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에 데뷔, 21세에 베니스 여왕…강수연이 곧 한국영화였다

배우 강수연이 걸어온 길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과감한 연기 도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맡아 헌신
10년 만에 복귀 '정이' 유작으로
  • 등록 2022-05-09 오전 12:30:00

    수정 2022-05-09 오전 8:15:55

고 강수연(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한국영화가 세계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에 한국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고, 한국영화에 그 이상의 무엇이 담겨 있음을 몸소 보여줬던 배우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55세를 일기로 지난 7일 타계한 배우 강수연에 대해 이 같이 평했다. 한국 영화사에서 고인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대변했다.

‘한국 영화계의 대모’, ‘한국 영화의 페르소나’. 고 강수연에게 붙어 있던 수식어들이다. 고인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로 이 같은 수식어들이 부족함이 없었다.

고인은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1987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 한국배우 최초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라는 역사를 쓴 주인공이었다. 배우로서뿐 아니라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 행정가로서도 영화계의 부흥 및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청춘스타, 월드스타로 떠올랐던 고인은 한국영화의 성장과 함께했다. 뛰어난 배우를 넘어 전 세계에 한국영화를 알린 스타였고, 강력한 리더이자 영화인의 롤모델이었다.

3세였던 1969년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연기를 시작한 고인은 TBC 전속배우로 ‘똘똘이의 모험’(1971) ‘별 3형제’(1977)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 아역스타로 입지를 다졌다. ‘고래사냥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등에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역할에 따라 다양하게 자신의 색깔을 바꿀 줄 아는 팔색조였고 이를 통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배우였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의 발랄한 여대생, ‘됴화’(1987)의 한 많은 여인, ‘연산군’(1987)의 요부 장녹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의 잡초 같은 접대부, ‘감자’(1987)의 가난한 농촌 아낙, ‘씨받이’의 남자들에 의해 운명이 휘둘리는 가냘픈 여인네 등 장르에 관계없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이데일리에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십수년간 그녀 없는 한국 영화계는 상상할 수 없다. 그의 출연작은 한국영화와 사회의 변화를 반영했다”며 “한국영화 100년의 최고 여배우로 평할 수 있는 최은희나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칭해졌던 김지미에 견줄 만한 배우였다”고 평했다.

1989년, 베니스영화제 수상에 이어 임권택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대한민국 첫 월드스타의 탄생이었다.

고인은 이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장미의 나날’(1994)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송어’(1999) 등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에 두루 출연하며 대표작들을 남겼다. 각 영화들은 그 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작품들로 이름을 올렸다. 그 만큼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이 뛰어났고 그의 연기에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2001년에는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여인천하’는 2001년 초부터 2002년 중반까지 무려 1년 반 이상 방송된 SBS의 대표 대하사극이다. 기획 및 방영 초기에는 50부작으로 편성됐으나 전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150부작으로 종영했다. ‘여인천하’는 당시 최고 시청률 35.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강수연은 이 드라마를 통해 연기 경력 최초로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고인은 꾸준히 연기활동을 이어왔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작품의 완성도에 기여를 했다. ‘달빛 길어 올리기’(2011), 단편 ‘주리’(2013)에서 주연을 맡았고 ‘한반도’(2006), ‘영화판’(2012)에서는 조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촬영 현장에서는 스태프와 무명 배우들까지 챙기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유명했다. ‘한반도’로 고인과 함께 작업한 강우석 감독은 “단 한 컷만으로 사람을 확 휘어잡는 놀라운 배우였고 좋은 사람이었다”며 “어려운 후배를 만나면 베풀 줄 알고 인기가 있든 없든, 친분이 있든 없든 격의 없이 대했다, 그에 대한 나쁜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고 회고했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015)에 나오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가 없냐”는 명대사는 평소 술자리에서 힘든 후배들을 다독이며 했던 고인의 말에서 나왔다. 고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인은 미국의 통상압력에 맞서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을 맡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으로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가 논란에 휩싸이자 공동집행위원장으로 나섰다. 2017년까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를 위해 헌신했다.

올해 그는 넷플릭스 영화 ‘정이’로 상업영화로는 10년 만에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정이’는 영화 ‘부산행’(2016)과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 등으로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높인 연상호 감독의 새 영화다. 기후변화로 더 이상 지구에서 살기 힘들어진 인류가 만든 피난처 쉘터에서 일어나는 내전을 그린다. 강수연은 극중 연합군 측 최정예 리더 출신으로 내전을 해결할 ‘전설의 용병’ 전투 로봇 정이의 뇌복제를 책임지는 연구소 팀장 서현 역으로 출연했다. K-콘텐츠 열풍과 원조 월드스타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 관심이 쏠렸던 ‘정이’는 강수연의 유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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