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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빛고을 민낯 품은 구도심에서 '예향'에 취하다

문화수도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광주 동구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해
무등산 자락 아래 자리한 ‘의재미술관’
50여년간 2만여점 민속품 모은 ‘비움박물관’
  • 등록 2021-12-03 오전 4:00:00

    수정 2021-12-03 오전 4:00:00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1관 환상극장.
[광주=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보통 국내 대도시의 중심엔 중구가 있다. 서울도, 대구도, 부산도, 인천도…. 이 도시들은 중구를 시작으로 타원형으로 넓게 퍼지면서 발전해 나갔다. 광주는 조금 다르다. 광주는 무등산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했다. 바로 지금의 동구 자리다. 무진주로 불렸던 삼국시대에도, 광주라고 처음 불린 고려시대에도 중심은 항상 동구였다. 광주 여행도 동구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서울로 치면 종로, 명동 격인 금남로와 충장로가 동구에 있어서다. 문화와 상권도 동구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광주의 명동에 들어선 아시아 문화 허브

광주 동구 여행의 시작점은 2015년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잡는 게 좋다. 여기를 중심으로 구도심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어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그 자체로도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이름처럼 아시아 문화 교류와 콘텐츠 창작, 전시, 공연, 유통을 위해 만들어진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민주평화교류원,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등 5개의 문화 테마 시설이 들어서 있다. 각 시설마다 보유한 콘텐츠도 풍부하고,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많아 하루 만에 다 감상하기 힘들 정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관을 찾아 전시중인 미술품을 감상중인 관람객.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1관 환상극장.
일단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연면적은 16만1247㎡에 달한다. 국내 문화 공간 중 가장 넓다. 국립중앙박물관(연면적 13만 7233㎡)보다 3만여㎡가 더 넓다. 여기에 옛 전남도청사 뒤로 땅을 파고 건물을 지었다. 멀리서 보면 그다지 규모가 커 보이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중앙광장에 해당하는 아시아문화광장에 서면 각각의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관람객을 감싸고 있어 다른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다. 특히 옛 전남도청사를 보기 위해선 시선을 위로 올려야 하는데, 역사적 장소를 향해 자연스럽게 경의를 표하는 관람의 형태가 되는 점도 독특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지하공간에 만들어져 있는 건물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지하공간에 만들어져 있는 건물이다.


실내도 매우 밝은 편이다. 건축 설계 공모에 당선된 우규승 건축가가 정한 ‘빛의 숲’이라는 콘셉트 덕분이다. 건물 옥상과 광장 쪽 외벽은 거의 창문으로 가득 찼다. 자연광이 물 흐르듯 들어가 실내를 밝힌다. 관람객은 답답함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머물거나 이동이 가능하다. 실내외의 경계를 허물어 건물 내부가 훨씬 넓게 느껴지는 효과도 있다. 넓은 창을 통해 언제든 바깥 풍경을 조망하는 것도 가능하다.

넓은 면적과 규모에 조금 당황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다. 민주평화교류원을 시작으로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예술극장, 문화창조원 순서로 둘러보고 마지막에 하늘마당으로 향하면 된다. 하늘마당에서 출발하면 옥상 공원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새로운 시작점 구실을 한다.

비움미술관의 떡 모양을 내던 떡살
쓸모 없어진 옛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다

“여기 우리네 살림살이의 쓸모에서 멀어져간 옛 물건들이 쓸쓸함과 그리움과 서러움의 몸짓으로 서 있습니다. 두텁게 묻은 땟자국 위로 떠다니는 가난은 이제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추억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 버려진 민속품들을 숙명처럼 모아서 닦고 어루만지고 보관하다가, 좁은 공간이나마 ‘세월의 장터’로 세웠습니다.”

‘비움박물관’의 소개글이다. 비움미술관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한국전통 민속품 2만여점을 만나 볼 수 있는 민속용품 박물관. 박물관의 관장이자 주인장인 이영화 씨가 50여년간 모은 것들이다. 아낙네들의 인생이 담긴 병풍 자수, 누런 황소의 코를 꿰던 워낭, 어두운 밤을 밝혀주던 호롱볼, 장독들과 베게, 나전칠기 옷장, 백자 그릇 등등. 오래전 사라진 생활용품과 도구, 그리고 각종 장신구들이다. 쓸모가 다해 버려졌지만, 누군가의 향수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손때 묻은 것들이다.

이영화 비움미술관 관장.
자세히 살펴보면 각기 다른 모양의 사기 그릇.
종이로 만든 상자.
이 관장이 민속품을 수집한 것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고향 순창을 떠나 곡성으로 시집온 이 관장은 어느날 증조부가 쓰던 서류함, 담뱃서랍, 갓솔, 안경집 등 유품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자신이 직접 간직한 후 생활도구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후 세월의 무게에 밀려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길가에 버려지는 생활용품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50년간 모은 수집품만 2만 5000여점에 달했다.

이후 가족들의 도움으로 ‘비움미술관’을 개관했다. 이 관장은 자신의 소장품을 비움박물관에 모두 전시하기까지 분류하는 데만 6년이 걸렸고, 박물관 건립 당시 목수 10명과 8개월 동안 부대끼며 지금의 공간을 완성했다. 박물관은 모두 4개 층으로 운영된다. 1층은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2·3·4층은 ‘개방형 수장고’로 운영하고 있다.

무등산 입구에서 증심사로 가는 산책길.
무등산 산중에 퍼지는 짙은 예술의 향기

무등산 산중에도 예술의 향기가 짙다. 무등산 증심사 입구, 햇볕 잘드는 계곡 옆에 자리한 ‘의재미술관’ 때문이다. 이 미술관에는 진도에서 태어나 무등산 자락에 30년을 거주하면서 평생 남도의 산수를 그리다 간 허백련(1891~1977)의 그림을 보관·전시하고 있다.

의재는 남종 문인화의 마지막 대가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시·서·화에 모두 능해 삼절로 불렸던 소치 허련의 후손이다. 소치의 아들인 미산 허형으로부터 그림의 기본을 배웠다. 이후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했고, 1983년 광주에 정착해 활동하면서 연진회를 만들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인생 후반에는 속세를 떠나 무등산 계곡에 머물렀다. 그는 이곳에서 남도의 풍취가 묻어나는 작품 활동은 물론, 차밭을 가꾸어 한국 차문화 보급에도 앞장섰다. 해방 직후에는 피폐한 농촌을 살리기 위해 농업기술학교를 설립하는 등 예술가이자, 사회사업가로 살았다.

의재미술관 전시동의 통유리창은 마치 병풍처럼 무등산의 사계절 풍경을 담아 공간 속에 펼쳐낸다
의재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의재 허백련의 작품들
의재미술관 전시동 외관


미술관으로 찾아가기 위해서는 무등산을 조금 올라야 한다. 등산로와 계곡을 20여분 오르다 보면 의재미술관이 산속에 있다. 노출 콘크리트와 나무로 단순하게 마감한 의재미술관은 등산로의 지형을 살려 비스듬한 경사 위에 서 있다. 주변 풍광을 해치지 않아 산책로 위에 둥그러니 서 있어도 풍경의 일부로 보일 정도다.

전시동 내부의 통유리창은 마치 병풍처럼 무등산의 사계절 풍경을 담아 공간 속에 펼쳐낸다. 봄이면 햇살 듬뿍 머금은 그림이, 부슬부슬 비가 내리면 비 내리는 그림이. 요즘 같은 겨울엔 눈 내리는 그림이다. 게다가 창을 통해 들어온 햇볕에 온몸이 따뜻하고 나른해지는 기분이다.

최근 의재미술관은 ‘문향, 인연의 향기를 듣다’ 전시가 열렸다. 의재가 새롭게 출발하는 제자, 회갑이나 결혼 등 중요한 행사를 맞은 지인에게 선물한 글과 그림을 선보였다. 선생 나이 32세 때인 1922년 집안 어른의 회갑연에서 그린 그림, 1960년 새해 아침 동아일보를 위해 그린 ‘오월동주’(吳越同舟) 등 모두 귀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받은 이가 소장해 세상에 소개할 기회가 많지 않던 작품을 만나는 귀한 자리였다. 의재가 맺은 인연의 향기가 오늘날까지도 흐려지지 않고 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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