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의 軍界一學]'군사경찰'로 이름 바꾼 헌병병과의 유래

  • 등록 2020-02-09 오전 10:09:27

    수정 2020-02-09 오전 11:49:34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한국군에서 ‘헌병’을 ‘군사경찰’(Military Police)로 개칭하는 내용의 군사법원법 개정법률이 지난 4일 관보에 고시됐습니다. 이에 따라 헌병이라는 명칭은 군사경찰로 바뀌게 됐습니다. 국방부가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 명칭을 개선하고 현재 수행 중인 병과의 임무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추진한 병과 명칭 개정이 당초 계획보다 1년여 늦게 이뤄진 것입니다.

앞서 국방부는 사상과 이념무장을 강조하던 시대에 ‘정치훈련(政治訓練)’의 약어로 만들어진 ‘정훈(政訓)’병과를 ‘공보정훈’(公報精訓) 병과로 바꿨습니다. 원활한 국민과의 소통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정훈병과의 ‘정’자를 정치 ‘政’에서 정신 ‘精’으로 바꿔 군의 정치적 중립과 장병 정신전력 강화 기능을 강조한 것입니다.

1970년 서울 시내에서 휴가 나온 병사의 휴가증을 검사하고 있는 헌병의 모습 [출처=국방일보]
이와 함께 해군과 공군의 경우 시설 및 부동산 관리 등 특정 분야 임무만을 대변하고 있는 시설 병과 명칭을 일반공병 지원과 기동 및 대(對)기동 지원, 지형정보 등 전반적인 임무를 포괄할 수 있도록 공병 병과로 바꿨습니다. 육군의 경우에는 화학 병과가 화학 분야 이외에 현재 관할하는 생물학, 핵 분야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화생방 병과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인사행정 병과의 경우에는 업무 영역이 인력, 근무, 사기 및 복지 등 인사 전 분야로 확대됐고 행정이라는 용어가 비전투 분야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인사 병과로 바꿨습니다.

헌병, 장교 경호 임무 위해 창설

헌병병과의 기원은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든(C.C.Soden)이 1955년 ‘호주 육군저널’(Australian Army Journal)에 연재한 ‘어떻게 시작됐나’(How It Began)에 따르면 최초의 헌병은 난폭한 병사들로부터 장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났다고 합니다.

1740년 무렵 벨기에와 네덜란드 남부, 프랑스 북부에 걸친 중세의 나라였던 플랑드르 지방에선 전쟁에서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해 손실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신병을 징집했다고 합니다. 이에 징병대상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의 분노가 극에 이르게 됐고, 국민들은 닥치는대로 군장교를 붙잡아 구타함으로써 분을 풀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맞서 군대에서는 장교숙소를 경비하고 출퇴근시 매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장교 경호 임무를 담당하는 건장하고 신원이 확실한 젊은이를 헌병으로 선발했다는 것입니다. 약 1세기가 지나 사정이 나아져 더이상 장교 보호의 임무가 필요없게 되면서 이들 경호원은 재편돼 오늘날과 같은 헌병 임무를 부여받게 됐다고 합니다. 이때 헌병장교 제도가 창설되고 오늘날과 비슷한 헌병병과를 조직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호주 육군 저널’에 소개된 헌병의 유래 [출처=호주 육군 홈페이지]
6.25전쟁, 헌병의 첫 헬기 작전 이뤄져

이와는 달리 오늘날과 비슷한 헌병의 활동은 노르만족의 영국 정복시에도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로렌스 P. 크록커 (Lawrence P. Crocker)의 ‘육군 가이드’(The Army Officer‘s Guide)에 따르면 당시의 헌병사령관은 국왕이 직접 임명했는데 그 목적은 왕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기율의 문제를 취급하게 해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1611년에는 북미 대륙에도 헌병들이 건너가 미국 버지니아 식민지에서 헌병사령관은 부총독이 만든 군법에 따라 근무했다고 합니다.

이후 1776년 1월 미국의 독립군인 워싱턴군에 헌병사령관이 임명되고 2년 뒤에 식민지 의회는 헌병단을 창설해 경용기병이 갖는 장비 등으로 무장해 도망병, 주정꾼, 약탈자, 소요 주동자 등을 체포해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1862년에는 미국 재향군인단이 설치되면서 이들이 헌병 임무를 잠시 맡았었습니다. 그러나 1866년부터 1차대전이 일어나던 해까지 헌병 총사령관직과 재향군인단은 폐지되고 헌병의 역할은 각부대 지휘관에게 이관됐습니다.

이에 따라 1차대전 당시에는 헌병의 역할이 제한적이었지만, 2차대전 중이던 1941년 9월 미국방 장관이 헌병단의 창설을 지시함에 따라 다시 활성화 됐습니다. 이 때부터 헌병은 법을 집행하고 개인의 권익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의 기능과 보안 임무를 수행하게 됐습니다. 평시에는 교통통제, 사고의 조사, 범죄예상, 범죄수사, 대민간인 소요 진압 작전, 형무소 운영 등의 임무를 담당합니다. 전시에는 포로취급, 중요물자의 경계 보안, 방위선 설치 및 수색, 피난민 취급, 현지 경찰의 교육 훈련 등이 헌병의 임무입니다.

한국 전쟁시에는 특히 상당히 많은 북한 피난민의 취급을 위해 헬기를 헌병이 최초로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1965년 베트남전 중에는 헌병여단을 전투에 참가시켜 항만 및 공항 보안은 물론 보병과 같은 전술 작전도 수행한바 있습니다.

지난 해 12월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서 열린 ‘2019 헌병 종합전술훈련’에서 인천해역방어사령부 대원들이 테러범을 제압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향후 작전과 수사 조직 분리도 추진

헌병의 연혁 자료를 보면 1947년 3월 군감대가 설치된 이후 이듬해 3월 조선경비대 군기사령부가 창설됐습니다. 1948년 12월 군기병을 헌병으로 개칭하면서 헌병 병과가 창설됐습니다.

일각에서는 고종황제 때 일본식 모델인 헌병을 토대로 헌병사령부를 설치하긴 했지만, 1907년 일제에 의한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 때 헌병도 폐지됐다고 주장합니다. 해방 이후 1949년 7월 ‘헌병령’이 공포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일본을 모델로 했던 대한제국 헌병에서 벗어나 미국식의 헌병으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1870년대부터 일본에서 먼저 헌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현재도 남아 있다는 지적에 대한 반박입니다.

헌병의 이번 군사경찰 명칭 변경 이후 국방개혁 2.0에 따른 군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헌병 작전과 수사 조직을 분리하는 구조 개편도 추진합니다. 헌병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수사 조직을 떼어내 각 군 참모총장 직속의 수사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각 군 본부 헌병실 및 중앙수사단 등의 상부 조직과 일선 부대의 구조 개편이 이뤄져야 합니다.

군 관계자는 “수사 전문부대와 야전 헌병 조직의 전문화를 도모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개편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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