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상태서 LCD 수술로 회생…백남준 '다다익선' 깨우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하이라이트
국립현대미술관 30년 지킨 18.5m '다다익선'
모니터 1003대 중 268대, 브라운관서 LCD로
'멈춤' 4년 만 수리·복원 거쳐 시험운전 돌입
국현·백남준아트센터·서울시립미술관 등
거장 예술혼 재조명…1년 내내 특별전 축제
  • 등록 2022-02-08 오전 3:30:00

    수정 2022-02-08 오전 9:36:42

불이 완전히 꺼지기 직전인 2018년의 ‘다다익선’(왼쪽)과 불이 다시 켜진 2022년의 ‘다다익선’. 4년 전 ‘누전에 따른 화재·폭발 위험’이란 진단을 받고 전면 상영중단한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이 올해 하반기 재가동을 목표로 수리·복원을 마무리하는 시험운전 중이다(사진=이데일리DB·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설마 갈아 끼울 브라운관 모니터는 있겠지?” “몇개 없다고? 그럼 어찌 복원할 건데?” “삼성이 수백대 제공했다며. 더 내달라고 해봐. 만들어달라든지.” “LED·LCD, 요즘 좋은 거 많잖아. 수명도 길다는데 이참에 싹 바꾸자.” “그렇게 복원하곤 원작이라 하겠어? 작가 의도는 무시하는 거야?” “원형대로 브라운관? 그게 좋은 걸 누가 모르나. 그러다 또 고장 나면 그땐 어쩔 건데?” “다 시끄럽고. 차라리 장렬히 전사시키자. 그것도 의미가 있어.”

높이 18.5m, 기단부 지름 11m의 계단식 원형 총 8단 영상탑을 차곡차곡 타고 오른 텔레비전 브라운관. 하늘이 열린 날(개천절·10월 3일)에서 따왔다는 1003대의 ‘배가 불룩한’ 모니터의 집합체. 1986년 제작에 들어가 1988년 완성·설치한 뒤 30여년 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지켜온 무게 16t의 거대한 상징.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의 ‘다다익선’ 얘기다. 그 16t의 존재감이 어느 날 난상토론의 테마로 산산이 부서질 거라곤, 시대를 앞선 선구자 백남준이라도 짐작이나 했겠나. 그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느냐고 했더랬다. ‘다다익선’이라고. 그런데 너무 많았던 건가. ‘과유불급’이 돼버렸으니 말이다. 몸에 붙인 모니터만 많은 줄 알았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백남준의 ‘다다익선’. 2015년 브라운관 모니터 320대를 갈아 끼우는 대대적인 보수작업 직후의 모습이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설치 14년께 이상신호가 잡혔다. 껌벅껌벅하던 모니터를 중고로 갈아 끼우며 버텼지만 결국 하나둘 멈추더니 급기야 ‘누전에 따른 화재·폭발 위험’ 진단까지 내려졌다. 그러니 어쩌겠나. 스위치를 내릴 수밖에. 2018년 2월의 일이다. 회복도 불가능하고 수술도 어려운 ‘뇌사상태’로 들어선 거다. 무늬만 비디오아트로.

결국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단 판단이 뒤늦게 내려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는 수리·복원에 들어가 3년 내 회생시켜 보겠다”고 선언한 거다. 스위치 오프 이후 1년 7개월 만인 2019년 9월이다. 하지만 그 일이 수월하겠나. 그랬다면 진작에 해결했겠지. 당장 수리·복원을 앞두고 벌어진 화려한 갑론을박은 바로 그때의 일이다.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아무나 한마디씩’인 듯하지만 그 안에 심란한 우려부터 포기가 안 되는 기대까지 다 들었던 거다.

1987년의 백남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다다익선’ 설치를 구상하던 때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결국 1003대 중 268대, 브라운관 모니터서 LCD로 교체

그 ‘다다익선’에 다시 불이 켜졌다. ‘뇌사’ 판정 4년 만이고, 30억원 예산을 뽑아 대대적 수리·복원에 착수한 지 2년 5개월여 만이다. 완전한 부활은 아직 아니다. 숨이 돌아온 것은 확인했고 ‘길게’ 활동하는 데 무리가 없는지 살펴보는 단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2주간 하루에 2시간씩 시험운전을 끝냈고, 7일부터 18일까지는 4시간으로 늘린다”고 전했다. 이후 21일부터 내달 4일까지 6시간, 이어 7일부터 18일까지 8시간을 가동해보면서 1차 점검 완료. 앞으로 이런 시험운전을 2차례 더 진행한단다.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작품 중 최대 규모.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제작했으며 6인치 60대, 10인치 552대, 14인치 93대, 20인치 103대, 25인치 195대 등 1003대의 모니터를 비디오탑처럼 쌓은 구조다. 그러나 태생적 한계를 품었으니 ‘브라운관 모니터의 수명’. 전문가들은 10년 남짓이라 말했더랬다. 그럼에도 지난 30년간 중고를 찾아 땜질하는 식으로 억지수명을 연장해왔던 거다. 번번이 마지막이란 경고가 붙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불 켜진 1988년의 ‘다다익선’(왼쪽)과 불 꺼진 2013년의 ‘다다익선’.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설치된 이후 30년을 ‘버텨온’ 백남준의 ‘다다익선’의 역사는 수없이 멈춰 선 브라운관 모니터와 씨름해온 수리·복원사이기도 하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이데일리DB).


‘다다익선’의 노후화 문제는 2002년 본격화했다. 화재가 나 가동을 중단하고 이듬해인 2003년 설치 15년 만에 모니터를 전면교체하며 상황을 무마했다. 반응 없는 모니터가 50%를 넘겼던 터. 처음 설치 때 모니터를 전량 지원했던 삼성전자가 470대를 내놓고, 부품을 구하러 청계천 황학시장부터 아프리카까지 헤집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검정 브라운관을 은회색으로 바꾼 것도 그때다. 당시는 백남준이 타계하기 전이라 협의가 수월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멀쩡했나. 그렇지 않다. 2010년 244대, 2012년 79대, 2013년 100대, 2014년 98대를 수리하고 교체하는 작업은 계속됐다. 그러다가 2015년 3분의 1이 또 멈춰 섰고 320대를 갈아 끼워야만 했다. LED·LCD 얘기가 스멀스멀 삐져나왔지만, 이때는 백남준이 작고한 뒤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2018년 2월, 결국 ‘완전 멈춤’에까지 이른 거다. 상단부에서 누전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한 직후였다.

불안한 보존·복원이지만 ‘백남준 90주년’ 축제는 축제

그렇다면 이번 수리·복원은 어떻게 진행했을까. 결국 LCD란 칼을 들이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003대 중 손상된 브라운관 모니터 735대를 수리했고, 상단의 6인치 10인치 중 268대를 평면디스플레이(LCD)로 제작·교체했다”고 했다. 모니터의 27%를 ‘불룩이’에서 ‘납작이’로 바꿨다는 뜻이다. 2년 5개월 전 “200년, 300년이 지나도 작품의 시대성을 유지하는 게 미술관의 임무”라며 “원형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했던, 자못 비장했던 의지도 ‘바닥난’ 중고모니터 앞에선 꺾어야 했던 거다.

시험운전 중인 2022년의 ‘다다익선’. 2020년 9월부터 시작한 대대적인 수리·복원의 마무리 점검단계다. 1003대 모니터 중 735대 브라운관 모니터를 수리하고 268대를 LCD로 제작·교체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올해는 백남준이 태어난 지 90주년. ‘다다익선’은 그 마중물이 됐다. 시험운전으로 운을 뗐고 하반기 재가동으로 야무지게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비록 남은 735대 브라운관 모니터를 안고 가는 불안한 새출발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 맞춰 국립현대미술관은 두 전시를 계획했다. 6∼11월 ‘백남준 아카이브’ 전이 하나. ‘다다익선’ 설치부터 보존·복원의 역사를, 오마주한 현대작가들과 함께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11월부터는 ‘백남준 효과’ 전이다. 이때쯤 온전히 불 밝힐 ‘다다익선’을 계기로 1990년대 중·후반 활동한 ‘백남준 후예’들의 활약을 꺼내놓는다.

한 해 내내 축제같은 특별전을 이어가는 곳은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다. 백남준이 발표한 음반 타이틀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1977)를 아예 선언으로 내걸었다. 포문은 내달 3일부터 6개월간 이어갈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 전이 연다. 백남준 예술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10가지 순간을 2000년대 대표작 중심으로 되짚어간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칭기즈칸의 복권’(1993)도 나온다.

백남준의 ‘칭기즈칸의 복권’(1993). ‘백남준 탄생 90주년’인 올해 백남준아트센터가 한 해 내내 이어갈 특별전 중 내달 3일부터 여는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 전에 나온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이다(사진=백남준아트센터).


‘완벽한 최후의 1초: 백남준 교향곡 제2번’(3. 24∼6. 19) 전은 백남준의 예술적 시원을 더듬는다는 의의가 있다. 백남준이 작곡한 두 번째 교향곡인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1961)을 국내 최초로 시연한다. 그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연주되지 못한 곡이란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백남준아트센터와 손을 잡고 11월 서소문본관에 띄우는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전: 서울랩소디’도 있다. 백남준의 글쓰기와 미디어작품을 통해 그이가 가진 예술의 시적 속성을 들여다보겠다는 특별한 테마를 정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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