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속살] “새집에 밥솥 먼저 들이세요”

부엌은 성스러운 장소…부엌 지키는 조왕신 모셔
부뚜막 불씨 꺼지면 집안 망한다고 믿어…이사할 때 가마솥부터 챙겨
무속인 “빈 밥솥 갖고 들어가면 조왕신이 복 채워줘”
  • 등록 2020-04-11 오전 12:05:00

    수정 2020-04-11 오전 12:05:00

[이데일리 김소정 기자] 우리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미역국을 먹지 않습니다. 은행 달력을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믿고요.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진 속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속설들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고 우리가 왜 믿어야 하는지를요. 김 기자의 ‘속살’(속설을 살펴보는) 이야기 시작해보겠습니다.

새집으로 이사갈 때 신경쓸 게 참 많다. 특히 주변 어른들의 잔소리가 거세진다.

편한 날로 이삿날을 잡았더니 ‘손 없는 날’이 아니라며 날짜를 바꾸라고 하질 않나, 밥솥은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이삿짐 중 가장 먼저 밥솥을 들이라고 하질 않나.

(사진=이미지투데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손 없는 날’의 ‘손’은 날을 따라다니며 인간생활에 해를 주는 귀신이다. 과거 ‘손’은 농사에 피해를 주는 부정적 의미였다. 그래서 ‘손 없는 날’에 농사를 지어야 한 해를 풍족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에는 이사, 개업, 결혼식 날짜를 결정할 때 손 없는 날을 택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

특히 손 없는 날은 이사하기 좋은 길일이라 해서 포장이사 가격도 다른 날보다 비싸다.

이사할 때 보면 주변 어른들이 꼭 ‘밥솥’을 먼저 새집에 갖고 들어가라 하는데, 이것도 과거 토속신을 모시던 옛 문화에서 비롯됐다.

인류는 원시시대 이래 불을 신성시했다. 우리나라도 부뚜막 불씨를 중요하게 여겼다. 불은 난방뿐만 아니라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불씨가 꺼지면 집안이 망한다고 믿어 불씨 유지에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할 때 가마솥을 먼저 갖고 들어가 불을 붙였다.

더군다나 부엌은 단순 노동의 장소가 아닌 성스러운 장소였다. 그래서 어른들은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을 모셨다.

종교학대사전에 따르면 조왕신은 ‘불신’(火神)으로 부뚜막에 머물러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낱낱이 적어서 하늘로 올려보내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조왕신의 비위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부엌에서 지켜야 할 금기사항도 있다. 부뚜막에 걸터앉지 않기, 부엌 깨끗하게 관리하기, 불 때면서 악담하지 말기 등이다.

이러한 민간신앙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밥솥이 옛날 가마솥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이 때문에 이삿날 밥솥을 가장 먼저 들이라는 속설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얼마 전 새집으로 이사한 무속인 전영주 씨도 이삿짐 중 밥솥을 가장 먼저 주방에 놓았다고 한다.

유튜브 ‘전영주의 미남TV’ 캡처.
전씨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밥솥을 놓는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다”며 “일단 밥솥을 싹 비워서 들어간다. 밥솥을 비우는 것은 새집에서 조왕신에게 밥을 채워달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왕신에게 ‘우리 잘 살게 해주세요’라는 뜻이다. 밥솥을 못 가지고 들어가면 주걱이라고 가지고 들어가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옛날에 보면 대문에 복조리를 두지 않느냐. 이것도 같은 의미다. 그것도 복이 집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의할 점도 있다. 상한 음식은 절대로 새집에 가지고 오지 말아야한다는 것.

전씨는 이같은 속설이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는 이유에 대해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몸만 쓰면 되는 것 아니냐”며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복이 들어온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나”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박결, 손 무슨 일?
  • 승자는 누구?
  • 사실은 인형?
  • 한라장사의 포효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