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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얘기는 꽤 됐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긴축 조짐이 완연한데, 나라 안으로 눈을 돌리면 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은 탓이다. 기준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연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광폭 행보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이에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바탕으로 당면한 통화정책의 주요 고려사항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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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항상 외국인 자금 흐름에 민감하다. 20년 전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외국인 자금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다가 끊기거나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면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글로벌 자금은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자금 대이동)’ 현상이 나타났다. 그레이트 로테이션은 미국 통화정책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채권시장에서 빠져나와 위험자산에 해당하는 주식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미국 펀드의 자금 흐름은 2015년 이후 2년 동안 주식에서는 빠져나가고 채권으로 들어갔지만 미국 대선을 계기로 주식으로 유입되고 채권에서 유출되는 방향으로 틀었다. 신흥시장국 펀드의 경우 이와 반대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식·채권 모두 자금이 들어갔지만 미국 대선 직후 두 자산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추세로 돌아섰다.
이같은 그레이트 로테이션의 원인으로 한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공약에 주목했다. 트럼프노믹스의 직접적 혜택이 기대되는 △제조업(재정지출 확대) △금융(규제 완화) △내수 중심 중소기업(보호무역 강화) 등 미국 주식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것. 이에 비해 미국의 보호무역로 직격탄을 맞을, 미국과의 교역 비중이 높은 신흥시장국에서는 자금 유출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구나 미국 경기 회복과 금리 상승에 따른 자본유입 증가 가능성 등으로 달러가 강세로 돌아섰다. 이에 상대적으로 신흥국 통화 가치는 떨어졌고 신흥국 주식·채권에서의 자금 유출 폭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지속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달 들어 지난 27일까지 글로벌 자금 흐름을 보면 선진국 주식펀드로 향하는 자금은 반토막 난 데 비해 신흥국 주식펀드는 소폭이지만 유입세로 돌아섰다. 채권형펀드도 사정은 비슷하다. 빠져나가던 선진국 채권펀드로 자금이 큰 폭 유입됐고 신흥국 채권펀드로도 자금이 들어갔다.
한은은 “신흥시장국 펀드자금 유출은 주로 미국 내 요인에 크게 영향 받았고 미국 신정부의 경제정책이 구체화할 때까진 당분간 이같은 흐름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진다면 신흥국 펀드에서의 자금 유출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