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블로는 그간 지독한 열병을 앓았다. 검·경은 지난해 10월 타블로의 학력은 사실이라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그를 공격한 네티즌 10여 명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했다. 그렇게 논란은 사실상 일단락됐다. 그러나 그의 곪은 상처는 다시 아물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아주 은은한 향기를 내뿜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인의 남편이기에. 분노하고 울부짖기보다는 나직이 읊조리고 안으로 사랑을 품어 안았다. 그마저 `비록 한숨이지만 다 고마운 숨`이라고 말하는 타블로를 만났다.
|
극복= 어떤 한 시점에서 어려움을 극복한 것도 끄집어내기 싫은 과거도 아니다. 잃은 게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 만약 내가 뮤지션으로서, 연예인으로서 계속 많은 사랑만 받았다면 제 아기가 태어났을 때 항상 밖에서 `좋은 아빠가 되겠다` 말은 했겠지만 얼마나 과연 많은 사랑을 베풀었을 수 있을까, 또 아내에게 얼마나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었을까 싶다. 어려운 일 덕분에 매 순간을 가족과 함께 했다. 그런 순간은 쉽게 허락되는 시간이 아니다. 돈이나 노력으로 살 수 없는, 행복한 추억의 시간이 됐다.
음악= 굉장히 감사해 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다. 세상에는 저보다 슬프고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래도 음악이라는 표현의 방법이 있었다.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모든 걸 잃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그 음악(내 말)을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 기뻤다. 정말 고맙다.
변화= 어렸다. 철도 없고 자만했던 것도 많았다. 가끔은 `나 이 정도 해` 보여주고 싶고 괜히 센 척하기도 했다. 까칠하고 적대적이기도 했다. 뭔가 부정적이고 건들면 폭발하는 성격이었다. 그땐 몰랐다. 뒤돌아보니 보였다.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는데 지쳐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이제는 쓸데없이 화려할 필요도 `나 좀 봐달라`는 것도 없다. 꼭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빠가 됐고 남편이 됐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 동시에 생기면서 좀 더 어른이 돼 성숙해 진 것 같다.
감성=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즐거움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곡 작업을 하면서 감정이입이 어렵지는 않았다. 서정성이 강조됐다고 평가해 주시는 분들도 많은데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그렇다. 이제 자극적인 음악이 듣기 싫다. 귀가 힘들어한다. 차분하고 리얼 악기 소리가 따뜻하다. 그런데 여전히 밝고 신 나는 노래는 잘 못 만든다. 항상 2% 부족한 뭔가를 느낀다.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한국= 한국이 원망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걱정했다. 처음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했을 때도 늘 이를 경계했다. 그래서 한국의 문제가 아닌 인터넷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한국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 스스로 미국에 갔을 때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그런데 내 사건이 한국의 문제로 잘못 비치는 게 싫었다. 정말 그 마음이다.
팬= 팬들에게 잠시 서운함을 느꼈던 적은 있었다. 논란 초반에 제 가슴을 가장 후벼 팠던 게 한 팬이 에픽하이의 CD를 다 부신 사진을 찍어서 보낸 일이었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오면서 느낀 게 있다. 저 역시 밖으로 나가기 불편하고 싫었던 만큼 내 팬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그때는 외로웠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날 기다려 주고 응원해 준 팬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가족= 피의 관계, 이런 것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어떤 일이 있어도 제가 우선시 해야 되는 사람들이다. 지켜줘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동료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내 가족이 누군지 안다. 다행이다. 일찌감치 깨달았다. 죽을 때까지 이 사람들만 지키고 가면 된다.
강혜정= 타블로는 이번 앨범에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그 중 `밑바닥`이란 곡에서 그는 “내 불행의 반을 떼어가길 바라서 너의 반쪽이 된 건 아닌데”라며 “하필 내 생의 밑바닥에서 날 만나게 된 네가 웃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아내 강혜정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이제 그만 아파도 될까? 그만 두려워도 될까? 눈물 흘린 만큼만 웃어 봐도 될까?`(`고마운 숨`의 노랫말 中)라고 조심스레 세상을 향해 묻고 있다. 비록 한숨이지만 다 고마운 숨이라며. 하지만 그의 물음에 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오직 그 뿐이다.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 시인은 “한 사랑이 태어나므로, 크고 넓은 하나인 사랑이 이제 태어나므로 이리도 아프고 쑤시는가 보다.(중략) 한 사랑이 태어나므로, 크고 넓고 하나인 사랑이 태어나므로 다 놓아 버리고 한참은 더 아파야 하나 보다.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라고 했다. 타블로의 `열꽃`이 더 아름다운 이유다.
▶ 관련기사 ◀ ☞타블로 `열꽃`, 美 빌보도 월드앨범차트 2-5위 `기염` ☞배철수 "타블로, 힙합이라는 장르 넘어섰다" 극찬 ☞타블로, 미국-캐나다 아이튠스 힙합차트 1위 ☞타블로 IQ 테스트 화제 이유는? ☞타블로, 30일 `인기가요`로 컴백 ☞"고통의 흔적" 김태원·이적이 본 타블로 신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