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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볼멘소리가 나온다. 일시정지에 그치지 않고 신호가 바뀔 때까지 서 있는 차들이 많아 교통 흐름이 원활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도기간 우회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40명에서 22명으로 45% 감소했고 사고 자체도 4478건에서 3386건으로 24.4% 줄었다. 십수명의 사람이 목숨을 지켰는데 5~10분 늦어지는 게 대수랴.
2.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치안에는 굉장히 후한 점수를 주지만 반대로 기함하는 대목이 운전문화다. “한국의 치안은 술에 취해 새벽에 돌아다녀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지만 운전자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외국인들의 평가다. 특히 뼈아픈 대목은 ‘보행자들이 알아서 피해주길 기대하면서 운전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도로는 차가 우선이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물론 사람이나 이륜차의 통행마저 금지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야 차가 도로의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횡단보도를 매개로 사람과 차가 공존해야 하는 일반도로에서 차의 권리는 보행자보다 후순위여야 한다.
3. 사실 이 정도의 조치도 차의 편의를 많이 봐준 편이다. 국내국제 규정인 ‘도로표지와 교통신호 협약’에서는 빨간불일 경우 무조건 진행을 막는다.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를 제외한 다른 대륙에서는 빨간불일 때 우회전을 포함한 모든 통행을 금지시킨다.
경찰청에서는 일시정지 이후 보행자가 없으면 통과가 가능하고 단속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대법원의 해석은 다르다. 적신호 시 주변을 살피고 우회전을 진행했더라고 하더라도 이를 신호위반으로 본다는 판례가 많다.(97도1835, 2009도8222 등)
결국 일시정지 이후 우회전을 했다면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는 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원은 신호위반의 과실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운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4. 새로운 도로교통법으로 인해 운전자 간 마찰이 빚어지는 것이 이 대목이다. 보다 조심 운전을 지향하는 운전자는 보행자가 없더라도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변할 때까지 기다린다. 급한 볼일이 있는 뒤차 운전자는 보행자도 없는데 앞차가 진행을 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비보호는 좌회전을 할 경우 많이 쓰이지만 원칙적으로 우회전도 보호받지 못하는 운행법이다. 오히려 파란 신호에서만 허가되는 좌회전보다 빨간불에서도 제한적으로 가능한 우회전이 운전자의 주의가 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는 38.9%로 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높다. 보행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조치는 더욱더 강화돼도 모자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