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도심서 무장간첩이 시민들에게 총을 쐈다[그해 오늘]

1984년 대구 무장간첩 침투 사건…시민 2명 사망
20대 추정 간첩…시민들에게 붙잡히자 극약 자살
피해자들, 보상 못받아…국가 소송에서도 패소
  • 등록 2022-09-24 오전 12:03:00

    수정 2022-09-24 오전 12:03: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84년 9월 24일. 오후 1시 30분께 대구의 한 식당에서 주인 전갑숙(당시 29세)씨와 여종업원 강모(당시 18세)씨가 총을 맞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외출했다 돌아온 가정부 박모씨가 경찰에 신고했고, 총상을 입은 두 사람은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그리고 25분 후 인근의 한 미용실에서 총성이 울렸다. 미용실 주인 A씨는 세 발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 A씨의 비명을 듣고 인근 제화점 주인 김모씨가 급하게 달려왔다.

1984년 9월 25일자 경향신문 기사
김씨는 A씨에게 총을 쏜 20대로 보이는 장발의 남성과 마주했다. 해당 남성은 총기를 김씨에게 겨누고 위협했다. 그리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목을 졸리던 김씨는 해당 남성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그리고 현장에 달려온 다른 주민 2명이 합세해 이 남성을 제압했다. 제압당한 남성은 곧바로 소지품으로 갖고 있던 알약을 먹었다. 청산가리였다. 이 남성은 곧바로 숨졌다.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수사기관도 경악했다. 수사기관은 숨진 남성의 신원 파악에 나섰지만 어떠한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범행에 사용한 총기는 벨기에제 브로닝 6·35구경 권총이었다. 당시 북한 대남 공작원들이 사용하던 총기였다. 총기엔 소음기가 달려있었다. 범인은 북한이 보낸 무장간첩이었던 것이다.

죽은 무장간첩은 검거 시 자살을 위해 청산가리와 함께 허리띠 버클에 자폭용 폭탄을 가지고 있었다. 또 간첩들이 사용하는 통신기기 등을 비롯해 대남 공작에 사용할 물품만 40여 점이었다.

대공기관은 이 간첩이 대남 테러공작 임무를 갖고 남한에 침투했다고 판단했다. 침투 시기와 루트는 사건이 있기 며칠 전인 9월 18~20일 사이 남해안으로 추정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식당 종업원 10대 강씨를 포섭하려 했으나, 강씨가 간첩 신분을 눈치채고 신고하려 했거나 자수를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식당 주인 전씨가 살해 장면을 목격하자 이를 죽였고, 자신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A씨도 살해하려 했다는 추정이었다.

1984년 9월 27일 동아일보 기사
3개월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전씨는 사망 당시 10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었다. 아들은 결국 할머니 임춘자씨 손에 키워졌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임씨는 정부에 보상을 탄원해봤지만 아무런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엄혹했던 시기 ‘간첩 피해자’ 가족이라는 신분조차 쉽게 드러내기 힘들었기에 임씨는 손자에게 전씨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를 비밀로 했다. 임씨는 부모님 존재에 대해 묻는 손자를 향해 손자 유년 시절엔 “미국에 살고 있다”고, 사춘기 시절엔 “아빠가 죽고 엄마도 얼마 후 단순 사고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임씨는 말기 폐암으로 투병하던 2014년 1월 서른 살이 넘은 손자 김병집씨에게 며느리인 전씨 죽음에 대해 털어놓은 후 “한을 풀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임씨는 같은 해 5월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이후 본격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진상규명에 배상을 요구했다. 국가정보원 등을 상대로 관련 기록 공개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그는 2018년 국가와 대구광역시를 상대로 5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국가의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전씨는 당시 국가보안법상 원호대상자도 아니었다. 아울러 소멸시효 5년이 지났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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