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후 4시 성공회대 성미카엘성당. 성공회가 설립한 이 대학 채플(종교 수업)시간 강단에 신부가 아닌 법현스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달마대사의 가르침으로 훗날 선종의 제2조가 된 혜가(慧可)스님 일화에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법현스님이 “본심은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팔을 자른 사내도 너무했고 그걸 보고 기뻐한 달마대사도 너무했다. 여러분은 그래선 안 된다”고 하자 금세 웃음바다가 됐다.
성공회대(총장 이정구)는 이날 2016학년도 1학기부터 법현스님을 강사로 초청해 ‘스님과 함께 하는 채플’ 수업을 진행했다. 서로 다른 종교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배려하고 종교 간 대화를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스님이 강연하는 채플 수업을 만들었다.
서울에너지살림홍보대사, 불교생명윤리협회집행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법현스님은 ‘틀림에서 맞음으로’란 강연 제목으로 첫 수업을 진행했다. 직접 작사한 노래를 들려주고 강연 중간중간 다양한 색깔의 연꽃 사진도 보여주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법현스님은 또 “부처님이 했다고 하는 말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보면 예수님이 한 말씀과 비슷한 부분도 많다”며 “깨달음을 얻는데 종교적 구분은 불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시간 동안의 강연이 끝나고 “다음 수업은 휴강”이란 말에 학생들이 환호했지만 대신 실습과제로 ‘절에 가서 사진찍기’를 내주자 이내 탄식했다.
‘스님과 함께 하는 채플’ 아이디어를 낸 이정구 총장은 첫 수업이 끝난 뒤 법현 스님과 차를 마시며 “주목받기 위한 기획이 아니라 우상타파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장은 “성당예배의식 중에 성체(빵)를 쪼개는 과정이 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우상타파다”라며 ‘스님과 함께 하는 채플’이 교리와도 무관치 않다고 강조했다.
성공회대 관계자는 “종교는 배타성을 갖는 게 아니라 서로 상생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번 수업을 고안했다”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자기성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종교간 대화의 영성’ 등의 과목을 운영해 온 성공회대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 원불교, 이슬람, 천도교 등 다양한 종교의 성직자를 초청해 특강을 진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