004-07-27 오후 2:29:56

    수정 2004-07-27 오후 2:29:56

[edaily 김현동기자] 지난 22일 은행권 노사가 산별(産別)단위로는 처음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용보증기금(이사장 배영식)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신보가 주목을 받는 것은 국내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는 점만이 아니다. 제조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금융권에서 노사 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 유사업종은 물론 고임금 업종으로 적용이 가능한지를 가늠해볼수 있는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지원직군 신설을 비롯해 ▲만 55세에서의 직군 전환, 55세부터 평균 55% 비율로 임금을 조정한 것 등은 향후 은행권의 개별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모범사례가 될 제시되고 있다. ◇명예퇴직 대신 `직급 하향과 삭감(Demotion & Decrease)`을 받아들이다 신보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은 지난해 4월. 그렇지만 훨씬 이전부터 노사는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지난 95년부터 명예퇴직을 실시, IMF 외환위기 이듬해인 98년에는 230명의 직원들을 떠나보내야했다. 99년과 2000년에는 모자라는 인력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곧바로 IMF 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명퇴 압력은 다시 커졌다. 2001년 2월 25명, 2002년 2월 19명의 부점장들이 회사를 떠나야했다. 당시는 1급 부점장 한 명이 나가면 기존 직원 4명에게 승진의 기회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명퇴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그렇지만 종업원들의 일방적인 희생만으로 인력조정을 끌고갈 수는 없었다. 이로 인해 강제적인 명퇴가 아니면서 인사 적체를 해소할 방안을 찾는 것이 노사의 핵심 숙제였다. 이때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 일본식 `재고용(再雇用)` 제도. 80년대초 일본 기업들은 정년을 55세로 정하고 퇴직자를 시간제 계약직이나 정규직 등 다양한 형태로 재고용하는 시스템을 활용했다. 신보는 이를 모델삼아 `직급하향과 삭감`이라는 원칙을 만들었다. 만 55세를 기준으로 1급 부점장들의 직급을 1급에서 4급으로 낮추면서 임금도 4급 수준으로 강등하는 것. 대신 퇴직을 강제 요구하지 않는 것. 임금피크제의 골격을 마련했던 김흥문 인사부 부부장은 "강제적인 명퇴로 부점장들의 고용불안감과 반발심리가 커졌다"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공무원들이 연금을 수령하기 전 직급을 낮추는 방안 등 다양한 사례를 수집했고, 결국 명퇴와 `직급하향과 삭감` 을 놓고 하나를 선택하는 단계에 왔었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직급과 임금은 `자존심과 실리` 문제 `Demotion & Decrease(직급 햐향과 삭감)`은 당시 명퇴 기준 연령이었던 만 55세를 기준으로 직급과 임금을 낮추는 것이었다. 일단 55세라는 연령대에 대한 불만은 크지 않았다. 다만 1급 부점장을 4급 일반직으로 강등한 만큼 `자존심 상처`가 문제였다. 후배에게 보고를 해야 하고, 일일이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은 사실상 나가라는 것과 다름 없다는 식으로 느껴질수도 있었다. 임금을 한꺼번에 줄이는 것은 더더군다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 신보는 직급 문제에 대해서는 후배밑에서도 일하지 않아도 되는 별도 직군인 `업무지원직`을 신설하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업무 성격상 채권 추심이나 신용조사 감독 등은 보고라인을 따라 직접 결제를 맡아야 할 필요도 없었고,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릴 수도 있어 반응이 꽤 좋았다. 그렇지만 임금을 4급 수준으로 축소하는 문제는 합의가 결코 쉽지 않았다. 4급 수준으로 임금을 떨어뜨리되 3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한다는 원칙에는 합의 못할 게 아니었다. 축소 비율이 문제. 노조는 임금조정 1차년도인 55~56세에는 전직전(轉職前) 임금의 90%, 57세는 80%, 58세는 70%를 요구했다. 이에 반해 사측은 70-50-30%를 제시, 양측의 차이가 너무 컸다. 결국 신보 노사는 최적의 임금조정 비율로 평균 55%를 채택했다. 평균 55%는 기존 명퇴금보다는 많으면서 입사 8년차 차장·과장급인 4급의 임금(45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노사가 다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명퇴 기준 연령인 55세~56세는 피크(peak)때인 만 54세에 임금의 75%, 2차년도에는 55%, 정년인 58세에는 35%의 임금을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김 부부장은 "당시 협상과정에서 노조측은 너도 곧 조정대상이 된다면서 사측을 압박했고, 사측은 철밥통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유휴인력 조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개했다"며 "수시로 만나서 의견을 조율, 어렵게 합의점을 도출해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9개월간의 성과..`추가채용에 일자리 나누기까지` 신보는 지난해에만 9명, 올 상반기에 7명 등 16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했다. 그 효과는 어떨까. 일단 노사 양측이 만족스럽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채권추심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13명은 20억3300만원의 채권을 회수해 1인당 평균 2억6600만원(연간 환산)의 실적을 거뒀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고 그동안은 외부에 맡겼던 일이었다. 소액소송 담당 직원 1명은 8개월간 100건의 소송을 처리해 6000만원의 변호사비용을 절감했다. 1인당 연간 약 2억2200만원의 실적을 거둔 셈이다. 신보는 업무지원직 종사자들 중 기본목표(1차년도의 경우 자기연봉의 2배)를 초과할 경우 평균 회수금액의 7.5%의 회수보상금을 지급, 업무지원직의 성과를 독려하고있다. 물론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근무지 배정에 있어 불이익을 줘 분발을 독촉한다. 신보는 장기적으로는 실적이 우수할 경우 정년퇴직후에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임금피크제로 인한 비용절감은 신입직원 60명을 추가로 채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김 부부장은 "명퇴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피크제를 운용하고 있는데, 6개월 단위로 지금까지 네차례 신청을 받았는데 모두들 임금피크제 적용을 원하고 있어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했던 남상종 前노조위원장도 정년 보장과 함께 일자리 나누기(work-sharing)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임금피크제의 성과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평가다. 남 前위원장은 "당사자 입장에서 업무와 임금 모두에서 절대적으로 만족하는 것은 힘든 것 아니냐"면서 "그렇지만 고령화시대에 정년이 보장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할 만한 제도"라고 말했다. ◇신보의 교훈..`실질정년·비용조정·직군개발` 신보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풀어야 했던 숙제는 ▲임금감소에 대한 노사합의 ▲최소한의 사회적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수준 ▲적합한 직무의 발굴이었다. "임금피크제는 연공서열제에서 연봉제로 가기 위한 중단 단계입니다. 그런 만큼 임금 감소를 얼마만큼으로 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언제부터 얼마나 임금을 떨어뜨릴지에 대해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지난 2002년 8월부터 신보의 임금피크제 초안을 만들고 지난해 1월의 수정안에서, 같은 해 4월 전격적인 노사합의를 이끈 김흥문 인사부 부부장의 말이다. 노조입장에서 임금 감소를 자발적으로 사측과 합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명퇴와 임금피크제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정년을 보장해주는 임금피크제가 유효한 대안인 셈. 실제로 지난 22일 신동혁 은행연합회장 등 금융권 대표단과 금융산업노조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한 것도 결국 정년 보장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은행권의 실질적인 정년은 만 50세. 신보가 채택한 임금피크제의 적용 연령은 만 55세였다. 만 55세는 신보의 명퇴 기준연령이기도 하다. 김 부부장은 “지난해 4월 국민은행이 먼저 임금피크제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그렇지만 만 50세부터 보직을 전환하고 임금을 조정하는 안을 놓고 노사 합의가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책은행들은 만 55세부터 임금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시중은행들은 정년을 보장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면서 “여전히 인건비가 높은 상황에서 은행이 만 50세까지 인력을 끌고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훈수했다. 그렇지만 금융권 대표단과 금융노조가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한 만큼 만 55세부터 임금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은행별로 임금조정 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여기서도 신보의 사례를 참조할 만 하다. 기존 명퇴금액보다는 많으면서 차장이나 과장급 연봉과 비슷한 수준에서 평균 조정비율을 정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신보의 채권추심, 신용정보 감독 같은 `업무지원직`처럼 은행들마다 각자의 업무에 맞는 직군을 신설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고민해볼 만하다. 신보가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은행원들의 85%가 새로운 직무를 신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신보는 최근 여러 은행들로부터 임금피크제 대한 문의를 받고 있다. 문의의 대부분은 “노사합의를 어떻게 끌어냈나”는 것. 이 문제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인건비 등 비용을 줄이려는 사측과 임금삭감없이 정년을 보장받고자 하는 노조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게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인 것. 그렇지만 정년보장을 전제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한 만큼 협상의 여지는 충분하다는게 먼저 이를 시행하고 있는 신보 관계자들의 얘기다. 남상종 전(前) 신보 노조위원장의 말은 꽤 시사적이다.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한 것입니다. 당시 노사는 정년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머리를 맞댄 것입니다. 임금삭감으로 접근하지 말고 `일자리 나누기`라고 생각하고 문제를 접근하면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신보 노사가 임금피크제에 전격적으로 합의하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신보 노사는 노조의 시각과 사측의 입장을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일자리 나누기`라는 萬人이 다 아는 비결을 찾아냈을 뿐이다. 결국 신보 노조는 `임금 삭감 반대`에 매달리지 않고 체감정년을 넘어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고, 사측은 직원을 비용으로 따지지 않고 `사람이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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