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4강의 힘은 짠물수비...그리고 아픈 식민 역사의 복수

  • 등록 2022-12-12 오전 8:45:43

    수정 2022-12-12 오전 8:48:49

모로코 축구대표팀이 아프리칵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룬 뒤 왈리드 레그라기 감독을 헹가레 치고 있다. 사진=AP PHOTO
모로코가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루자 모로코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AP PHOTO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질식수비’를 앞세운 모로코가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했다. 그들의 또 다른 힘은 비극적인 식민 지배 역사의 아픔을 씻겠다는 강한 의지다.

모로코는 11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과 8강전에서 유세프 엔네시리(세비야)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은 모로코는 통산 6번째 출전만에 역대 최고 성적인 4강 진출을 이뤘다. 아프리카 국가가 4강에 진출한 것 자체가 처음이다. 그전까지 아프리카 국가의 최고 성적은 8강이었다. 그전에 1990년 카메룬, 2002년 세네갈, 2010년 가나가 8강까지 오른 바 있다.

아울러 아시아의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통칭해 부르는 ‘메나’(MENA·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지역 국가가 4강에 오른 것 역시 모로코가 최초다.

유럽, 남미 국가가 아닌 팀이 4강에 진출한 건 2002년 한일 대회 당시 4위를 차지한 한국(4위) 이후 20년 만이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회 대회에서 3위에 오른 미국을 포함하면 통산 세 번째다.

모로코는 조별리그 F조에서 세계 2위 벨기에(2위), 세계 41위 캐나다를 꺾고 세계 12위 크로아티아와 비겨 2승 1무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FIFA 랭킹 22위 모로코가 이번 대회에서 이렇게까지 잘할 것이라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16강에선 세계 7위인 ‘무적함대’ 스페인(7위)을 승부차기 끝에 누른데 이어 8강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무소속)의 세계 9위 포르투갈까지 잠재우고 새 역사를 썼다.

모로코 축구의 특징은 ‘질식 수비’다. 두 줄로 빽빽하게 서서 상대에게 틈을 내주지 않는 전형적인 밀집수비를 펼친다. 그렇다고 단순히 물러서기만 하는게 아니다. 강한 압박과 탄탄한 조직력으로 상대 공격을 무력화시킨 뒤 빠르고 날카로운 역습으로 골을 만들어낸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 8강전 등 5경기에서 모코로가 내준 실점은 단 1골뿐이다. 캐나다와 조별리그 3차전(모로코 2-1 승)에서 유일한 실점을 허용했다. 그나마도 모로코 수비수 나예프 아게르드(웨스트햄)의 자책골이었다. 상대 선수에게는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은 셈이다.

골키퍼 야신 부누(세비야)의 철벽 방어도 인상적이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키퍼로 인정받는 레프 야신(구 소련)과 이름이 같은 부누는 스페인과 16강전에서 무실점으로 골문을 지킨 것을 넘어 승부차기에서 3번이나 킥을 막아냈다. 카를로스 솔레르(파리 생제르맹)와 세르히오 부스케츠(바르셀로나)의 슈팅 방향이 모두 부누에게 읽혔다. 부누가 부스케츠의 슛을 막은 뒤 씨익 웃는 장면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포르투갈과 8강전에서도 부누의 선방이 빛났다. 포르투갈의 유효슈팅 3개를 모두 막아내는 활약으로 아프리카 최초 월드컵 4강이라는 대기록을 견인했다.

모로코 선수들이 실력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는 역사적인 배경도 한몫한다. 모로코는 19세기 스페인과 전쟁에서 패해 1860년 불평등 조약을 맺고 영토를 점령당한 아픈 역사가 있다. 일본에 경제적 이권을 침탈당하다 국권까지 빼앗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20세기부터는 프랑스까지 끼어들었다. 제국주의에 사로잡힌 스페인과 프랑스에 의해 모로코는 주권이 박탈된 식민지 신세로 전락했다. 오늘날 모로코의 공용어는 아랍어지만 실질적으로 불어와 스페인어도 많이 쓰이는 데는 이러한 안타까운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모로코인들은 해방을 위해 강력하게 저항했다. 프랑스는 1956년 모로코의 독립을 인정했고, 곧바로 스페인도 지배를 포기했다. 이후 모로코는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났지만 프랑스, 스페인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모로코는 스페인을 카타르월드컵 16강에서 탈락시키면서 축구로나마 역사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스페인과 같은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까지 제압했다.

복수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다음 4강전에서 만날 팀이 바로 프랑스다. 디펜딩챔피언 프랑스는 4강 진출 팀 가운데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다. 하지만 상대가 모로코라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모로코 대표팀을 이끄는 왈리드 레그라기 감독도 국적은 모로코지만 프랑스 태생이다. 현역 선수 시절 프랑스리그에서 오래 활약했다. 레그라기 감독은 8강전 승리 후 인터뷰에서 “꿈을 꾸는 데는 돈도 들지 않는다. 우리도 우승을 꿈꿀 수 있다”며 “우리와 맞붙은 팀은 이기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모로코와 프랑스의 4강전은 15일 오전 4시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만약 모로코가 스페인에 이어 프랑스까지 잡는다면 그들에게 식민지배의 아픔을 줬던 이들을 향한 ‘복수극’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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