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에 미쳐있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현 감독이 1일 소속팀 한국마사회, KRA 감독으로 승진했다. 이대섭(60) 전 감독이 정년 퇴임하면서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된 현정화 감독은 국가대표팀과 소속팀 감독을 겸임하는 최초의 여성 탁구인이 됐다. 한국 탁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현정화 감독. 그는 본격적으로 탁구에 미칠 준비를 마쳤다.
"대기만성. 그게 딱 제 스타일이죠"
현정화 감독은 자신을 '대기만성형'이라고 표현한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15살이던 부산 계성여상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 태극마크를 단 10년간 그는 늘 정상에 있었다. 그런데 대기만성형이라니…
그러나 현 감독의 말은 다르다. 부산 대신초 3학년이던 열살 때 라켓을 잡은 이래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선수 생활 10년이 되던 87년, 세계선수권에서 첫 우승(여자복식)을 거머쥔 이래 해를 거듭할 수록 기량이 늘었다는 그는 93년 세계선수권 여자단식 우승 등 94년 은퇴 직전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는 설명이다.
"선수 생활 10년만에 빛을 봤는데, 지도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에요. 선수로 뛸 때 수 없이 이겼던 내가 지도자를 하면서부터는 수 없이 졌거든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원형 탈모까지 생겼어요."
"지도자가 되어서야 지는 사람의 마음을 알겠더라구요. 솔직히 선수 때는 교만했던 적도 있었죠. 지도자가 되어서도 승승장구했다면 선수 때 갖고 있던 교만함을 그대로 갖고 있었겠죠. 내 방식, 내 스타일만을 고집했을 거에요."
KRA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본격적인 두 집 살림에 돌입한 현정화 감독. 어떻게 두 집 살림을 해 나갈지 궁금해졌다.
"대표팀과 소속팀 사이에서 중심이 흔들리지 않아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잣대가 있어야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말들을 하면서 대표팀 내 우리 소속 선수들을 더 챙길거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이제 소속팀을 책임지게 된 만큼, 앞으로 중심을 잡기 위한 잣대는 더욱 엄격해 질 거에요."
"과거에 한국이 중국을 꺾고 우승했을 때도 중국은 강했어요. 단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라면 요즘은 선수들이 부딪혀 보기도 전에 숙이고 들어간다는 거에요. 절대 지지않는다는 생각으로 근성있는 플레이를 한다면, 중국은 결코 못 넘는 산이 아니에요. 공은 둥글잖아요."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단체전이 추가되면서 현정화 감독은 메달 획득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뭉치면 강한 것이 한국. 탁구도 예외는 아니다. 선수간 '먹이사슬' 관계만 잘 파악하면 승산이 있다고. 올림픽을 얘기하는 현정화 감독의 눈이 반짝거린다.
은퇴 직후 탁구를 치는 것도, 보는 것 조차도 너무 지겨워 1년간 탁구를 완전히 떠나있어 보기도 했다는 그는 요즘 탁구가 너무 재미있단다.
"예전에 감독님들이 저한테 그랬거든요. 탁구에 더 미쳐야 한다고. 그런 말 들으면 짜증이 났죠.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야'하는 마음 뿐이었는데, 이제는 알겠어요. 그 말이 무슨 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