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2일` 국민 디자이너 앙드레김, 순백의 세계로[그해 오늘]

6·25 피란길에 꾼 꿈 이뤄낸 첫 남성 디자이너 `앙드레 김`
당대 최고 스타만 거쳐간 패션쇼…마주한 남녀가 피날레
옷 로비 사건으로 본명 김봉남 드러나고 대중 속으로
마이클 잭슨 러브콜 거부하고 순백의 디자이너로 일평생
  • 등록 2022-08-12 오전 12:03:00

    수정 2022-08-12 오전 10:38:03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생전 용 무늬를 자수한 옷을 자주 입었다. 2009년 마지막 투어 콘서트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 이즈 잇’(This is it)에서도 그 옷을 즐겨 걸쳤다. 한국인 디자이너가 제작한 맞춤복이었다. 잭슨은 이 디자이너가 자신의 전속으로 일하기를 원했다. 디자이너는 “나는 한국의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전속이 될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생전 일화이다.

앙드레김 영정사진.(사진=이데일리DB)
앙드레 김은 1935년 9월 경기 고양시에서 출생했다. 한국전쟁은 인생을 바꿨다. 피란을 간 부산에서 디자이너 꿈을 꾼 것이다. 극장에서 본 영화에 나온 배우의 의상에 끌렸다고 한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이 시절 앙드레 김을 다루기도 한다. 이후 1961년 국제 복장학원이 문을 열면서 1기생으로 들어갔다. 이듬해 대한민국 남성 첫 디자이너라는 수식을 달고 의상실을 열었다. 곧이어 열린 반도호텔 패션쇼는 성황을 이뤘다.

앙드레 김 패션쇼는 늘 당대 최고 인사가 거쳐 갔다. 전문 모델을 비롯해 연예인, 운동선수도 패션쇼에 오르고자 줄을 섰다. 남녀 모델이 이마를 맞대는 연출은 늘 쇼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마이클 잭슨이 입은 앙드레김 의상.(사진=외신)
1999년 터진 `옷 로비 사건`은 그가 대중에 친숙하게 다가간 계기였다. 이른바 말하는 `사회지도층`이 고급 의상실을 드나들고, 거기서 고가의 옷이 로비에 쓰였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앙드레 김의 의상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서는 과정에서 실명 김봉남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옷 로비 사건은 비리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채 끝났다. 밝혀낸 것은 앙드레 김 실명뿐이라는 비아냥이 따랐다.

이름에 더해 특이한 언행은 그를 희화화 대상으로 만들었다. 짙은 화장과 검게 칠한 머리카락 그리고 영어와 불어 같은 외국어를 섞어 쓰는 말투까지. 이런 이유에서 한글단체는 그를 우리말 해침꾼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비록 모습이 독특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행실은 모범적이었다. 국세청에서 뽑은 모범 성실납세자에 여러차례 이름을 올렸다. 앞서 옷 로비 사건 증인으로 선 뒤에 언론 인터뷰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2010년 8월15일 앙드레 김을 실은 흰색 운구차량.(사진=이데일리DB)
평생 흰색을 고집했다. 흰옷만 입었고 옷장에도 흰옷만 있었다. 흰색 차량을 타고 다녔다. 생전에 자주가던 떡볶이집에서는 그를 위해 흰색 앞치마를 제공했다고 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끼고 살았는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2010년 8월12일 별세했다. 그를 실은 운구 차량도 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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