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5th 피플]통화스왑 전문가와 낡은 휴대폰의 추억

마켓in이 만난 사람..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
  • 등록 2011-11-07 오전 10:35:00

    수정 2011-11-07 오전 11:39:30

마켓in | 이 기사는 11월 03일 13시 35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휴대폰 하나를 꺼내들었다. 너도나도 스마트폰 하나쯤 가지고 있는 지금, 낡고 닳은 2G 슬라이드 폰이었다. 그리고 얘기를 시작했다.

“저와 함께 지난 몇 년을 보냈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가 부족해 위기설이 불거질 때 이 녀석으로 국제전화를 수없이 했더랬죠. 다행히 3년전 금융위기는 무사히 넘겼지만, 지금은 또다른 위기의 중심에 있어요. 제 짧은 바람이 있다면 이 모든 위기를 잘 해결하고, 글로벌 안전망 구축까지 끝내면 그때는 미련없이 이 녀석을 바꾸고 싶네요.”

과천청사의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뤘던 10월 중순의 어느 날. 방금전까지 보고를 받던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은 이렇게 마켓in과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 (사진=권욱 기자)
사진기자의 요청에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고 자켓을 입으며 다소 쑥스러운 듯 포즈를 취하던 그에게 물었다. “최근 엄친 딸 우주 스펙 신아영 아나운서에 대한 얘기가 화제인데, 어떤 딸인가요?” “이번에 속썩인 것 말고는 정말이지 내 딸인 게 너무나 자랑스럽죠. 워낙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어요. 예전엔 이천수 선수를 좋아했는데, 요새는 박지성 선수를 좋아해요.” 차관실 한 켠에는 가족과 찍은 여러 개의 사진액자들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었다.

하버드대 출신의 엄친 딸 못지않게 신제윤 차관의 인기도 알아준다. 신 차관은 재정부 직원들이 뽑은 존경받는 상사로 5년 연속 이름을 올렸고, 2009년 출입기자와 가진 송년회때는 기자단이 뽑은 좋아하는 공무원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윤종원 경제정책국장(현 경제금융비서관)에게 간발의 차로 밀린 신 차관(당시 국제업무관리관)은 “에잇,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로 소감을 전하며 모두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1981년 행시 24회 수석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꼬박 30년을 일해온 그에게 ‘공직’이란 어떤 의미일까. “예전에는 솔직히 후회하기도 했어요. 가족들에게 시간도 못 내고 월급은 적고… 그런데 차관이 되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네요(웃음).”

2008년과는 다르다…지역안전망 ‘먼저’ 그는 폐소공포증이 있다. 터널 속 정체도 버티기 힘든 그가 2008년 금융위기 해결과 G20회의, 한미 FTA 금융서비스 부문대표를 맡으며 수 백번 비행기에 올랐다. “예전엔 잘 몰랐어요. 어느 순간부터 비행기에 오를 때 답답하고 참기 힘들더라고요. 그럴 땐 스포츠같은 다른 생각에 집중하거나 수학공식을 외우기도 해요.” 신 차관의 항공사 마일리지는 110만마일. 계산해보면, 서울과 뉴욕을 160번이상, 혹은 서울과 브라질 상파울루를 95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는 얘기다. 그만큼 바쁘게 뛰어다녔고, 보람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 그는 재정부에서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을 지냈고, 3년뒤 2011년 위기가 한창일 때 다시 재정부 차관으로 컴백했다. “이상하게 고위직이 되고 나니 통화스왑 전문가가 된 것 같아요(웃음). 2008년과 지금. 위기의 본질이 다르고 차이점이 크죠. 2008년엔 위기가 한꺼번에 왔고, 지금은 서서히 오고 있죠. 물론 우리의 펀더멘털도 달라졌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지금 위기의 가장 큰 공통점과 차이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신제윤 차관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우리나라가 외화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이자 3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왑을 체결, 시장안정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엔 한일 통화스왑을 성사시켰다.

“2008년 당시엔 급작스레 닥친 위기 해결을 위해 글로벌 금융안전망부터 체결하고, 지역안전망을 보충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차근차근, 뚜벅뚜벅 할 겁니다. 무엇보다 기초체력인 펀더멘털을 충실히 하고, 지역안전망을 보완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큰 천막(글로벌 금융안전망)을 씌워서 금융안정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죠.”

이 일환으로 정부는 지난 10월19일 일본과의 통화스왑 규모를 700억달러로 확대했고, 이중 400억달러는 달러로 가능하게 했다. 일주일 뒤에는 560억달러 규모의 한·중 통화스왑을 체결했다. 일단 원과 위안화를 교환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달러화로의 전환 가능성도 열어뒀다. 신 차관은 “달러 베이스로 통화스왑을 할 나라가 지역적으로 일본과 중국정도 밖에 없다”며 “달러가 기축통화인 미국과 하는 게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된다”고 말했다.

“환율은 무빙타깃” 

▲ 신제윤 차관 (사진=권욱 기자)
신 차관은 환율은 ‘적정 무빙타깃’이라고 했다. 절대 잡을 수 없고, 적정레벨을 가지고 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라고. 그 예시로 한국의 IMF 외환위기, 태국 바트화 위기, 라틴아메리카 위기 등을 꼽았다. 고로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는 `변동성을 어떻게 줄일지`에 포커스를 둘 뿐이라고 했다.

적정 외환보유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외환보유고 3000억달러는 마지노선이다. 세계 회의에서 국내총생산(GDP) 30%선의 외환보유고는 다소 과잉이 아니냐고 묻지만, 우리는 수출입규모의 30%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정도선은 유지하려고 한다. 물론 이것도 무빙타깃”이라고 했다.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추가적 자본유출입 규제를 고려중인지도 궁금했다. “추가적 규제가 나올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외화유출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보니, 급격한 유출로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사실 변동성이 크다고 하지만, 달러-원 환율이 1050원선에서 1200원으로 갔다가 다시 1150원선에서 움직이고 있죠. 지난번(2008년)보다 변동성이 상당히 줄었다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에서 중국이 달러화 의존도를 낮추고,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허용하면서, 대중(對中)교역에 있어 위안화가 통용될 수 있는지 의견을 물었다. “위안화 결제는 양국의 발전을 위해서도, 지나친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대중교역에서 우리나라가 흑자를 기록중이기 때문에 국내에 남는 위안화를 중국에 투자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해요. 중국의 제도적인 시스템이 필요한데, 지역을 나눠서 특정지역, 특정목적용 자본투자를 허용하는 방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국내에서는 이미 딤섬본드(위안화표시채권) 발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국이 이 같은 자본투자를 허용할 경우 통화증권, 유동성 조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중국의 가장 큰 고민이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채권시장에서는 금리가 아닌 외국인의 채권투자 유동성이 더 큰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빚은 빚일 뿐…가계대책 화끈해선 안돼

미국의 월가 점령시위. 유로존의 재정위기. 중국의 경기둔화. 어찌보면, 글로벌 경제를 좌우했던 3대 핵심 축이 모두 흔들리는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궁금했다.

신 차관은 ‘빚은 빚일 뿐’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미국 모기지 채권의 위기가 은행으로 옮아가서 터진 게 리먼 사태죠. 그 이후 각국 정부는 재정으로 돈을 풀었고, 그 부분이 다시 부메랑이 돼 재정위기로 돌아온 것입니다. 결국 투자자의 빚이건, 정부의 빚이건, 개인의 빚이건 빚이라는 것은 소득에 비해 많이 쓰는 것이고, 감내할 수 없으면 터지는 것입니다. 빚에 의한 성장, 빚에 의한 정책은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의 사례로 증명됐죠.” 지금은 ‘빚’이라는 연료가 떨어져 조금 밖에 남지 않고, 비행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춰 소프트랜딩을 시켜야 하는 상황으로 고도의 세계 정책당국의 기술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시야를 국내 경제의 핫이슈인 가계부채로 돌려보자. “가계 빚 문제도 비슷하죠. 가계부채 대책은 화끈하면 안 됩니다. 화끈하다는 것은 경착륙을 의미하는데, 2005년 자금위기를 겪으며 뚜렷한 대책이 위험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급등세인 가계 대출을 줄여나가며 서서히 거품을 빼야 합니다.”   불확실한 경제…시나리오 대응

이처럼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신 차관도 내년 전망과 정책을 짜는데 고심하고 있다. 게다가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해로 벌써부터 포퓰리즘 정책 우려가 크다. 이런 여건을 감안하면 예년보다 좀 더 어렵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마이 웨이(My Way)’로 답했다.

“30년간 경제관료로 지내오면서, 그동안 정권을 생각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우리의 길을 갈 거예요. 30년간 세금을 내서 살려준 국민들에 대한 도리죠. 대외변수가 좋지 않아 조금 보수적으로 운영을 해야겠지만, 유럽의 재정위기 전개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별로 어느 쪽에 중점을 두고 경제정책을 운영할 지 고민해보고, 유럽 전개방향에 따라 뽑아 쓰도록 할 계획이에요.”

한 시간여의 인터뷰 끝 무렵에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글로벌 무대에서 ‘하이, 제윤~!’으로 통하는 답이 돌아왔다. “기회가 된다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요. 특히 우리 아시아지역에서. 2006년에 ‘아세안+3개국’의 첫 의장을 맡아 애착이 갑니다. 조금만 도와주면 우리나라처럼 발전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요. 그 나라 정부의 경제자문관 등으로 일하며 발전을 돕고 싶습니다. ”

친근함과 유머, 자신감까지 갖춘 신제윤 차관. 언젠가 머지않은 그날, 국제기구의 핵심 브레인으로서 멋진 스마트폰을 가진 신제윤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약력 △서울(1958년) △휘문고 △서울대 경제학과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 국제금융심의관 △대통령 국민경제비서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5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5호 마켓in은 2011년 11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44,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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