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히트곡 `어머님` 못 부르는 사연(인터뷰)

  • 등록 2012-04-27 오전 7:10:17

    수정 2012-04-27 오전 8:33:09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27일자 32면에 게재됐습니다.
▲ 남진
[이데일리 스타in 조우영 기자]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백날을 하루같이 이 못난 자식 위해 손발에 금이 가고 잔주름이 굵어지신 어머님/ 몸만은 떠나 있어도 어머님을 잊으오리까/ 오래오래 사세요/ 편히 한번 모시리다.’

46년차 불세출의 가수 남진(67)이 1976년 발표한 곡 ‘어머님’의 노랫말이다. 남진은 공식적인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은 지 19년이 됐다고 했다. 많은 히트곡에 묻혀서가 아니다. “KBS1 ‘가요무대’에서 내가 가장 많이 불렀을 만큼 아끼는 곡인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 노래를 더는 부를 수 없었다. 가슴 속 깊이 사무친 격한 감정이 눈물로 쏟아질까 두려워서다.”

어머니를 향한 남진의 그리움은 각별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어머니’라는 말 자체에 아련한 추억이 있겠지만 내게는 정말 죄스러운 마음의 함축어”라며 회한에 젖었다. 학창시절 공부도 게을리했고 자식으로서 기대에 못 미친 점이 많았다. 가수로 유명세를 탄 이후에도 “사실 속된 말로 욕도 많이 봤다”고 했다. 

1968년 해병대 입대한 그는 베트남전쟁에 파병돼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 차례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한때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방송활동 비중도 줄어들었다. 1983년 ‘빈잔’이 히트하면서 복귀에 성공했지만 1989년 조직폭력배로부터 테러를 당해 몇 차례 대수술을 받았다. 생전에 마음만 아프게 해 드렸는데 이제 자신도 자식을 키워보니 어머니의 상처를 더 뼈저리게 느낀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55세에 남진을 늦둥이로 본 그의 아버지는 엄했다. 아버지는 목포신문사 사장을 역임하며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문옥 선생이다. “‘부잣집 자식은 오냐오냐하면 버린다’고 해서 특히 그러셨던 것 같다. 머리를 쓰다듬거나 용돈을 주신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니까.” 그런 아버지에게 가수는 ‘풍각쟁이’에 불과했고 당신 아들의 직업으로서는 절대 불가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시면서 돌아가시기 5개월 전쯤 내가 노래한다는 사실을 처음 아셨다. 불려 가 호되게 야단맞았다. 서울에 있지 말고 당장 목포로 내려가라고. 그렇게 부모님 속을 썩이고 데뷔했다.”

부잣집 도련님 남진이 아닌 가수 남진이 있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처음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1965년 데뷔곡 ‘서울 플레이보이’는 주목받지 못했고, 두 번째 곡 ‘연애 0번지’ 역시 제목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남진은 “당시 연이어 두 번을 망하고 매일 술로 보냈는데 어머니가 재기를 도왔다. 가수로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원동력을 어머니가 주셨다”고 말했다.

남진은 아무리 바빴어도 부모님 모시고 여행 한 번 못 다녀온 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고 했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세계여행은 못할망정 단 하루라도 좋은 곳에 모셔가고 싶다”고 바랐다. 노래를 직접 불러드린 적도 없다. ‘가수가 무슨 노래를 따로 불러 드리겠느냐’는 생각에 쑥스러웠다. 그는 “목포에 계신 어머니는 늘 ‘바쁜데 오지 말라’고만 했다. 그래도 자주 찾아뵈었어야 했는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해 33년 만에 전국투어로 팬들과 활발한 만남을 재개한 남진이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이데일리가 주최하는 ‘효(孝)’ 디너쇼를 연다.

남진은 “이번 쇼에서 30곡 정도 한다. 나도 적은 나이가 아니니까 힘은 들지만 아직도 복근이 있다. 춤 연습도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이내 “60, 70년대를 나와 함께 했던 팬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 자녀가 사준 티켓을 들고 무대를 찾는다. 팬들의 힘찬 박수에 힘이 나고 기쁘지만 그 자리 어딘가에 내 부모님도 계셨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진이 생각하는 ‘효’란 무엇이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단순하지만 명확한 답을 내놨다. “살아생전에 효도 해야지. 그러지 못한 난 무거운 짐을 안고 산다. 지금도 이따금씩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용서를 빌지만 이제 와 후회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 남진(사진=한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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