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직장까지 잃게 했던 과외…8년만에 허용되다[그해 오늘]

1989년 2월, 대학생 과외 전면 허용…일반인은 금지
신군부, 쿠데타 이후 인기영합주의 차원서 과외 막아
1991년 학원마저 전면 허용…2000년 과외금지 '위헌'
  • 등록 2023-02-02 오전 12:02:30

    수정 2023-02-02 오전 12:02:3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89년 2월 2일, 정부가 대학생 과외를 전면 허용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탈취한 이후인 1980년 7월 30일 전면적인 과외 금지를 내건 지 8년 7개월 만이었다.

문교부(현 교육부)는 이날 과외금지조치 완화방안으로 이 같은 대학생 과외를 전면적으로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정부 내부에선 ‘방학 중 허용’을 고심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전면 허용으로 변경됐다. 다만 입시학원의 경우는 여전히 재학생들에겐 방학에 한해서만 허용됐다.

1998년 9월 서울시내 인문계 고교 교무부장둘이 서울시교육청 강당에서 불법 고액과외 추방을 위한 자정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현재와 같은 학원이 아닌 과외 중심이었다. 높은 교육열 때문에, 1950년대부터 과외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과거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시험을 보고 들어갔기에, 치열한 입시 전쟁 속에서 과외 등 사교육에 대한 수요도 매우 높았다.

현재와 같이 대학교 재수에 그치지 않고 명문 중·고교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를 하는 학생들도 많았기에 이들을 위한 사교육 시장도 점차 커지게 됐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대한 순차적인 평준화가 실시됐지만, 사교육 열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국민들의 소득 수준도 높아지며 사교육 수요는 나날이 높아졌다. 현직교사들이 불법적으로 과외를 하다 적발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도 했다.

자녀 과외시켰다가 공직자 139명 쫓겨나

전두환 신군부는 권력을 탈취한 직후 인기영합주의 차원에서 과외를 전면 금지시켰다. 학원의 경우도 졸업생이나 독학생에 대해서만 전면 허용됐고, 중고교 재학생의 경우 방학에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과외를 하다 적발되면 부모 신상이 공개되는 것은 물론, 공무원을 포함해 일반 사기업에서도 면직되는 등 강력한 처벌을 내리도록 했다. 단속을 위해 내부부(현 행정안전부)와 국세청 등이 포함된 합동단속반을 대규모로 꾸리기도 했다.

실제 신군부는 과외금지 정책을 실시한 직후 대규모 단속을 실시해 그해 11월 과외를 받은 중·고생 96명을 적발해 이들 중 47명에 대해 무기정학을 시키고, 이들 부모는 24명에 대해선 직장에서 해고했다. 과외 교사들은 재판에 넘겨져 처벌을 받았다. 1987년 말까지 과외로 적발된 인원은 약 2500명, 이중 10%가량이 형사입건됐고, 직장에서 쫓겨난 공직자만 139명에 달했다.

이처럼 제도 시행 초기, 신군부는 경찰을 중심으로 ‘과외 소탕’에 나섰다. 신군부는 정기적으로 과외 단속 실적을 발표하며 근절 의지를 드러내는 등 강력한 단속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과외 금지는 점점 더 유명무실해지고 있었다. 신군부가 사교육을 대체하겠다며 교육방송을 개국했지만 사교육 수요는 여전했다. 암암리에 비밀과외는 성행하고 있었고, 오히려 과외비에는 적발을 고려한 ‘위험수당’까지 포함되며 과외비가 더 오르게 됐다.

지난해 1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 개인과외 광고 전단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도 1984년 9월 정부의 획일적 과외 단속에 제도를 거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불법 과외 교습’은 일정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교습하는 행위만 해당하고, 지인 집에서 지인 자녀에게 반복성 없이 공부를 가르친 대학원생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헌재 “과외금지는 자녀교육권, 직원선택자유 침해”

그 후 1987년 6.10 항쟁 등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며 전두환 신군부의 퇴장을 앞둔 시기, ‘과외를 다시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부턴 정부의 사실상 과외 단속도 사라지며 비밀과외는 더욱 활성화됐고, 결국 정부도 사회적 분위기를 따랐다.

1989년 정부의 발표 내용은 대학생에 한해서만 과외를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엔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던 대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학생이 아닌 일반인의 과외는 물론, 대학생이 전문적으로 하는 과외 역시 금지했다. 중·고교 재학생들의 학원도 여전히 불법이었다.

정부는 이후에도 대학생 과외가 아닌 불법과외에 대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일반인 과외가 횡행했지만, 법에선 여전히 일반인 과외를 엄격 금지했고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 과외만 허용되자, 결국 높은 과외비를 충당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사교육 격차는 커지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불만도 함께 커졌다. 결국 정부는 1991년 7월 초·중·고교 재학생의 학원 수강을 전면 허용했다.

문민정부였던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대학생 한정을 넘어 ‘과외 전면 허용’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여론의 반발에 밀려 결국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헌법재판소가 2000년 4월 ‘과외금지’ 조항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국민의 자녀교육권,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결정하며 ‘과외 금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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