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태광, '김치 강매' 첫 판결서 승소…法 "'고가' 단정 어렵다"

法, 흥국생명 금융위 상대 행정 소송서 '원고 승소' 판결
"골프장 김치, 고급 재료 사용…일반 김치 비교 부적절"
티시스 고가 전산용역계약·홍보책자 구입도 인정 안 해
'공정위vs태광' 행정 소송·관련 형사 재판 영향 불가피
  • 등록 2021-09-27 오후 2:55:49

    수정 2021-09-27 오후 9:39:56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본사.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태광그룹이 계열사에 김치를 고가 판매했다는 의혹에 대해 법원이 태광그룹의 손을 들어줬다. 소위 태광그룹의 ‘김치 강매 의혹’과 관련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태광그룹과 공정거래위원회 간 행정 소송 및 형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한원교)는 최근 흥국생명보험(이하 흥국생명)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2019년 7월 흥국생명이 태광그룹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티시스 소유의 휘슬링락 컨트리클럽(CC)이 판매하는 김치를 고가에 구입하는 등 보험업법상 대주주 거 래 제한 조항을 위반했다며 과징금 18억 1700만 원을 부과했다. 제재 사유엔 김치 고가 구입 외에도 △티시스와의 고가 전산 용역 체결 △휘슬링락CC 홍보용 영문 책자 고가 구입도 포함됐다.

이 같은 금융위 제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같은 해 6월 태광그룹 계열사들에 내린 제재를 뒤따른 것이다. 당시 공정위는 흥국생명 등 태광그룹 19개 계열사에 대해 휘슬링락CC 김치를 고가에 구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계열사에 부당 이득을 제공했다며 과징금 21억8000만 원을 부과하고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김기유 전 경영기획실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고급호텔 브랜드 김치와 유사한 판매 방식”

이번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관련 행정 소송과 형사 재판 중 처음으로 나온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흥국생명이 금융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제재 사유가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김치 판매와 관련해 ‘주요 백화점 판매 가격보다 최대 130.6%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는 금융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금융위는 주요 백화점에서 판매된 한 김치 브랜드 평균 가격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며 “비교 대상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황에서 김치 거래가 이뤄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워 흥국생명 김치 거래가 뚜렷하게 불리한 조건으로 이뤄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골프장 김치 광고지를 보면 통상적으로 백화점 판매 김치에 비해 더 고품질의 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위는 재료를 구체적으로 비교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골프장 김치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제조가 이뤄졌고 전용 용기를 사용해 개별 포장하는데 반해, 비교 대상 김치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비닐 포장 제품”이라며 “품질이나 고객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골프장 김치는 고급호텔 등이 브랜드 가치와 결합해 판매하는 김치와 유사하게 휘슬링락CC 브랜드와 결합해 판매됐다”며 “고급호텔 판매 김치 가격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별도의 공정위 제재와 관련해선 “공정위 조사의 경우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목적인 만큼, 입법 취지가 다른 보험업법 위반 제재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며 “금융위가 비교 대상 김치의 가격을 직접 조사하지도 않은 만큼 정상 가격을 단정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식품위생법 위반 상태에서 제조된 만큼 품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식품위생법상 식품제조가공업체로 등록하지 않고 김치를 제조했다는 점이 비교 대상 김치 가격을 정상 가격으로 인정해야 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전산 용역 계약, 애초 낮은 수준…부당 지원 단정 안돼”

티시스와의 전산 용역에 대해서도 보험업법상 ‘뚜렷하게 불리한 조건’으로 이뤄진 거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애초 흥국생명이 티시스에 적용한 단가가 동종 회사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고, 티시스도 세무 조사에서 부당 행위 가능성을 지적 받았다”며 “티시스를 부당하게 지원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금융위가 비교 대상으로 삼은 티시스의 다른 계약의 경우 투입 인력, 계약 기간, 계약 금액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이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휘슬링락CC 홍보용 책자 고가 매입 혐의에 대해서도 “책자 1권당 제작 비용이 34만6000 원이었고, 구입 비용은 35만 원이었다”며 “거래를 통해 티시스가 수익이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티시스가 책자를 무상으로 교부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결론 냈다.

금융위의 항소 포기로 확정된 이번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처분과 관련해 티시스·흥국생명 등 태광그룹 19개 계열사와 이 전 회장은 불복 소송을 제기해 현재 서울고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며 다음달 21일 5회 변론을 앞두고 있다.

이와 별도로 공정위가 이 전 회장 등을 고발한 사건의 경우 검찰이 지난달 18일 이 전 회장을 무혐의 처분하고 김 전 실장만 재판에 넘겼다. 김 전 실장에 대한 재판은 다음 달 7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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