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꽃의 의미를 다시 찾자

  • 등록 2017-12-26 오후 1:41:52

    수정 2017-12-26 오후 1:41:52

[김학인 aT농식품유통교육원 수석연구위원] 우리나라 화훼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화훼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를 타개해 나기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속절없이 줄어드는 화훼소비 감소 앞에 마땅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05년 대비 2015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47.7%가 증가했지만 꽃 소비량은 36.2%가 감소했다고 한다.

화훼 소비 감소 원인으로 많은 사람들 눈에는 2016년 시행된 청탁금지법이 크게 보이겠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부터인가 진짜 꽃보다 더 진짜 꽃 같은 종이꽃, 비누꽃, 사탕꽃 등이 소리도 없이 하나 둘씩 나타나서 우리 일상생활 속에 넘쳐나고 있다. 전자제품, 가방, 지갑, 고급 액세서리, 화장품 등의 물건들이 꽃의 자리를 차지한 것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꽃을 대체하게 된 것들이 너무나 많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소득 증가로 우리가 잘 살게 되어 꽃 소비량은 줄고 더 비싸고 좋은 것들로 소비가 옮겨갔을까?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연간 꽃 소비액은 1만4000원 정도지만 일본은 10만원, 유럽 선진국인 스위스,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은 11만~16만원으로 우리나라보다 10배 이상 많은 걸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가 훨씬 더 꽃을 많이 소비하고 소비 내용도 행사와 선물용이 87%에 달하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네덜란드인들의 꽃 사랑이 세계 최고의 화훼강국을 만들었고, 미국은 세 집 중 한 집은 정기적으로 꽃을 구매한다고 한다.

그러면 왜 이렇게 화훼 소비가 줄어들고 있을까? 앞에서 이야기한 종이꽃, 비누꽃, 사탕꽃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로 눈에 띄는 특징은 품질이다. 제작기술 발전으로 언뜻 봐서 생화와 구별이 안될 만큼 비슷하다. 두 번째로는 제조원가가 매우 저렴하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즉시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생화처럼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재배할 필요가 없다. 세 번째로는 시들지 않고 오래간다는 것이다. 생화만이 가지고 있는 그 느낌만 제외하고는 모양 좋고 값 싸고, 오래가며 얼마든지 금방금방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말 실속 있는 상품이다.

꽃 대신 선물하는 전자제품, 화장품, 초콜릿, 지갑, 액세서리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실속이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 기업 주도의 각종 데이 마케팅이 확산되고 입학, 졸업, 생일 등 각종 축하, 기념일에 언제부터인가 전자제품, 유행되는 의류나 고가 학용품이 꽃의 자리를 차지해버려 이제는 입학식, 졸업식을 가도 교문 앞을 가득 메웠던 꽃 파는 상인들도 한두 명 보일까 말까다. 심지어 성년의 날 딸에게 꽃 대신 자궁암백신을 선물하자는 기사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우리나라 화훼소비가 줄어드는 원인이 너무도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우리 삶의 환경변화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경제, 기술발전을 그 무엇보다 중시했고 ‘빨리빨리’가 우리 국민성을 대표하는 말이 될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정신세계의 삶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경제적 물질적인 의미가 없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으며 사람과 사람사이에 오가는 정과 마음은 얼마나 값비싼 물건인가로 평가된다. 편리하고, 실속 있고, 돈이 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변모된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꽃 소비 감소이다.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생화 대신 비누꽃다발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쓸데없는 꽃 보다는 실속 있는 지갑선물을 받는 것을 대다수가 선호한다. 심지어는 TV 드라마에서 꽃 사들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돈 아깝게 왜 이런 것 사오느냐’고 짜증내는 아내의 모습에 공감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꽃은 점점 더 쓸데없고 실속 없고 거추장스런 물건이 되어가고 있고, 경조사 때 혼주나 상주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전시물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는 경제력은 세계 11위, 수출은 6위에 달하는 경제대국이다. 그러나 2017년 발표된 세계 행복지수 순위는 56위이다. 2016년에도 58위였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삶을 이렇게 메마르고 각박하게 만들었을까?

1980년대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읽어본 김춘수 시인의 ‘꽃’은 1952년에 발표되었으니 발표된 지 30년도 넘었을 때였다. 그 때부터 꽃은 늘 내게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의 운명적 만남을 갈구하는 목마름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소월이 ‘진달래꽃’에 담은 그 한과 의미를 누구든 느낄 것이다. 빨간 장미는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사랑의 고백’을 말해왔다.

그런데 지금의 세태는 이런 것들과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경제, 기술, 효율, 속도 등 앞으로만 달려가는 숨 막히는 질주경쟁 속에서 삶과 인생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공감하고 소중한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는 꽃 한 송이의 모습은 줄어들고 가짜 꽃과 겉모습과 실속만이 넘쳐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삶의 참된 의미는 물질과 겉모습에서는 찾을 수 없다. 식탁 위에 놓는 꽃병에, 퇴근길에 들고 오는 꽃다발에, 연인이나 고마운 이에게 주는 한 송이 꽃에 마음과 정성이 가득 담기고 그 마음과 정성이 꽃향기와 함께 느껴질 때 우리 삶도 생기가 있고 빛이 나게 되지 않을까?

오늘은 퇴근길에 화원에 들러 장미 꽃 한 다발을 사서 들고 가야겠다. 아내가 또 쓸데없는 것 왜 사왔냐고 핀잔을 주면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길을 가다 너무도 예쁜 장미꽃을 보니 당신이 생각났다고. 내 인생에서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고. 오랫동안 삶에 찌들어 잊고 있던 당신의 의미가 다시 떠올라 이렇게 당신의 의미를 찾아 왔다고.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거라고!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우리 엄마 맞아?
  • 토마토에 파묻혀
  • 개더워..고마워요, 주인님!
  • 공중부양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