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구의 PD열전]소설가 꿈꾼 PD, '하얀거탑' 안판석

  • 등록 2007-05-28 오전 7:00:00

    수정 2007-05-28 오전 7:22:39

▲ 안판석 PD(사진=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그는 1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잠시도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애연가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드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줄담배였다.
 
바로 MBC 드라마 ‘하얀거탑’의 연출자 안판석(46) PD였다. "원래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우느냐"고 묻자,  그는 “드라마 연출을 하면서 특히 많이 늘었다. 촬영 현장에서 자신감 없는 모습, 초조함을 들키기 싫어 담배를 꺼내 문다”고 말했다.
 
‘하얀거탑’에서 김명민, 김창완, 이정길, 변희봉 등 강한 존재감이 있는 연기자들을 이끌던 연출자여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연상했는데, 의외로 여린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좀 무른 편이에요. 연기자나 다른 스태프가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협의를 하지, 소란스럽게 충돌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에게는 촬영장이 직장인데 그곳에서 모두 행복할 수 있어야죠.”

여린 듯하면서 모나지안게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치열한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를 통솔하는 안판석 PD만의 노하우다.

◇ 20년 연출 인생 “갈수록 두려워진다”

“고교 때까지 꿈은 소설가였어요. 따지고 보면 드라마 연출자, 영화 감독도 스토리 텔러라는, 소설가와 같은 맥락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안판석 PD는 자신의 꿈을 좇아 1987년 드라마 연출자로 MBC에 입사했다. 결국 드라마, 영화도 소설처럼 문학의 한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안 PD는 “문학에는 소설, 시, 희곡 등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 연극, 드라마도 모두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해요”고 말했다.

안판석 PD는 특이하게도 사춘기를 고교 1학년부터 대학 3학년까지 6년간 겪었다고 했다. 당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데, 그는 “내가 어디서 뭘 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고 그 기간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선택한 직장이 방송사였고, 마음을 둔 직업이 드라마 연출자다. 내심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디를 가든 사람들끼리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정치 싸움을 피할 수 없는데, 드라마, 영화를 제작할 때는 그런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직업 선택에 한 몫 했다.

'그렇다면 드라마 연출자는 그런 정치싸움이 없이 편할까?' 안판석 PD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매 번 공포로 시작해요. 결과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나이가 들고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늘수록 캐스팅 때문에 전화를 거는 것조차도 어려워져요. ‘전화를 안받으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마주 앉아 캐스팅 제의를 할 때 배우 얼굴의 미묘한 떨림을 보고 있는 것도 가슴 조이는 일이죠.”

▲ MBC 드라마 '하얀거탑'


◇ ‘하얀거탑’ 연출 제의, 피가 무서워 처음엔 거절

안판석 PD는 3월 종영된 ‘하얀거탑’으로 새롭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그는 그동안 적잖은 드라마를 연출한 베테랑 연출자다. 최진실 주연의 ‘장미와 콩나물’, 안재욱, 김혜수 등이 나온 ‘짝’ 등은 인기도 높았다. 하지만 최고 시청률이 23.2%에 불과했던 ‘하얀거탑’이 지금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하얀거탑’이 의사들의 삶, 병원 내에서 성공을 향한 치열한 암투를 담아내며 메디컬 드라마, 전문직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극본을 맡은 이기원 작가가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환자들이 오가는 병원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 것도 미안했고 겁이 많아 피도 무서워하거든요.”

하지만 안판석 PD는 ‘하얀거탑’의 원작을 읽은 뒤 푹 빠져 결국 연출을 맡았다. 감동도 있었고 드라마틱한 부분도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용기를 냈다.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로맨스를 배제한 구성이 간단치 않았다. ‘하얀거탑’은 메디컬 드라마인 만큼 격투, 카 스턴트 등 이른바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볼거리도 적어 로맨스를 배제하는 것이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안판석 PD는 의사들의 이야기에 사랑까지 덧붙인다면 두 가지 재미를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고 결과적으로 모험은 성공을 거뒀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싸움을 어떻게 보여주고 이끌어갈지 집중했어요. 그것만으로 20부까지 끌고 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운이 따라준 것 같아요.”
 
▲ 안판석 PD(사진=김정욱 기자)


◇ “‘하얀거탑’ 덕분에 딸이 아빠 직업 알게 됐죠”

‘하얀거탑’은 안판석 PD의 가정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올 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딸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게 ‘하얀거탑’이다.

안판석 PD는 1990년 결혼, 슬하에 고교 1학년인 아들과 딸이 있다.

“딸이 어느 날 우쭐해져서 돌아왔더라고요. 주위에서 ‘하얀거탑’ 얘기를 하면서 ‘네 아빠가 만드는 드라마’라고 했대요. 그런데 그 일로 아빠가 드라마 연출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지 뭐예요.”

안판석 PD는 “아빠가 만날 회사에 간다며 출근을 하니까 회사원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모양”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드라마 연출자로서 촬영이 시작되면 집,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안판석 PD도 피해가지 못했다.
 
안판석 PD는 “가정에서 나는 없는 존재, 즉 ‘부재자’나 마찬가지죠. 그래도 그게 가족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하얀거탑’의 기획과 연출을 하느라 거의 1년간 경기도 고양시 일산 집에서 불과 500미터 거리 밖에 안되는 부모님 집도 1번 밖에 찾아가지 못했다며 인터뷰 도중 "정말 어른들께 죄송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끝으로 안 PD에게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작품을 물었다. 그는 “영화든 드라마든 관계없어요. ‘왕대박’이 터지고 작품성도 인정받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죠”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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