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민원 접수 메일 주소의 아이디는 ‘호소’(hoso)다. 누구나 무엇이든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호소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인권위는 침해된 인권 구제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터다.
지난해 기준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만 1만 건이 넘는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의 진정 사건 진상을 파악하고 인권침해 여부를 가리는 건 조사관 몫이다.
책은 2002년부터 인권위 조사관으로 일해온 저자가 그동안 만난 진정인들의 사연에 귀기울인 호소의 기록이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배움이 짧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라서, 장애인이라서, 비정규직이라서. 다양한 무늬의 억울한 사연과 사건 너머의 이야기를 적었다.
저자에 따르면 어떤 사연은 정말이지 별거 아닌 것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시골집 호박넝쿨이 이웃의 담장을 넘으면서 시작된 분쟁이 급기야 무고죄로 인한 구속이라는 결말로 마무리된 적도 있다. 잘못된 법 때문에 아이들이 사채 빚을 유산으로 물려받아야 했고, 가게에서 통조림 두 개를 훔쳤다는 이유로 1년 넘게 감옥살이한 예도 보았다며 법의 한계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억울함이 억울함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면서 억울한 일은 당할 때도 차별적이지만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차별이 일어난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저자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법과 제도는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무능할 때가 많다”며 “법과 제도를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누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해내느냐가 중요하다. 인권의 마음이야말로 법의 그물이 구제하지 못하는 억울함이 기댈 곳인 것 같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대성당·문학동네 2014)에 나오는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한다. “(이 소설에는) 뜻밖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낯선 빵집 주인이 내준 롤빵 몇 개에 깊은 위로를 받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부가 아들을 잃었다는 말에 빵집 주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써 부부를 위로한다. (중략) 내가 소개하는 이야기가 빵집 주인이 건넨 따끈한 롤빵 하나만큼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 알파벳 이니셜을 사용했고, 성별, 장소, 시간 등은 사실 관계가 왜곡되지 않는 선에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