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범 최초의 무기징역 '대도' 조세형, 대낮 탈주극[그해 오늘]

1983년 4월 14일, 구치감서 '손목 통증' 호소 후 수갑 느슨해진 틈타 탈주
탈주 6일째 서울 시내서 추격전·인질극 끝에 경찰 권총 맞고 검거
1998년 출소 후 목사 변신 새 삶...2001년 다시 범죄자의 길로
'의적'으로 미화되던 조 씨, 말년엔 '좀도둑'으로 전락
  • 등록 2023-04-14 오전 12:03:00

    수정 2023-05-25 오후 11:06:31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기업형 절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1970년~1980년대 ‘대도(大盜)’라는 별명으로 유명세를 치른 조세형은 한때 대낮 탈주극을 벌이며 경찰 등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조세형 씨가 지난 2013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빈집에 몰래 침입해 금품 등을 훔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뉴스1.
1983년 4월 재판 후 대기 중이던 구치감 환풍기 뜯고 탈출

때는 1983년 4월 14일. 검찰은 서울형사지법에서 열린 조세형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사건 결심공판에서 그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다. 절도범에 대한 구형으로는 이례적인 것으로 이는 절도범에 대한 최초의 무기징역 구형이기도 했다. 이때 당시 이미 조세형은 상습특수절도 전과만 11범으로, 1982년 7월부터 10월까지 고위공직자 및 기업체 사장 등 부유층 집만을 대상으로 5억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무기징역에 보호감호 10년이 구형됐다.

이날 재판을 마치고 조 씨는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법정에서 20m 가량 떨어진 서울구치소 피고인 대기 구치감에 입감됐다. 조 씨는 입감 직후인 오후 3시 25분께 자신이 입감된 3층의 담당 교도관이 2층에 내려가 다른 교도관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구치감 문을 발로 차고 복도로 나가 한쪽 수갑을 푼 조 씨는 포승줄도 풀었다. 그는 포승줄을 복도 책상 위에 버리고 한쪽 손에 수갑을 찬 채 구치감 벽의 환풍기(40x40cm)를 뜯어내고 40cm 가량 떨어진 송치 피의자 구치감 2층 옥상으로 뛰어내렸다. 이곳에서 미리 준비해 둔 사복으로 환복 후 1.2m쯤 아래인 법원 구내매점 옥상으로 다시 뛰어내리고 이웃 한일병원 담을 넘어 서울 시내로 잠입했다.

탈주 전 조 씨는 형사 법정 대기실에서 교도관에게 손목 통증을 호소했고, 이에 교도관이 수갑을 느슨하게 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조 씨가 구치감에서 손목을 비틀어 왼손을 빼내고 포승줄을 풀 수 있었던 이유다.

조 씨는 한쪽 손목에 수갑을 매단 채 서울 시내를 배회하다 15일 한 차례 절도를 해 돈을 마련, 16일 오전 한 철물점에서 줄칼을 사 오른손의 수갑마저 풀었다. 그러나 조 씨의 탈주극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탈주 6일째인 19일 오전 10시 40분께 서울 장충동에서 경찰관이 쏜 권총에 왼쪽 가슴을 맞고 검거됐다.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30여 분의 추격전 끝에 민가에 숨어들어 인질극을 벌이던 조 씨에게 공포탄 2발 포함 4발을 발사했다. 그중 한 발이 조 씨의 왼쪽 갈비뼈에 박히면서 조 씨는 더이상 도망가지 못했다. 추격전 과정에서 조 씨는 인근 주택 9채의 담과 지붕, 장독대 등을 곡예하듯 넘나든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병원 회복실에서 경찰에 “탈주는 공모자가 없는 단독 범행이었고 범행 동기는 절도로 무기징역을 받아 억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때 당시 39세이던 조 씨는 검찰에서 보호감호 10년까지 청구돼 최소 15~20년을 복역해야 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나이가 60세가 가까워지므로 부인과의 결혼 생활이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당시 조 씨는 탈출 후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서 부인과 살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난한 사람 집 털지 않는다’ 등 원칙으로 ‘의적’ 미화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 받은 조 씨는 재심 끝에 1998년 11월 26일 수감 생활 16년 만에 출소했다. 이후 목사로 변신해 선교 활동을 하거나 경비보안업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새 삶을 사는 듯했다.

그러나 2001년 일본 도쿄에서 빈집을 털다 붙잡히면서 다시 범죄자의 길로 접어든 그는 몇 차례 복역과 출소를 반복했다. 최근엔 지난해 1월 교도소 동기 김모 씨와 경기도 용인시의 한 전원주택에서 275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가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 씨는 법정에서 “어려운 사정의 김 씨가 요구해 범행에 가담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됐다. 85세의 그에게 2심 법원 재판부는 선고 후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는 죄짓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때 ‘가난한 사람의 집은 털지 않는다’, ‘훔친 돈의 30%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다’, ‘흉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등 절도 원칙이 알려지면서 ‘의적’으로까지 미화되던 조 씨였다. 외제 사치품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을 때인 1980년대 초 금은방 수준 이상의 해외 유명 고가 물품들을 훔친 그에 대해, 고위층인 피해자들은 쉬쉬했고 일반 시민들은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조 씨는 자신의 이 같은 원칙을 노년엔 스스로 무너뜨리고 평범한 시민들의 재산까지 탐하면서 ‘좀도둑’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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