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손가락도 길이 다르지만 제 역할 있다”

“야구만을 위해 살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것”
  • 등록 2008-11-11 오전 8:02:32

    수정 2008-11-11 오전 8:02:37

▲ 김성근 SK 감독은 야구 없는 인생은 상상하지 못한다. 김 감독은 “50년 동안 야구만을 위해 살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닷컴 제공] ‘야구의 신’. 야구를 업으로 사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명예로운 호칭은 없을 것 같다. 이 ‘야신(野神)’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이 김성근 SK 감독(66)이다. 김응룡 전 삼성 감독이 매번 약체팀을 맡아 전력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김 감독을 보고 “야구의 신 같다”고 한 뒤부터 야신은 김 감독의 별명이 돼버렸다. 김 감독은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투수 교체와 신기할 정도로 맞아떨어진 수비 시프트로 SK를 2연승으로 이끌며 ‘야신’다운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SK를 맡은 지 2년 만에 무적의 팀으로 변화시킨 ‘김성근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의 달콤함을 뒤로 하고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위해 선수들을 독려하는 그를 보면 ‘도전은 끝이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진행됐고, 김 감독은 9일 일본으로 떠났다.

-팬들도 그렇고, 언론에서도 김 감독을 야신이라고 부르는데요. 혹시 부담스럽진 않으신지요.

“당연히 부담되죠. 어느 기준을 가지고 그런 별명을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이라면 내가 그렇게 게임에 지겠어요. 당장 한국시리즈에서도 실수를 너무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별명이 틀린 거 아닌가요.”

별명 ‘잠자리 눈깔’ 마음에 들어

-그럼 좋아하시는 별명이 있나요.

“선수들이 붙여준 ‘잠자리 눈깔’이 마음에 듭니다. 잠자리 눈이 360도 돌아가잖아요. 시야도 넓고, 선수들이 앞에만 보는 것 같은데 뒤도 보고, 모든 것을 본다는 뜻에서 잠자리 눈깔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어요(웃음). 어찌보면 그것이 리더가 아닌가 합니다. 눈은 3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물체를 보는 눈이 있고, 관찰하는 눈, 마지막으로 속으로 파고드는 눈이 있어요. 감독은 그런 3가지 눈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선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두를 볼 수 있어야 팀을 이끌 수 있습니다.”

-선수들은 김 감독이 야구말고 다른 생각을 안 한다는 말까지 하는데요. 야구란 무엇입니까.

“거꾸로 말하면 야구밖에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죠. 정말 그래요. 야구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기억력이 안 좋아서 자꾸 잊어버려요. 그래서 메모를 자주하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야구에 모든 걸 걸고 삽니다. 한시라도 손(야구)을 놓으면 머릿속에서 사라질 때가 있어요. 어찌보면 야구가 있기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로서는 (야구가) 생명원이에요.”

-한국시리즈 1차전 패배 후 집착을 버렸다고 했는데요.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지난해에는 ‘꿈을 현실’로라는 목표를 세웠고 달성했어요. 올해의 목표는 ‘일보후퇴 이보전진’였습니다. 정규시즌에서는 그 목표를 달성했는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지면서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1차전에 진 뒤 쓰던 노트를 새 것으로 바꿨습니다. 그 노트를 계속 쓰면 또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2차전 때는 새 노트에 ‘판단·결단·승리’라고 적어놨습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1차전에 미적미적하다가 졌기 때문입니다. 2차전부터는 투수교체가 빨라졌는데 1차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였습니다.”

이겼을 때의 유니폼 계속 입어

-유독 징크스가 많다고 하던데요.

“문학구장의 더그아웃과 그라운드 사이에 계단이 3개 있잖아요. 왼쪽으로 나가서 이겼다면 그쪽으로만 다닙니다. 지면 반대죠. 잠실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에서 오른쪽 발로 첫 계단을 밟아서 이겼는데 이번 시리즈에서도 꼭 오른발로 첫 계단을 밟고 2단씩 건너뛰어 올랐습니다. 물론 계속 이겨서 한 번도 바꾸지 않았지요. 유니폼도 이겼을 때 유니폼을 계속 입습니다. 그런데 징크스도 변하는가 봐요. 예전에는 경기 전에 아무리 높은 사람이 와도 모자를 절대 벗지 않았어요. 모자를 벗으면 그날은 꼭 졌기 때문이죠. 아마도 사람들이 건방진 놈이라고 했을 겁니다. 요즘은 경기 전에 모자를 자주 벗어요. 언제부터인가 그 징크스에서 탈출한 것 같습니다.”

-‘강한 팀으로 완성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은 있습니까.

“지난해 가을에는 1군과 2군의 격차(실력)를 없애려고 했어요. 올해는 3군을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군은 2군하고 실력이 비슷해야 합니다. 3군은 육성팀 개념이죠. 이 같은 문제는 무엇보다도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도전이라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아름답지 않나요. 안 되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시행착오가 나오면 또 새롭게 시도해야죠. 그러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안 된다고 하면 해결책이 없고, 미래도, 발전도 없어요.”

-리더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리더는 자기 뜻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언제든지 쟁취하고, 달성해야 합니다. 타협하지 말고 인내가 있어야 해요. 의욕 속에 위기관리 능력이 키워집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리더는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게임에 지면 오장육부가 뒤틀리지만, 감독의 얼굴에 변화가 있으면 안 됩니다. 얼굴표정을 남에게 읽히면 이미 경기도 하기 전에 패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손가락을 보세요. 길이가 다 다르지만 손가락 하나하나 다 역할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프로 지명받을 정도라면 재능과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그런 재능과 자질을 살려주고 개발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FA, 우리나라 실정에는 안맞아

-‘단장 회의를 없애야 한다’는 등 야구행정에 쓴소리도 많이 하셨는데.

“현실에 맞게 운영·결정하라는 말이 와전된 듯합니다. 올해 ‘끝장 승부’ 제도를 도입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과입니다. 이미 폐단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해외 마무리훈련 금지도 문제입니다. 국내에 대체할 장소가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어야 합니다.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은 곤란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야구의 발전이 없습니다. 프로야구의 관중이 500만명을 넘었습니다. 팬들이 김성근 야구, SK 야구를 보러 온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김)광현이나, 최정입니다. 그들이 진짜 스타죠. 그들이 내년 시즌을 위해 몸을 만들고,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데 해외 마무리훈련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FA 제도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FA 후 성적이 안 좋은 선수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 이유를 연구해야 합니다.”

-재일동포로서 한국에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았지요.

“50년간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아요. 학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게는 한국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역경 속에서 얼마만큼 강해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에게도 ‘찬밥을 잘 먹는 사람이 출세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려울 때 흐지부지하면 정말 살지 못합니다. 사막에 갔다고 생각해보세요. ‘물이 없다’ ‘뭐가 없다’는 식으로 투덜대면 죽는 수밖에 없죠. 일본에 있었으면 이렇게 강해졌겠나 생각합니다. 술이나 마시고 TV 보고 이미 죽었을 겁니다.”

아시아시리즈 우승 확률은 반반

-지난해 정근우에 이어 올해 채병용 선수의 결혼 주례도 맡았는데 무슨 얘기를 하십니까.

“같은 얘기를 하면 안 되겠죠. 그때마다 바꿉니다. 단 부부가 된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주문은 빼놓지 않습니다.”

-평소 운동과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하루에 2시간씩 운동합니다. 웨이트하고 체조도 해요. 야구감독이 벤치에 앉아서 머리만 쓰면 되는데 큰 운동할 것 없지 않나요(웃음). 검은 콩과 인삼·홍삼을 많이 먹어요.”

-아시아시리즈 우승이 목표라고 하셨는데.

“역시 빠른 발이 관건일 겁니다. 야구는 스피드게임입니다. 한국은 그것이 강점이 아닌가 싶어요. 솔직히 우승할 확률은 반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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