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 IMF 그리고 "무서운 30대"

  • 등록 2002-09-17 오후 5:27:39

    수정 2002-09-17 오후 5:27:39

[edaily 한상복 기자] 벤처기업을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주가조작이나 대주주 횡령 같은 대형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옵니다. 시장이 자정 기능을 상실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간의 사건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 핵심에 "30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예전 같으면 기업의 중간 간부 자리에 간신히 올랐을 나이입니다. 이런 30대가 수백억, 수천억 대의 대형 사건을 일으킵니다. 증권부 한상복 기자가 "무서운 30대"에 대한 나름의 느낌을 정리해봤습니다. 최근 델타정보통신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21명을 사법처리키로 했습니다. 그 21명의 직업 분포가 흥미롭습니다. 기관 계좌를 도용해 주식을 처분했던 증권사 직원을 비롯해 투자상담사, 벤처기업 회장, 전문 투자자, 해운업체 대표, 건축회사 사장, 식당 운영자, 사채업자, 부동산 임대업자, 회사원, 심지어 피부관리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서로의 연관점을 찾기 힘들지요. 그러나 이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연령이 30대라는 것입니다. 50대의 사채업자 한 명을 제외한 20명, 모두가 30대 입니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배짱을 키웠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습니다. 델타정보통신 뿐이 아닙니다. 얼마 전 금감원이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주요 벤처기업 대표이사들 역시 30대 였습니다. 벤처 거품이 꺼지던 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현준 씨나 진승현 씨를 기억하시지요. 이들도 30대 입니다. 사고를 친 30대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고학력이라는 점입니다. 세칭 명문대 출신이 많습니다. "386 세대"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은 암울했던 80년대와 맞서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의라는 것을 외쳐본 기억이 생생할 것입니다. 모 보수 언론사의 논객은 "50대와 60대가 20대와 연합해 좌파 30대를 고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30대는 "자본주의 부정세력"입니다. 그런 30대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권시장에서 대형 사고를 연이어 터뜨리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처럼 느껴집니다. 그 논객은 이제 "붉은 30대가 자본주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증권시장에 침투, 공작을 펴고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30대 입니다. 제 주변에는 주식 투자를 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좋은 종목 있으면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몇몇은 주식투자로 전세 돈을 날렸고, 한 친구는 집에 자동차까지 팔아 쪽박을 차기도 했습니다. 이 친구들의 결심은 한결같습니다. "한 탕 크게 하고 접는거야." 다시말해 "마음 속의 파랑새보다 산 넘어 파랑새를 잡겠다"는 겁니다. 이 처럼 IMF를 계기로 30대의 사고구조가 바뀌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창 일할 나이의 동료들이 구조조정과 명퇴로 자리를 비워야 했습니다. 떠나는 선배들이 20년 넘는 직장생활에서 얻은 것은, 은행 빚과 허무함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대기업에서 머리가 허연 선배들을 발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나이 들기 전에 한 밑천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게 됩니다. IMF는 또한 "돈이 최고"라는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나라 경제가 어려운 와중에도 있는 사람은 더욱 부자가 되었고, 없는 사람은 벼랑으로 내몰렸습니다. IMF 이전이라면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를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벤처 붐이 일었고, "30대의 대이동"이 이어졌습니다. 그 다음의 얘기는 뻔합니다. 사업이라는 것이 아이들 장난이 아닌 이상, 큰 돈을 벌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지부진한 사업을 걱정하다가 마침내 다른 생각을 품게 됩니다. "다시는 기회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조급함에 쫓기게 됩니다. 지금의 30대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빈 손의 40대, 50대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입니다. 그런 선배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큰 돈을 벌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 30대들의 고민입니다. 내일 모레면 40줄이라는 생각만으로 몸서리 칠 때가 많다고 합니다. IMF를 겪으며 우리 30대는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을 지켜줄 후원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체험일 것입니다. 돈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그렇습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이 빠져 있습니다. "손쉽게 떼돈을 버는 방법은 이 세상에 없다"라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30대에게 이런 교훈을 심어줄 자격이, 어느 누구에게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얼마전 일부 사회 저명인사들이 특정 기업의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 검찰에 고발됐습니다. 그리고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정말로 범죄 혐의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뼈저리게 증오하던 누군가를 닮아가는 속성이 있다고 합니다. 30대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은 40대나 50대에 이른 과거의 30대도 그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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