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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에게 선물 받은 커피 빈의 로스팅 그레이드 정도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의 대답이 “잘은 모르겠는데 마셨을 때 신맛이 많이 났던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신맛이 많이 느껴질 정도라면 그건 대체로 라이트(light)로 볶아진 커피다.
나는 학생에게 “신고할 필요까지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뜨거운 물을 부으면 많이 부풀어 오르는 커피를 보고 일부 사람들은 ‘이건 매우 신선한 커피’라고 말한다. 물론 볶은 지 오래된 커피가 잘 부풀어 오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대답은 매우 모호한 면이 많다.
커피가 부풀어 오르는 이유는 지극히 화학적인 문제다. 이산화탄소(CO2)와 관련된 사항이다. 달리 말하면 신선한 커피 중에는 잘 부풀어 오르지 않는 것도 있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눈치 챘겠지만 로스팅 정도에 따라 커피 빈의 부풀어 오르는 정도는 달라진다. 즉 라이트로 밝게 로스팅 된 커피는 미디엄이나 다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많이 부풀어 오르는 이유는 커피 안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라이트 로스팅된 커피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볶아진 미디엄이나 다크는 그만큼 이산화탄소의 활성화가 빨리 일어나 커피 밖으로의 배출이 빨라지면서 크게 부풀어 오른다.
이때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간 자리에 산소(O2)가 들어가게 되면 산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게 된다. 여기서 또 오해하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산화가 진행된다고 문제가 있는 커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쉽게 설명해 단백질 종류의 음식이 상하면 부패가 되고 지방 성분이 강한 음식이 상하면 산패가 된다. 커피는 지용성 성분의 특징이 있어 부패라고 하지 않고 산패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숙성이라는 개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명 에이징(aging)이라고 말하는 숙성은 커피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 숙성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경우 커피 볶은 날짜에 매우 연연하게 된다. 커피를 숙성하는 방법은 쉽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공기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공기의 접촉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숙성이 있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산소에 노출되는 경우이고, 후자는 산소와의 접촉을 차단시킨 가운데 원두 안에 있는 이산화탄소만 배출시키는 디개싱(degassing) 방법이다. 커피의 경우 대부분 후자의 방식으로 숙성을 진행한다.
지난 시간에 말했던 이탈리아 커피의 경우 이 숙성기간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데 에스프레소를 위해서는 반듯이 일정기간의 숙성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에스프레소의 경우 3-4일 정도의 숙성기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이탈리아의 경우 각 지역별로 차이를 염두에 두어도 이보다 훨씬 더 오래 숙성을 한다.
물론 브루윙(brewing) 커피의 경우는 다르지만 에스프레소 기준으로만 이야기 한다면 신선한 커피는 오히려 시간이 지난 커피보다 맛이 없게 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아메리카노가 아닌 에스프레소의 기준으로 맛을 봐야하고 둘째는 개봉 후 매우 빨리 소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핸드드립 커피의 경우 잘 부풀어 오른 빵모양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주는 신선함이 아니라 이를 통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이해해야 한다. 볶은 지 얼마 안 된 커피라 해도 잘 부풀어 오르지 않는 현상은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다. 가령 커피의 분쇄도가 너무 굵어도 잘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또 물의 온도가 너무 낮아도 잘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이렇듯 무조건 오래된 커피만 잘 부풀어 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에스프레소 커피를 맛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오히려 갓 볶은 커피를 바로 취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혹은 현상학적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 신선하지 않은 음식물들이 범람한 탓에 우리는 ‘신선한 것’에만 집착하게 된 것일까. 최종 즐겨야 하는 맛은 잊어버린 채 말이다.
△글=김정욱 現 딸깍발이 코퍼레이션 대표. 現 커피비평가협회 한국본부장.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베스트 컵 콘테스트 심사위원(2015 B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