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집’으로 돌아온 배우 정수정은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스스로의 삶에 있어서 개인적인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작품이라면, ‘거미집’은 많은 분들이 보셔도 그렇게 느낄 제 커리어상의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라며 이같이 말했다.
배우 정수정이 영화 ‘거미집’으로 그룹 에프엑스(f(x)) 크리스탈을 지우고 ‘배우 정수정’의 입지를 완벽히 굳혔다.
정수정은 영화 ‘거미집’의 개봉을 앞두고 있던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27일 개봉한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 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리는 영화다. 칸 국제영화제에 8번이나 초청되고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에 진출하며 세계가 인정한 톱배우 송강호가 ‘조용한 가족’ ‘반칙왕’ ‘놈놈놈’ ‘밀정’ 이후 김지운 감독과 다섯 번째로 협업한 작품이다. 송강호와 함께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등 브라운관과 충무로를 사로잡는 화려한 멀티캐스팅으로도 주목받았다. ‘거미집’은 지난 5월 열린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평단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정수정은 ‘거미집’으로 이미지 변신한 소감을 묻자 “요즘 시대에 흑백 영화를 출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라며 “그런 점에서 이 영화로 컬러와 흑백, 두 가지 모습을 다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스크린에서의 내 모습은 늘 어색하고 민망한데 개인적으로 흑백으로 나온 내 모습이 조금 더 잘 나온 것 같더라”는 너스레로 웃음을 안겼다.
정수정은 “70년대 배경을 이미 알고 대본을 읽었는데도 매력적이었다”며 “70년대 시대적 배경을 간접 경험해볼 수 있고, 그 시대의 지금 내 직업을 연기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 생각했다”고 처음 대본을 접했을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대본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해도 ‘유림은 내가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유림이를 내가 어떻게 밉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는 확신도 덧붙였다.
거장 김지운 감독과 함께한 소감도 전했다. 정수정은 “너무 영광이었다. 사실 감독님과는 4~5년 전 한 행사에서 뵌 적이 있다”며 “이후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하고 싶다 하셨을 땐 잠깐 나오더라도 당연히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대본 읽기도 전에 뭐가 됐든 꼭 해보고 싶단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대본을 읽은 후 더욱 강해졌다”고 전했다.
캐릭터의 매력에 대해서는 “그 시대의 떠오르는 스타라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며 “평상시엔 징징대더라도 연기를 하고 싶어하고 잘하고 싶어하는 모습, 내가 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욕심 등 유림의 면모가 실제 내 모습에서도 보이는 것 같았다. 안할 이유가 없었다. 또 70년대 룩과 헤어, 메이크업도 너무 해보고 싶고 함께하는 선배님들도 그렇고 복합적으로 해야 할 이유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거미집’으로 생애 첫 칸 레드카펫을 밟은 소회도 전했다. 정수정은 “말로만 듣던 칸 영화제를 내가 직접 가게 될 줄 몰랐다. 칸 영화제를 간 순간까지 영화 ‘거미집’을 이어서 촬영하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며 “내 역사의 역사적 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연기에 입문해 작은 역할부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올 수 있던 원동력도 털어놨다. 정수정은 “첫 연기를 시트콤으로 시작해서인지 처음엔 연기가 그저 재미있었다. 사람들과 에너지를 한 곳에 함께 쏟아붓는 과정이 새롭게 느껴졌다”면서도, “그런데 연기라는 게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 고민을 느끼던 차 만난 작품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다. 그 현장은 연극 배우 선배들이 많으셨어서 이전 작품들에서 느낀 에너지랑은 또 다르더라. 그 현장에서 느낀 점이 많았다. 연기를 좀 더 진지하게 대해야겠구나 다짐했던 현장”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그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훈련해야겠구나 깨달았다. 작은 역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위주로 도전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주인공 욕심이 많지 않다. 지금도 어떤 작품이 됐든 내가 해낼 수 있는 캐릭터라면 하고 싶어지는 듯하다. 비중보단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연기에 더 욕심이 난다”고 소신을 밝혔다.
한편 ‘거미집’은 지난 27일 개봉해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