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시달리던 샤프가 25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6600억엔(7조2800억원)의 지원을 제시한 대만 홍하이정밀화학(폭스콘)의 인수안을 받아들였다.
‘정밀·첨단’…무너진 일본 104년 기업의 자존심
1912년 하야카와 도쿠지(早川德次)가 창립한 샤프는 20세기 일본 전자산업을 이끈 대표적인 대기업이다. 1964년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 계산기를 개발하며 이름을 알린 샤프는 전자계산기, 휴대용계산기를 내놓았다. 특히 1973년 액정표시장치(LCD) 계산기를 내놓으며 글로벌 시장 기술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1986년 취임한 츠지 하루오 전(前) 샤프 사장은 ‘액정의 대형화’를 내걸고 LCD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내놓았다. 1999년 20인치 LCD TV를 시작으로 경량 비행기나 대형 TV 등을 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LCD ‘올인’ 전략은 액정사업 수익성이 악화되자 샤프를 되레 늪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샤프는 액정시장 수익성이 나빠지며 지난해 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2223억엔의 적자를 냈다. 샤프를 상징하던 오사카 본사부터 ‘돈 되는 것은 다 파는’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중국 경기침체로 올해(2015년 4월~2016년 3월) 역시 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와 홍하이가 손을 내밀었다. 일본정부는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를 통해 샤프에 3000억엔을 출자하고 성장자금 2000억엔을 융자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어 INCJ는 샤프 기술력이 해외로 유출되면 일본 시장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애국심’에도 호소했다.
홍하이는 외국자본임에도 샤프와 경영 및 자본에서 밀접한 제휴를 맺고 있었다. 결국 경영난에 허덕이던 샤프로서는 홍하이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하야시 미키오 경제산업상은 “우리는 INCJ 제안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결정은 어디까지나 샤프의 몫”이라며 “외자를 바탕으로 샤프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청업체’ 주홍글씨 떼는 홍하이…한국엔 악재
이번 인수로 홍하이는 ‘하청업체’ 주홍글씨를 뗄 전망이다. 홍하이는 애플, 소니, 블랙베리, HP 등 세계 굴지 IT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지만 주문자 상표부착생산(OEM)을 주로 해 왔다.
홍하이는 샤프의 기술력과 네임밸류를 확보한 만큼 LCD TV 등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을 자체 브랜드로 생산할 전망이다. 중국의 경기 둔화로 최대 고객 애플의 아이폰 수요가 줄어드는 만큼 독자 기술 보유가 절실한 순간이기도 했다.
대만업체가 일본 기술력을 업고 시장에 나서는 만큼 삼성과 LG 등 한국 기업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특히 샤프가 강점을 보이던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이나 LCD 시장이 이제 중화권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홍하이 지원으로 샤프 생산이 정상화된다면 중대형 LCD 수급에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10세대 LCD는 크기가 60인치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대형화 추세에 있는 LCD TV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이 점차 약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홍하이그룹은 샤프와 공동으로 지분을 투자해 LCD TV 패널을 생산하는 공장 사카이 디스플레이 프로덕트(SDP)를 운영하고 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홍하이그룹이 샤프를 인수하면 샤프의 브랜드 가치를 활용하거나 자체적인 LCD TV 브랜드를 만들어 높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값싼 제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에게는 중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홍하이에 인수된 샤프가 애플에 대한 비중을 높여갈 경우 그동안 애플 LCD 패널을 공급해온 LG디스플레이와의 경쟁도 심화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내 기업들이 이미 LCD 이후를 대비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나 아몰레드 등 새로운 기술개발에 집중한 만큼 이번 인수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홍하이가 ‘일본기업 인수’에 급급해 너무 비싼 값에 샤프를 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소형 액정산업은 LCD에서 아몰레드로 전환하는 ‘일대 변화’를 겪고 있다”며 “샤프는 설비투자는 물론 개발투자도 억제해 최근 업계 트렌드에 뒤처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