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으로 함께 만났을 땐 말 한마디 붙이지 못했다. 그의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때 한석규가 본 영화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었다. 객석 중앙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아 사색하듯 영화를 보곤 사라졌다.
술자리에선 말을 하는 모습에 놀랐다. 스스럼이 없었으며 진솔했고 또 진중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않고 바로 되물었다.
“배우를 왜 배우라고 하나요? 한자로 광대 배(俳)에 넉넉할 우(優). ‘배’ 자도 사람 인(人) 변에 아닐 비(非). 사람이 아니라는 건데 말이 안 되고. 영어로는 ‘액터(Actor)’, 움직이는 사람? 그 역시도 설명이 충분치가 않아요. 그러다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며 생각했어요. 그래, 배우는 어쩌면 시간을 사는 사람일지 모르겠다. 진짜의 시간이 아니라 가짜의 시간을 사는 사람. 그렇다면 설명이 약간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네요.”
흡사 도를 닦는 수행자 같다. 얼마 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석규 스님’으로 불리는 그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난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자신을 “1년 365일 만날 슬럼프인 배우”라고 말한다. “말은 잘 하는구나, 이 새끼야”. 스스로 되뇌는 말이다. 과거 인터뷰를 보며 역겨운 생각이 들어 그간 인터뷰를 마다해왔다고 고백했다. 학대에 가까운 자기비판이 계속됐다.
무언가 설명이 쉽지 않을 땐 취미인 ‘골프’ ‘낚시’에 빗대 말했다. “과거엔 골프를 칠 때 폼을 중요시했는데 하다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요즘은 연기할 때 액션보다 리액션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식이다.
최근 세 차례 만남에서 한석규는 공교롭게도 늘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한 계절을 교복처럼 입고 나는, 같은 디자인의 옷이 여러 벌 있다”고 설명했다. 클래식한 취향이 놀랍다고 하자 “앞으로도 몇 번은 더 (같은 옷을) 보게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석규는 한석규였다. 그냥 직업이 배우인 사람. 주변에서 아무리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도 흔들림이 없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늘 같은 곳에 서있다.
|
☞ 한석규, 배우들의 멘토.."롱런 비결은 인내심"②
☞ 한석규 "심은하와 다시 한번 연기하고 싶다"
☞ 한석규 "'파파로티'는 내 스무 번째 작품"
☞ '파바로티' 아닌 '파파로티'? "저작권 때문에..."
☞ '파파로티' 뻔한 스토리, 익숙한 연기..신파가 세련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