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해봤어?" 반포주공1단지 수주 '정주영 마케팅' 먹혔다

16년만에 되살아난 왕 회장 "이봐, 해봤어?"
현대건설, 재건축 홍보영상에 정주영 회장 생전 모습 담아
브랜드 인지도 열세 극복..70대 표 얻어
"고인인 회장님이 현대에 큰 선물 줘"
  • 등록 2017-09-28 오후 6:48:10

    수정 2017-09-28 오후 7:56:09

[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하늘에 계신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올해로 창립 70년을 맞는 현대건설에게 큰 선물을 준 셈입니다.”

현대건설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지난 27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위한 조합원 임시 총회장. 수주전에 나선 현대건설(000720)의 홍보 영상에는 2001년 타계한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모습이 수차례 등장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사업을 하면서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정주영 회장의 말씀을 따라 신뢰를 잃지 않는 역할을 하겠다”며 조합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당초 박빙의 표대결이 점쳐졌으나 개표 결과 현대건설이 1295표를 얻어 886표를 획득한 GS건설을 큰 표차로 따돌리고 ‘대어(大漁)’를 낚았다. “이봐, 해봤어?”라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어록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포주공1단지는 GS건설이 3년 전부터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준비할 정도로 일찍이 공을 들였던 곳이다. 뒤늦게 수주전에 뛰어든 현대건설은 ‘힐스테이트’ 브랜드가 GS건설의 ‘자이’에 비해 인지도에서 열세인 데다 현대건설이 새로 선보인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 ‘디에이치’도 생소했다.

현대건설은 반포주공1단지 조합원들 중 약 40%는 30년 이상 장기 거주자이고, 조합원의 절반 가량이 평균 70대의 노년층이라는 점에 착안해 ‘감성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반포동 한 공인중개사는 “수주 홍보기간 동안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향수 마케팅에 나선 것이 노년층 조합원들에게 먹혀든 것 같다”고 말했다. ‘산업역군 현대’라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홍보가 투박하고 촌스러워도 고령 조합원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도 사업설명회에 직접 참석해 “이곳(반포주공1단지)은 사우디아라비아 해외현장 근무 시절 어머니가 거주했던 아파트로 휴가를 받을 때마다 방문한 곳”이라면서 조합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현대건설이 내세운 파격적인 금융 지원 조건도 승리의 요인으로 꼽힌다. 조합 관계자는 “왕년에 잘 나갔던 어르신들이지만 지금은 현금유동성이 많지 않다”며 “이사비 7000만원 무상 지원과 4년간 5억원 무이자 대출을 꺼내든 현대건설의 제안에 마음이 끌리지 않은 조합원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이번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수주를 계기로 40여년 전 자사가 지었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재건축 수주도 노리고 있다. 1970년대 한강변 모래밭에 불과하던 압구정동 일대는 현대아파트 건설과 함께 차츰 주거단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해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으로 발전했다. 현대건설의 정주영 향수 마케팅이 앞으로 펼쳐질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 수주전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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