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한은총재, 꿈을 접었다

박승총재가 그런 말을 했다구요? 진짜 맞아요?
  • 등록 2004-05-06 오후 4:21:49

    수정 2004-05-06 오후 4:21:49

[edaily 강종구기자]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임기내 화폐개혁`이란 원대한 꿈을 접었다. 지난 2002년 4월 취임초부터 일관되게 외쳐 온 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절하) 추진에 대해 6일 "한가할 때" 해야 하는 일이라며 "지금은 거론할 때가 아니다"고 한 것. 디노미네이션이란 예컨대 지금 1만원짜리를 100원 또는 10원짜리로 만드는 것이다. 박승 총재는 그동안 우리 경제규모가 현재 화폐단위 도입후 30년간 100배 커졌고 물가도 11배나 오르는 등 경제현실이 많이 달라졌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실제로 지금 1원짜리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10원짜리는 은행에서조차 바꿔주기 꺼려할 정도로 유통성을 상실한 것이 사실이다. 1000원짜리 지폐는 거스름돈 취급을 받고 있다. 박승 총재의 이날 발언은 매우 의외라 한은 전체에 충격을 안겨줬다. 발언 소식을 접한 한은의 한 직원은 "진짜예요? 총재가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라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 박승총재가 그런 말을 했다구요? 진짜 맞아요? 한은 직원들이 놀라는 이유는 그동안 박승총재의 디노미네이션 관련 발언을 되짚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취임직후(2002년 4월)= 낡은 화폐제도를 뜯어 고쳐야 한다. 임기(2006년 4월)내 주요 목표로 추진하겠다. ▲ 2002년 6월= "디노미네이션은 돈을 바꿀 때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액 수에 관계없이 무한정 바꿔 주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 전혀 충격 이 없다. 중장기과제로 추진하겠다" ▲ 2002년 9월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 디노미네이션과 고액권 발행에 대한 1차 시안이 연말쯤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 다만 그 시기와 방법을 어떻게 할지가 문제다. 결정은 한은이 아닌 정부가 내리는 것이지만,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동시에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2002년 12월= 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검토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단계다. 연내 확정해 내년 통화정책운용 방향과 함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 2003년 1월= 디노미네이션을 장기과제로 연구하고 있다. 정책의 선택 여부는 정부가 판단할 문제지만, 한은은 장기적인 정책 과제로 디노미네이션 방안을 연구, 정부에 제출할 생각이다. ▲ 2004년 1월= 고액권발행과 위폐방지, 디노미네이션 등 화폐선진화 방안을 총선후 정부와 협의할 것이다. 화폐 선진화 방안이 올해 결정된다 해도 준비 등에 시간이 걸려 신권 교환은 2007년에나 시작될 수 있으며 적어도 5년이 지나야 교환이 완료될 것이다.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를 택해도 어차피 돈을 새로 발행해야 하는 만큼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 꿈을 접은 모양새가 나쁘다 그러나 이날 박승총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경제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추진할 만큼 시급하지도 않다""물가와 경제가 안정되고 한가해야 할 수 있다"고 발언 한 것이다. 자신이 임기중 꼭 해야 한다고 으뜸으로 꼽았던 일에 대해 "한가할 때나" 할 수 있다고 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올해 결정해도 임기가 지난 2007년에야 신권교환이 가능한데 올해는 바빠서 거론조차 할 시간이 없다니 일단 꿈을 접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더구나 꿈을 포기한 모양새가 매우 나빴다. 이날 박총재의 표현은 3일전 이헌재 부총리가 한은 전체에 창피를 줄 당시의 발언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었다. 당시 이부총리는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성숙돼야 한다. 지금은 중요한 일들이 많아 디노미네이션을 생각할만틈 한가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5일 한은 사내 게시판에는 모 팀장의 글이 올라왔다. "부총리는 한가할 때만 새로운 일을 하나. 그러니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은 없고 뒷북만 치는 행정으로 일관하는 것"이라며 즉각 직격탄을 날린 것. 그러나 하루 뒤 바로 디노미네이션에 가장 앞장 서 온 박승 총재는 "부총리 말이 맞다"고 판정을 내렸다. ◇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의 순서는? 디노미네이션이 지금 당장 추진해야 하는지, 아니면 중장기적 과제로 남겨둬야 하는 지는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박승 총재가 직접 나서 "한가할 때 하자"고 한 것은 한은 직원들의 사기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또 경제정책을 펴는데 한가할 때가 있을까. 카드사 위기가 터지거나 대형 분식회계가 발생할 수 있고 심지어 911테러나 이라크전쟁같은 일들이 언제든 도사리고 있다. 박승총재는 지금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하고 바랄 지도 모른다. 24시간은 긴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머지 6시간동안 디노미네이션을 연구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30시간으로 하루가 늘어난다고 해도 긴급한 일은 항상 있는 법이다.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긴급한 일은 문제가 터지고 난 다음이다. 또 중대한 일은 바쁘지는 않으나 전체 판도를 뒤바꾸는 경우가 많다. 박승총재 말대로 디노미네이션은 실행을 결정하고 나서 준비하는데만도 4년 정도는 걸리는 중장기적 과제다. 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박승총재의 생각이 "한가할 때 틈틈이"해서 임기중 완결짓겠다는 것이었다면 아예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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