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勞]산업현장과 다양한 독성물질

  • 등록 2022-08-27 오전 6:00:00

    수정 2022-08-27 오전 6:00:00

[김정민 더드림 직업병연구원 노무사] 직업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크게 △소음·진동 등 물리적 인자 △중금속·유기용제 등 독성을 가진 화학적 인자 △병원균·공기오염 등 생물학적 인자 △스트레스 등의 사회·심리적 요소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우선 화학적 인자에 따른 직업병에 대해 설명해보려 합니다. 제조·건설업 등 현장직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원료이든 가공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든 늘 화학인자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요.

이에 따른 급성·만성 중독으로 여러 직업병에 이환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산업재해보상보험이 도입된 것은 1964년입니다. 당시에는 상시근로자수가 500인 이상인 제조업과 광업에만 적용됐습니다. 산재법 제정 전인 1959년부터 대한석탄공사에서 진폐증에 대해서는 보상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이 무렵에는 진폐증을 제외한 직업병에 대해 산재임을 쉽게 인정해 주지 않았는데요. 1966년부터 가동돼 1993년 폐업한 A사 인견공장에서 다수 근로자가 동시에 콩팥손상, 사지마비, 언어장애 등의 증상을 겪게 됐습니다.

근로자들이 이황화탄소(CS₂) 중독임을 인지하고 산재신청을 요구하자 사업주가 산재임을 부정하했는데요. A사 근로자와 그 가족들이 집단적으로 투쟁한 결과 1988년 근로자 21명에 대해 직업병임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는 진폐증과 소음성 난청에 이어 세 번째로 인정된 직업병입니다. 이후 계속된 투쟁으로 현재 1000명에 가까운 피해자가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게 됐는데요. 이는 현재까지 국내 최대 규모의 독성물질에 의한 직업병 발병 사례로 꼽히며 2010년부터는 이황화탄소중독증을 진단받은 경우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를 생략하고 산업재해임을 비교적 빠르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1988년에는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고등학생이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건전지 재생공장에서 카드뮴에 노출된 근로자가 신장질환에 이환된 사례가 있었는데요. 2000년대에는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트리클로로에틸렌, 시너 등의 발암물질에 만성적으로 노출돼 백혈병을 비롯한 희귀암에 걸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2016년에는 휴대전화 스크린 제조 공장에서 냉각제로 메탄올을 사용해 근로자 다수가 시신경 또는 중추신경에 손상을 입어 실명하거나 뇌병변 장애를 얻게 됐습니다. 2022년 3월에는 트리클로로메탄에 급성으로 중독된 근로자 16인이 간 손상을 입는 일이 있어 중대재해처벌법과 맞물려 한동안 화재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급·만성 중독에 따른 직업병은 아주 다양한 화학인자에 의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역사드라마를 보면 왕을 살해하기 위해 누군가 음식에 독을 탄 상황에서 은수저가 변색돼 알아차리는 이야기가 흔하게 등장합니다. 이때 사용된 독은 비소(As)이고 비소 속 황 성분이 은과 만나 빠른 화학반응을 일으켜 은수저의 색이 변하게 된 것인데요. 이렇게 왕의 살해에 사용됐던 비소는 극미량으로도 사람을 취사시킬 수 있어 독의 왕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비소를 소화기관으로 섭취하게 되면 마비·경련·혼수 등으로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또 회복하더라도 말초신경염과 골수기능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는데요. 입을 통한 섭취로 일어나는 급성중독도 치명적이지만 호흡기관을 통한 흡입으로 발생하는 만성중독은 그 증상이 즉각적으로 발병하지 않을 뿐 비소에의 노출이 지속될 경우 폐암, 피부암 등이 발병해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성적인 중독의 경우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체내에 이미 많은 양의 비소가 축적됐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경각심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금속제련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경우 구리 등의 가공과정에서 그 부산물로 비소가 발생해 불가피하게 비소에 노출되기 때문에 스스로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보호장구를 잘 착용하고 일반·특수건강검진을 꾸준히 받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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