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경 "저, 사실은 새가슴이었거든요"

다승·상금 선두 달리는 국내골프 '파이널 퀸'

고2땐 우승 없이 랭킹1위 국내 적수 더이상 없을 때 LPGA 덤벼도 늦지 않아
  • 등록 2009-10-27 오전 5:52:00

    수정 2009-10-27 오전 5:52:06


[조선일보 제공] 청바지에 하얀 재킷을 입은 그가 약간 수줍은 표정으로 공원으로 걸어 들어왔다. 1m72의 시원한 외모에 굽 있는 구두까지 신은 그는 '필드의 수퍼 모델'이란 별명에서 '필드'란 말을 빼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했다.

"어제 또 우승한 것 축하해요. 2주 연속 우승이네요."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그는 연방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인사했다. 필드에서 환호하는 갤러리에게 꾸벅꾸벅 머리를 숙이는 모습과 똑같았다.

26일 오전 경기도 분당의 한 공원. 단풍이 곱게 물든 그곳에서 여자 프로골퍼 서희경(23·하이트)을 만났다. 민얼굴의 그를 단번에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팬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전날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 KB스타투어 그랜드 파이널 대회에서 우승하며 시즌 4승으로 상금 랭킹 선두에 올랐다.

■무섭게 피는 꽃

서희경을 두고 골프계에선 "늦었지만 무섭게 피는 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8월 하이원대회에서 데뷔 3년 만에 프로 첫 우승을 한 뒤, 15개월 동안 무려 국내 대회 10승을 올렸다. 국내 투어가 미국 LPGA투어 정상급 선수들이 몰려와도 쉽사리 우승컵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우승 퍼레이드다. 서희경은 올해 한국여자오픈 6타차 역전승 등 10승 중 7승을 역전으로 차지해 신지애와 마찬가지로 '파이널 퀸'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25일 우승 때도 그는 18번홀에서 성공률이 높지 않은 5m 파 퍼팅을 홀에 '쏙~' 집어넣으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심장이냐"고 물었더니, 서희경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저 얼마나 새가슴인지 몰라요"라고 했다. 서희경은 이날 공원, 식당, 연습장으로 이어진 반나절 인터뷰에서 수도 없이 "아니에요, 저는 사실은~"으로 말문을 열었다. 몸에 밴 솔직함과 겸손함이 그의 스윙만큼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가 말한 '새가슴'의 사연은 이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서희경의 골프 인생은 "실망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제가 얼마나 우승과 인연이 없었냐 하면요, 낙생고 2학년 때 1년간 한 번도 우승을 못하고도 전국 랭킹 1위에 올랐어요. 그만큼 우승 기회를 많이 놓쳤다는 얘기잖아요." 눈만 뜨면 골프채를 잡을 정도의 연습벌레였지만 중요 순간에선 터무니없는 실수로 우승 기회를 놓치는 그였다.

"그때마다 집에 돌아와 베개를 적실 정도로 울었어요.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이런 심정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없으시죠?"

서희경의 '새가슴' 증세가 사라진 것은 2008년 8월 하이원 대회에서였다. "프로 데뷔 때부터 캐디백을 멨던 아버지가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이제 네게 필요한 건 자신을 믿는 일 뿐이야'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의 그런 말씀은 처음이었어요.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기는 거 있죠." 이 대회에서 서희경은 우승했고, 딸이 3승째를 거두자 '골프 대디' 서용환씨는 캐디백을 내려놓았다. "이젠 너도 컸잖아. 지금부터는 네가 다 알아서 하는 거야."

■"LPGA 다 가면, 누가 남아요?"

서희경은 올해 하와이 SBS오픈에서 10위권, US여자오픈 컷 통과 등 미 LPGA 투어에서도 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는 "국내 골프 시장도 커지고 있는데, 다 떠나면 누가 남아서 하나요"라고 말했다. "국내무대에서 더는 도전할 게 없을 때 LPGA에 도전해도 늦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연습장에서 골프웨어로 갈아입더니 서희경은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입은 재킷 지난해 엄마가 옷 없다고 사주신 건데, 오늘 세 번째 입어봤어요. 연습장과 대회장만 다니니까 골프 옷 외에는 옷이 거의 없어요." 그녀는 올해 상금만 6억원 가깝게 받았지만, 자신의 승용차도 없고, 현금도 거의 갖고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서희경은 "앞으로 10년간 열심히 골프하고, 그 뒤엔 시집가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더니, "근데 저를 누가 데려가겠어요?"하고 웃었다.

연습장에서 58도 웨지를 꺼내 든 그녀가 부드럽게 스윙을 하자 스핀을 먹은 공은 바닥에 떨어진 뒤 곧바로 섰다. 마치 공을 손으로 가볍게 던지며 장난을 하는 듯했다.

'국내 정상' 서희경은 30일부터 인천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리는 미 LPGA투어 하나은행·코오롱 대회에서 신지애, 로레나 오초아 등 '국외 정상'들과 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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