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시선] LG-한신, 그들은 왜 ‘恨풀이 야구’를 해야 했나

  • 등록 2023-11-18 오전 9:32:33

    수정 2023-11-18 오전 9:32:33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룬 LG트윈스. 사진=연합뉴스
38년 만에 일본 프로야구 정상에 오른 한신 타이거스. 사진=AP PHOTO
창단 62년 만에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룬 텍사스 레인저스. 사진=AP PHOTO
[안준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2023년은 ‘한(恨)풀이 야구의 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한국 KBO리그는 물론이고, 미국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에 대만 프로야구까지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던 팀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한풀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LG트윈스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t위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6-2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정상에 올랐다. 정규리그 우승에 이은 통합 우승이다. 무엇보다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이룬 우승이라 여러 뒷얘기를 남겼다. 1990년, 1994년에 이은 세 번째 정상 등극이기도 했다. 故(고) 구본무 구단주가 세 번째 우승 때 축배를 들자고 사온 아와모리 소주와 한국시리즈 MVP 선물인 롤렉스 시계가 30년 가까운 세월 만에 봉인해제 돼 화제가 됐다.

한풀이의 시작은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지난 1961년 워싱턴 세너터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해 빅리그에 뛰어든 텍사스는 그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10~2011년에는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결국, 창단 62년 만인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꺾고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가 일본시리즈에서 오릭스 버펄로스와 최종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끝에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5년 첫 일본시리즈 우승 이후 38년 만에 거둔 두 번째 우승이다. 대만은 웨이취안 드래곤즈가 1999년 이후 24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웨이취안은 1999년 우승 이후 해체됐다가 20년 만인 2019년 재창단해 4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다른 국가 리그의 우승팀들의 한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들 구단은 ‘오랜 기간 우승을 하지 못했다’라는 공통점 외에도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아시아 지역이라는 공통 문화권이라는 점 외에도 10개 팀과 12개 팀으로 숫자 면에서 엇비슷한 한국 프로야구와 일본 프로야구의 LG와 한신은 ‘한을 품게 되는 과정’이 닮아있다.

한신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일본 프로야구 인기팀으로 꼽힌다. 일본 프로야구 평균 관중 1위를 자주 하는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홈구장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聖地) 고시엔(甲子園)구장이다. 간사이 지역(정확히 오사카 옆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을 연고로 하며, 도쿄를 연고로 한 요미우리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다. 하지만 성적은 요미우리와 큰 차이가 있다. 요미우리는 38차례의 센트럴리그 우승, 일본시리즈는 22회로 최다 우승 기록 보유 팀이다. 반면, 한신은 앞서 언급했지만, 일본시리즈는 올해 포함 2차례, 센트럴리그 우승은 올해까지 포함해 6차례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열정적인 한신팬들이 유명하다. 물론 좋게 보면 열성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극성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극성팬들 때문에 한신을 기피하는 선수들이 있다는 말도 있었다. 잘하면 영웅 취급을 해주다가, 조금이라도 부진에 빠지면 역적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인기팀이다 보니, 팀 성적이 좋지 않아도 선수들은 스타 대접을 받는다. 또 한신은 순혈주의 성향은 강해서 한신에서만 선수 생활을 마친 프랜차이즈 스타가 많다. 이들은 흔히 OB(Old Boy)로 불리며 구단에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감독직을 번갈아 차지해왔다. 팀 내 파벌 다툼 및 정치 구도의 변화에 따라 한 번 물러난 감독들이 폭탄 돌리기 식으로 앉고 또 앉고 해서 한 감독의 임기가 1차, 2차로 나뉘는 건 비일비재했다.

결국, 1990년대를 암흑기로 보낸 한신은 한신에서 선수 생활을 하지 않은 노무라 카츠야 감독을 영입하며 변화를 예고한데 이어 역시 주니치 드래건스 원클럽맨 이미지가 강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을 곧바로 영입하며 2003년, 18년 만에 센트럴리그를 우승했다.

인기에 비해 성적이 나지 않아서 선수 스카우트(일본에서는 보통 편성이라 함)나 선수 육성보다는 고액 외부 FA(프리에이전트)나 이름값 있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LG에 그대로 대입하면 대부분 결과가 비슷하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인기팀이자,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관중동원능력을 갖춘 팀 중 하나이다. LG팬들의 열정도 유명하다. 인기 선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LG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는 ‘암흑기’를 거쳤다. LG가 고액 FA로 영입한 선수들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아 ‘먹튀’라는 이미지가 짙게 드리우기도 했다. 또, LG를 떠난 선수들이 펄펄 날아다녀 ‘탈LG효과’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열성팬들 앞에서 잘하면 영웅으로 대접받다가 못하면 역적이 되는 일도 빈번했다. 감독들은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암흑기 탈출을 위해 선수 육성보다는 즉시 전력감 영입에 집중하다가 낭패를 보는 패턴이 반복됐다.

LG와 한신은 지속적인 강팀이 될 토양을 지니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한’만 굽이굽이 쌓이고 있었다. 결국, 두 팀은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택했다. 외부 영입에만 집중했던 한신은 7~8년전부터 신인 드래프트에서 목적 의식과 육성 철학을 바탕으로 지명을 했고, 결실을 맺었다. 올해 일본시리즈 MVP인 치카모토 고지, 일본시리즈 1차전 승리투수인 무라카미 쇼키, 올해는 부진했지만 최근 수년 간 에이스로 성장한 사이드암 아오야기 코요, 내야 센터라인의 핵으로 성장한 키나미 세이야, 전경기를 4번타자 1루수로 출전한 오야마 유스케 등이 이 기간 동안 뽑혀 팀의 중심으로 성장한 선수들이다.

LG도 2군을 구리에서 이천으로 최신식 시설로 새로 지어 이전한 뒤 내부 육성에 신경 썼다. 신인 드래프트도 전략을 가지고 접근했다. 홍창기, 고우석, 정우영, 문성주, 문보경 등이 이천 시대 이후 지명을 받아 팀의 핵심으로 발돋움한 이들이다. 물론 적절한 외부 영입도 이뤄졌다. 2017년말 메이저리그에서 유턴해 LG에 합류한 김현수는 모래알 같던 LG의 팀 문화를 바꾼 장본인라는 평가가 많다. 암흑기 끝자락에 입단해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한 오지환, 임찬규 등의 성장과도 맞물렸다.

결국, 새로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챔피언 자리를 노린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무너진 체계를 세움과 동시에 한풀이도 가능했다고 할 수 있겠다. 지속적인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는 체계, 시스템 구축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이는 LG와 한신 사례를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시스템을 다시 세우기보다는 인기에 취해있으면서 약팀에 머물러 있었다. 시스템, 체계를 등한시한 것이었다. 현실을 안일하게 본 결과였고, 정상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이기도 했다.

야구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야구 외의 종목, 전체 스포츠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스포츠에서 나아가도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시스템, 체계가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질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앞에 닥칠 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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